쓸모없는 것의 쓸모가 생겨나는 ㅡ 피로사회
BY 푸나무 ON 4. 25, 2012
피로사회
저자
한병철(HanByung-Chul)
출판사
문학과지성사(2012년03월05일)
카테고리
국내도서>사회과학
기억이꼭적확할수는없지만
초등저학년크리스마스무렵의교회만큼아름다운곳을나는아직까지보지못했다.
오십여년의시간이쪽저쪽을오고가는건물이라면부언하지않아도알수있으리.
그저휑한시멘트벽에성긴유리창사이로매운바람무시로넘나드는,
낡은장의자몇개의예배당.
크리스마스때라고하여지금처럼휘황한조명이나꾸밈은꿈도꾸지못한시절이었다.
겨우색종이접고잘라서만든등몇개와은박지로만든별몆개가전부였다.
그런데도그것들은
그황량한예배당을삽시에꿈의궁전으로변화시켰다.
기억이지닌무리수와채색을감안하다하더라도
적어도아름다움에대한나만의변증은될수있을것이다.
아름다움이
화려하거나우아함이라는외부적사안에있기보다는
개개인의내적심성에오롯이기인할수있다는,
이번터키여행에서도
그오래전의문화유적들을보면서내게떠올랐던아주중요한깨달음하나는
“문화에발전은없다!”라는것이었다.
셀수도없는아득한시간의저편.
무지하고몽매한어두운시절이라고?,
아니절대아니었다.
수많은시간전의사람들이지하교회에그려놓았던프레스코화는
세월의무게를견디지못해
부식해가며사라져가며소멸을향해가고있었지만
그단순함과소박함,
주제에대해간명하게표현해논그림들은아름다움이상이었다.
예술을떠나생활이며생활을떠난이상이었다.
즉삶이체화된예술이었다.
깊고어두운첩첩의삶을대신한그림들은
어느한방향으로두각을나타낸사람들이
아름다움혹은미혹은조화를향한혼신을다한예술과는격이달랐다.
자연스러움을벗어난,
생활을배제한예술은그저예술에머물고만다.
예술의지향점은결국삶아닌가말이다.
현대의,혹은후기근대사회가지닌
특별하다고할수있는사안
‘멀티테스킹’이꼭문명의진보를의미하지는않는다고
재독철학자한병철은<피로사회>의“깊은심심함”이란챕터에서단언했다.
나는그대목에서내어릴적느꼈던교회의아름다움을,
오래된지하성전의프레스코화에서다가왔던감동과
같은선에서해석을하며공감하며고개를끄덕였다.
<피로사회>는두꺼운책이아니다.
아니오히려핸드백속에딱들어갈보랏빛장정의아주얇은책이다.
겉만봐서는’은교’처럼담박읽힐책같은데
이소녀깊기도하지.
깊기만한게아니고변덕도자심해한줄만설컹하게읽어도
한발다가오던걸음파르르한얼굴빛으로두발물러서있다.
왜만한집중력없이는이소녀와대화할수없다.
그도그럴것이이소녀지닌시각이매우새롭다.
나를데리고가는길도예사롭지않다.
시대를통찰해내는눈은깊고예리하며
앞서지나가던사람들의발자욱을선명하게짚어보이며
그들이갔던길에대한긍정과부정에대해서일목요연하게진술하며
새로운길을제시한다.
진단도명확하다.
규법사회에서이제다시성과사회롤들어선지금
과잉생산과잉정보과잉커뮤니케이션즉형대사회의긍정이라는과잉에너지는
부정의힘이지닐수있는백신을전혀지니지못한변종바이러스라는것이다.
이에너지는긍정이라는우아한옷을입고
사람들이누구나바라는매혹적인길을통해
사람들스스로가불러들이며
스스로자생하고
당연히스스로에게무방비적으로노출되어
스스로를해칠새로운폭력
즉‘내재성의테러’를자연스럽게출산하게한다.
타자의어떤강요도없이
스스로자기자신을착취하는
가해자인동시에피해자가되는,
일과능력의피로에서오는우울증은여기에서발현된다.
즉자신을끊임없이착취해서소진까지이르게하는것,
바로이시대가지닌피로,
<피로사회>다.
저자는만연한<피로사회>에서사라진것들을적고있다.
사라진것들의미덕을찾아내기도한다.
대안을명확하게제시하지는않지만
독자는
서있는지점을인식하면서이미치료가시작되는기묘한경험을할수있다.
가령저자는
정신의부재상태천박성을
“자극에저항하지못하는것,자극에대해아니라고대꾸하지못하는것”에
원인이있다고진단한다.
충동을그대로따르는것은병이며몰락이며탈진이다는,
그는또현대인들이어쩌면가장싫어할수도있는‘머뭇거림“을
행동이노동의수준으로내려가지못하게하는필수불가결한요소라는
긍정성으로바라본다.
즉자폐적성과기계(컴퓨터도)가되지않을수있는요인으로
그는‘머뭇거림’을
눈에잘띄는동산위에세워두고깃발처럼펄럭이게한다.
머뭇거림은돌이켜생각하는힘이며무위의지점이기도하다.
사유를계산으로변질시키지않을격을지니고있는힘으로
머뭇거림을인식한다..
저자는키케로의시각을빌려
활동적인삶이아닌사색적인삶이야말로
인간을인간본연의존재로만들어준다는것을말하고있다.
철학을포함한인류의모든문화적업적은
깊은사색적주의에힘입은것이라고그는단언한다.
심심함만이지닌창조적과정,
(아마도그는무위,심심함을사색할수있는유일한공간으로여기는듯,)
발터벤야민도깊은심심함을
“경험의알을품고있는꿈의새”라는멋진표현을했다.
그러나이런피로를페터한트케는
영감을주며정신이태어나게하는지점으로특별한능력으로묘사하기도했다.
회춘의형식치유의형식인지점으로오순절의안식을주는지점으로
이는눈밝은피로이기도하다.
이책의미덕은
역시모든독서의중추에있는미덕이그러하듯,
낯섬과새로움에있다.
그는우리가아직가보지못한지점에서손을흔들고있다.
그러면서도그는
그가우리를바라보고서있는지점을순순하게도
책읽는독자에게분양해준다.
여기앉으세요.여기가뷰포인트에요.잘보이시죠?
그래서그는
무거운철학자라기보다는
무겁지만,그러나세련된,
정확한핵심을찝어주는문화전도사로보이기도한다.
그러면서도그가입고있는옷은고풍스럽다.
사색이라는사유라는,
오래전우리가
성과와성취그리고앞서기위해무참하게버렷던옷을
그는아주깨끗하게세탁하고
새롭고혁신적인몇가지데코레이션을거쳐
가장첨예할뿐아니라기품까지득하고있는아름다움으로승화시킨…..
옷을입고있다.
벤야민은꿈의새가깃드는이완과시간의둥지가
현대에와서점점사라져가고있다고한탄한다.
이제더이산그누구도그런거을"짜지도잣지도"않는다.
심심함이란"속에자아열정적이고화려한안감을댄따뜻한쟂빛수건"이다.
이책멋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