오봉…..일봉은안보인다.아니카메라에안잡혔다.
다섯형제가원님딸을좋아해서어쩌구저쩌구하는전설이팻말에적혀있다.
마당이정갈하고수수하면서도개성이넘쳤다.
마당이세련스레(?)보였다면믿으실랑가,
백일홍옆이석굴이다.
위는바로평범한산이고굴속의천장은완전돌이다.
원래처음기억이더강하고오래간다.
가령지명도어느곳이먼저입력이되면
언제나그곳이형이다.형만한아우없고…..^^*
우리동네가까운곳에위치한양주시장흥면도,
면인가?
하여간유원지장흥을말할때도
전남보성옆의장흥이내겐먼저다.
워낙공간지각력이없는사람이라
북한산우이령길어디쯤서조금더올라가면석굴암이나오는데
그곳이왜양주시인지장흥인지아리송하다.
며칠전오랜만에그우이령길을걷기위해나섰고
예약을안해도석굴암간다면보내준다는신문기사를읽은기억이있기에
차를몰았다.
웬걸,
석굴암가려고하는데요,
했더니
신도증이있어야보내준다고북한산관리공단나으리께서말씀하신다.
아니신문에보니석굴암가는길이면그냥된다고하길래왔는데요.
아,아니에요,신도여야해요,
허참,
처음이세요?
아뇨,예전에우이령길막개방해서는예약하고왔었어요.
그러면….오늘은그냥들어가시구요다음엔꼭예약하셔야되요.
그럽시다.그나저나고맙수,
처음우이령길개방할때는엄청사람많아서
예약이필요했지만여름한나절이라선지사람아주뜸하다.
이쯤한가하다면주말예약이나하고평일엔편하게다녀도좋으련만,
한번시작하면특별한일이없는한고치려들지않는다.
공비침투와관련하여41년간닫혀있다가열린길이다.
이제는목회자가된생존공비김신조씨가때로는함께걸으며
자연에대해이야기하는길이기도하다.
양쪽의산,
숲은계속되지만
그냥흙길이다.
교현에서시작한길을걷다보면석굴암가는삼거리길이나선다.
길진않지만약간가파른길을조금걷다보면석굴암이나타난다.
어디나절들이대부분그러하듯
역시커다랗고요란해보이는건물들,
그리고여전히새로운무엇인가를건축하고있는절의모습이다.
천년고찰이란정적인어휘가주는느낌은어디에도없다.
그러나그건물을지나원래있던절마당으로들어서면
북한산능선이탁보인다.
전망이끝내준다.
전망만이아니다.
산을마치병풍처럼두르고제일높은곳에있는삼청각을위시하여
범종각
석굴암의유래가된석굴법당이
그림처럼나타난다.
조그마한마당과그마당을사이에두고왼쪽약간위에오른쪽
다시이에왼쪽그리고약간오른쪽으로휘어진왼쪽,
산의터는말할것도없고
건물이위치하는자리가참으로아늑하기그지없다.
고만고만한자그마한건물은크지않아서정겹고
오래된세월의더께가한눈에보인다.
화려한단청으로치장하길좋아하는요즈음절과는사뭇다르다.
경기도양주시장흥면교현리오봉산중턱에자리잡고있는석굴암..
석굴암은고려공민왕때만들어졌다.
그러나6.25때처절한전쟁으로모두소실되고….
지금의석굴암은1954년에다시지어졌다고한다.
어수선한듯하면서도이것저것자연스레피어나있는화단의
여름꽃들은산사의정취를더했다.
점심시간을알리는깨지는듯한(?)종소리가들려왔다.
사무실쪽인가……
지나가다보니
발내려진방안에서청국장냄새가아주짙게풍겨왔다.
우이령길은서울우이동과경기도양주를가장단거리에연결하는오솔길로많은역사를간직하고있다.역사기록의흔적을찾기힘들지만김정호의<대동여지도>엔이름없이길만표시돼사람들이이용하고있었음을간접적으로나마짐작할수있다.
우이령이란이름은남쪽북한산과북쪽도봉산의능선이고개를중심으로‘소의귀‘처럼축늘어졌다는데에서유래했다고한다.이우이령이란이름이삼각산이란이름을유래케했다는해석도있다.북한산이전에일반적으로사용했던삼각산은‘세부리‘또는‘세귀‘에서온말로보기도한다.부리는뿔로바뀌어삼각이란말로뜻이옮겨졌고,쇠귀(牛耳)가세귀로전음되고,귀는‘모퉁이‘에서‘뿔‘로바뀌어세개의봉우리가있는삼각산으로부르게됐다는것이다.
이우이령길이역사의전면에떠오른것은한국전쟁때부터였다고해도과언이아니다.
아픈상처를안고출발한것이다.작은오솔길에불과하던좁은길이6.25를거치면서미군공병부대에의해수송도로로확대됐다.우이령정상(330m)영문비석엔‘이도로는미군36공병단의공병도로로109공병대대와102공병대대에의해1964~1965년에건설됐다‘고쓰여있다(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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