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도순절(葡萄旬節)에 기체후 일향만강하신지

백로(白露),

흰이슬이내리는시간이되면밤하늘에
순간적으로,

빛이번쩍일때가있다고하더군요.
농부들은이번쩍이는빛을벼이삭이패고익는빛이낮만으로는부족해
밤하늘도보탠다고여겼다고합니다.

양식인쌀이익어야할텐데
노염(老炎)으로는풍성하지못하여

그리하여애달파서밤도그빛을보탠다는거겠지요.
명랑한해량이라고수용할까요.
구슬픈해량이라고이해해야할까요.

깊은밤기온의차이로생기는그런작은빛조차

벼이삭익는심정에보태는마음이
가을이라선지더욱그윽합니다.

일상적인삶을영위시켜주는매우기능적인쌀조차

감성이란옷을입게되는것도가을이란계절탓일겝니다.

어젯밤에도밤길걸으며

혹여애달픈그빛이보일까봐
내내하늘을바라보았습니다.

가을은소리의공명이잘되는시간인지도모릅니다.

특히밤이깊어갈수록어쩌면저렇게풀벌레소리들이명랑해지는지,
불빛환한트랙길을걸으면서

문득

밤이되면정말밤같은밤이되는고향집생각이나더군요.
새삼마음이적요해지며

세상속에계시지않는아버지가그리웠습니다.

대학이학년때
자췻방에들리신아부지의뒷모습에서
처음으로’쓸쓸함’을읽어낸것이

아마내가처음입은

‘어른의옷’그첫단추가틀림없을겁니다.

선걸음에용돈을주시고
집을나서서돌아가시는아부지뒤를따라나갔었지요.
들어가라는아부지손짓에걸음을멈추고가만히서있었어요.
길다란골목길이었는데가을햇살은그러잖아요.
너무투명하고밝아서모든사물들을눈부시게하면서도
바로그곁의그늘에는조금인색한….
그농담의차이가가을이깊어갈수록선명해지지요.
담장위나뭇잎한두잎너울거리며떨어지기도했을거여요.
휘적휘적걸어가시는아부지등을바라보며
아부지등에도그런가을의그늘만이지닌농담이출렁거리고있었거든요.
그때처음으로
사람의뒷모습이저리도쓸쓸할수있구나.

를생각했던거지요.

지금생각해보면아부지나이지금의저만큼이나되셨을거예요.

그러니그닥늙으신것도아니었고

그렇다고아부지가엄마없이쓸쓸한인생도아니셨고
직장이없는백수도아니셨고

벗들과흔쾌한생활을하실때였는데
아부지의쓸쓸함은도대체아부지어디에숨어있다가
그렇게슬쩍아버지의등뒤에서모습을들어냈을까요?

한번도자신의뒷모습을직시할수없는것이사람일진대
뒤를볼수없는단순한현상은

많은은유를거느리는듯도합니다.

실제적인자신의등외에도
자신이라서보지못하는이기적인사각지대와객관성을결여한시각,
그리고사랑이라는이름하의몽매등

그래서존재의심원처라고도할수있는’쓸쓸함’은
나이든사람의등뒤에서

그것도깊은가을에그렇게슬며시피어나는지도모릅니다.

아침에만이슬이맺히는것은아닙니다.
사실깜깜한밤에도이슬은벌서내립니다.

깊은밤풀숲주위를돌다보면

샌달신은발이촉촉해져옵니다..

며칠전에읽은

이덕무의가을을노래한시가기억났습니다.

*****
하얀이슬산들바람가을을보내주자
발밖의물과하늘청망한가을일레
앞산에잎새지고매미소리멀어져
막대끌고나와보니곳마다가을일레
******

실학자인그도가을의정념에는어쩔수없는감상이인듯합니다.
청망한가을일레,

곳마다가을일레,

사실가을소리도사위에가득합니다.
홀로산에오르다보면

상수리를지는소리가겁나큽니다.

후드득떨어지는갈참나무잎지는소리도생각보다는커요.
소나무잎가리나무되어슬며시지는소리
노간주나무울퉁불퉁한몸스쳐지나가며부딪히는소리
가장큰소리는줄창습기가득차있던탱탱한나뭇잎들
건조해지며

바람불때마다부딪히며바스락거리는소리입니다.

소리뿐이겠습니까,
가을의향또한순후해져갑니다.
잡초라는이름으로불리워지는돼지풀,사데풀,잔디들
말라가는대신

향을내뿜습니다.
아마작아져가는만큼,

사그라져가는만큼.
꼭그만큼의향을세상에내어놓겠지요.
숲의나무들은더말할필요도없습니다.

살쪄가는열매의향기못지않게
가을숲은향기의세상입니다.

기러기가날아오는초후(初候)입니다.
이제조금있어중후(中候)가되면제비가강남으로돌아가고
조금더시간이흘러말후(末候)가되면뭇새들이먹이를저장하는시간이되겠지요.

차가운이슬이내리기전
흰이슬의시간에
안부를물을길없는아부지를그리워하다가
난데없이
그대의안부가궁금했습니다.

포도순절(葡萄旬節)에기체후일향만강하신지,

북한산오르는길초입에서만난둥근잎유홍초

철쭉잎싹

오래된기와지붕에피어난이름모름,

닭의장풀,을우리는어릴때닭장풀로불렀슴

5 Comments

  1. 청목

    2011년 9월 8일 at 9:51 오전

    글을읽으면서왜이렇게내마음이찡해지는지모르겠습니다.정겨운이름<아부지>.할아버지의아들이아버지가되고,아버지의아들이아버지가된지금,역시<아부지>는홀로쓸쓸합니다.아마가을날새벽녘의서늘한바람때문이겠지요.
    애틋이<아부지>를찾는여인네의심금을적시는글귀앞에주름진손등이눈가로향합니다.   

  2. 쥴리아스

    2011년 9월 8일 at 1:03 오후

    가을의시작과아부지의뒷모습으로부터의쓸쓸함의동질성은아마철이들기시작한딸의아부지에대한감사의느낌과이제숙녀가되어서초가을로부터의살랑살랑한슁숭거림으로부터의감수성이더예민해지는것과동질성이아닌가하네요..   

  3. 조일연

    2011년 9월 9일 at 10:13 오전

    여기스리랑카의어떤아버지도잘잇습니다.ㅎㅎ
    좋은글잘읽고갑니다.
    푸나무님의글읽으니정말한국이가을은가을인가봅니다.
    추석잘지내시기바랍니다.   

  4. equus

    2011년 9월 12일 at 9:55 오전

    고향생각절절하게만드는군요!갑자기-사립문밖돌아피어나던노란국화무리향기와함께-   

  5. Lisa♡

    2011년 9월 13일 at 12:25 오후

    저게닭의장풀이었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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