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은 깊었네

가을인데,

가을이저만치가고있어선지,

왠지당신에게속닥한이야기하나하고싶어요..

벤취가조금서늘한가요?

그래도은행나무아래잖아요.

은행나무부부라는반칠환의시가저절로떠오르네요.

십리를사이에둔저은행나무부부는금슬이좋다
삼백년동안허운옷자락한번만져보지못했지만
해마다두섬자식이열렸다

언제부턴가까치가지은삭정이우체통하나씩가슴에품으니
가을마다발치께쏟아놓는노란엽서가수천통
편지를훔쳐읽던풋감이발그레홍시가되는것도이때다

그러나모를일이다
삼백년동안내달려온신랑의엄지발가락이오늘쯤
신부의종아리에닿았는지도

바람의매파가유명해진건이들때문이라전한다

난아름다운것들은’등’으로환치해보는경향이좀있는데

저노오란은행나뭇잎들….모두가을등처럼보여요.

그것도자체발광하는,

밤에도눈부신,

떨어져내리면서도빛나는,

땅위에구르면서까지환한,

해저물어가는이즈음..

가을햇살은유별나게키가커요.

그늘은짙구요.

길게새어들어오는일몰의햇살은더욱그러하지요.

그러니

문득당신도내겐

‘등’처럼보이는군요.

아무래도내가가장좋아하는것은글일듯싶어요.

적어도글을쓰는동안은굉장히행복하거든요.

사실글을엄밀하게이야기해본다면

이친구굉장한이기적소산물이지요.

글을쓸때만큼은온전히나만생각하게하거든요.

내기분을,

내마음을,

내상처를,

내반응을,그저온전히나,나,말이지요.

아,당신도설핏설핏보이긴합니다만,

生이라는고달픈강을끝없이노저어가는데,

이제금노젓는일에익숙해졌다싶으면

갑자기전혀경험치못한바람과

보도듣도못한비가내리치곤하지않던가요..

그런시간들이이어지고,

또이어지고.

生어디에어느순간에쉼이있겠는가,

설마당신,

숙면이나즐거운놀이시간이쉼이라고,

아무것도안하는무위의시간이쉼이라고,여기시지는않겠지요.

내게있어쉼은

솔직하고무구하게,

무구하면서도덤덤하게

깊게자신을응시하는시간,

오직자신만을바라보는시간이아닐까생각해봅니다.

그러니적어도글을쓰는동안만큼은

남을배려하지않아도된다는것,

내이야기를하면서도사람ㅡ

그누구의눈치를살피지않아도된다는것,

내가어디를떠돈다한들,

어느곳에불시착한다하들,

어느누구를만난다한들상관없다는것,

하여나는이것을자유라고여긴다는거지요.

성격을테스트하여열여섯가지양태로보여주는MBTI를나는믿지않아요.

애니어그램일지,사상의학도마찬가지이고,

그것들은우리에게약간의진지한수다와편리한칸나누기를제공할뿐이지요.

그보다내가믿는것은사람의얼굴,

그수많은얼굴의극진한다양성이죠.

수십억인류가같은얼굴이하나도없다는것,

이런만고불변의진리가어디있겠는가,

이런무한한창의력이어디있는가말이지요.

참으로광대한그대목이

우리에게시사해주는바는너무많지않은가요,

이만고불변의진리라는틀에

내게다가오는‘모든것’들을대입해보는습관,

그러다보면어느순간

그대도옳군,그대도옳아,오우,그대도,라는

황희정승의반열에서게되기도하지요.

북한산비봉쯤에서서여기저기둘러보는느낌이라고나할까,

올라온길도보이고내려가는길도보이는,

그러면서도오르지못한다른봉우리들도아득하게보이는그즈음,

그런혼자만의상태를

드물게영화관에서느끼곤합니다.

바쁜걸음으로영화관에들어섰는데,

영화가시작되었는데,

아무도없는빈공간,

그리고한시간사십분가량통째로그영화관을빌려서볼때,

솔직해보자면젊은아이들연애는시시해요.

나이만큼얄팍하고

연륜만큼가벼운이야기들이이어지곤하지요,

딴전피우기에딱좋은목소리

톤한결같은그래서더욱개심심한기초상담학강의라고나할까,

‘그남자의책198쪽’도

젊어서가볍고젊어서경쾌하고그래서조금은시시한영화예요.

남자의독백으로시작되는첫문장도아귀가맞질않아요..

대다수의사람은거의가다타인의아픔에같이아파한다고생각하는데,

나같은사람도세탁기문이닫혀서아들잃은어미의심정을

그어미도아니면서세탁기에빨래를넣을때마다자주생각하거든요,

그어미는세탁기를어떻게쓸까……

정말아프기도하면서,

그러니그첫지문은약하고말고,

주인공여자은수가밥하는장면도제법자연스레찍더니

압력솥에물맞히는부분에서엉터리가되어버리더군요.

혼자먹는밥치곤양이너무많았고

더군다나그렇게물을많이잡아서는

아마밥이아니라죽이되었을걸요,

아마도감독이나작가는편리한전기밥솥보다는

가스불위의압력솥을사용하면서

은수의약간고지식한면을표현해내고싶었을거예요.

그런데평생밥을하며살아온아지매눈에

그사소한실수가덜컥크게잡히더라는거지요.

아마이영화를보는대다수의관객들은

밥솥의물같은것보지도않았을거예요.

그런데내게는그작은실수가

영화를보는동안내내앙금처럼남아있더라는거지요,

<그런사소한리얼리티까지완전해야하는가,

내가하고싶은이야기의주제는전혀그게아닌데>

감독이그렇게반문한다면할말이없겠지요,

맞아요,당신말이…..괜한이야기를했나봐요,

슬그머니꽁무니를빼고물러나왔을거예요.

그러면서도

여전히어두컴컴한골목길을걸으며,

혹은깊은청색의밤하늘에반짝이는별을보며

내눈에다가오기까지별빛이걸어왔을그무한한시간을생각하면서도

뇌리속에는밥솥의물이또아리틀고있을거라는거지요.

이문제는아주사소해보이면서도확실한씨앗하나를내포하고있어요.

그것은바로나의경험과타인의경험,

그사이의간극,

경험도얼굴생김처럼다르다는,

제법심오한외연이라고나할까,

만고불변의진리라는틀이라고했지만

사실그틀은MBTI틀보다훨씬

더단순한메주틀비슷할지도모르겠어요.

가을인데,

가을이저만치가고있어선지,

은행나뭇잎지는길

당신뒤에서서

아주아주천천히거닐면

헛헛한마음조금가실까요.

어차피혼자가는길이긴합니다만.


맨윗사진은장흥천관사이년?삼년?전이무렵

4 Comments

  1. Lisa♡

    2011년 10월 23일 at 11:29 오전

    천관사엔나도가보긴했는데..

    그럼아이들같은연륜이얇은연애말고
    이나이만큼되는깊은연애해볼까요?ㅎㅎ

    푸나무님…
    머리속과마음속이굉장히깊고복잡해보여요.
    부러워요.

       

  2. 푸나무

    2011년 10월 23일 at 12:11 오후

    리사님글을읽고
    타인의눈으로한번읽어보았더니
    복잡해보일수도있었겠네요.

    근데그당신을
    내남편이나
    혹은
    내가연인삼은
    ‘나무’쯤으로여기시면…..

    아이리되면변명인가요?하하,
       

  3. 雲丁

    2011년 10월 23일 at 1:05 오후

    사색의칸을메우는호흡이길어부럽습니다.

    물흐르듯유려하게글을참잘쓰십니다.
    그러면서도깊이가느껴지는,,,
    그래서자주방문하게도되었구요.

    가을이가빨리갔으면해요,저도,^^
       

  4. 푸나무

    2011년 10월 24일 at 4:04 오전

    큰일났어요.

    금새
    동네까지
    단풍이진격해들어왔습니다.

    화려한군장으로치장한힘센장수입니다.
    무적의장군.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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