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산서원에서 보내는 늦은 전언

지상에서남은일이란한여름팔작지붕홑처마그늘따라옮겨앉는일

게으르게손톱발톱깎아목백일홍아래묻어주고

헛담배피워먼산을조금어지럽히는일

햇살에다친무량한풍경불러들여

입교당찬대청마루에풋잠으로함께깃드는일

담벼락에어린흙내나는당신을자주지우곤했다

하나와둘혹은다시하나가되는하회의이치에닿으면

나는돌틈을맴돌고당신은당신으로흐른다

삼천권고서를쌓아두고만대루에서강학(講學)하는밤

내몸은차고슬픈뇌옥나는나를달려나갈수없다

늙은정인의이마가물빛으로차고넘칠즈음

흰뼈몇개로나는절연의문장속에서서늘해질것이다

목백일홍꽃잎강물에풀어쓰는새벽의늦은전언

당신을내려놓는하심(下心)의문장들이다젖었다//병산서원에서보내는늦은전언//서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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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래는오분마다숨을쉰다는구료.

따뜻한곳에서자식을낳아잘기르려고
물경
오천마일을움직이며

살기위해서숨을쉬는데
숨을쉴때마다숨의물푸레로인하여
포경선에노출이되고…..

삶과죽음의경계가백짓장이라는것을보여주는대목이기도하오.

아주깊은바다속에서
천천히
우아하게움직이는고래의수염..
장엄하고고독한모습이라고
어느작가는말하기도했는데.

열두달중에서가장첫사랑에어울리는달을꼽는다면
오월이겠소.

부드럽고
여리고
순후하고.
누구에게나스치듯마듯다가서는바람끝자락….
지나가고나서야뒤돌아보게하는그수줍음.

중학일학년오월이었소.
대학을갓졸업한수학선생님
이른봄삼월에는양복속에
연두색셔츠를입고있었고
오월이되자
그양복속에있던연두색셔츠가밖으로나왔소.
그리고다시양복을입을때까지소매길이만달라진채
수학시간마다연두는우리눈앞에어른거렸소.
요즈음아이들이들으면웃을일이지만
그때중학일학년들은단어의힘이그리강하질못했는지
오해와오산을비슷하게여겼소.

어느날수업시간
전후좌우는기억이나질않는데
하여간아이들은"그것은오해예요"소리쳤고
선생님은"그것은오해가아니라"
그때바로선생님이내곁을연두처럼지나가고있었소..
선생님말끝에따라
"오산이죠"
나는대답했고
"맞다오산이야"
선생님은나를그윽히바라보았소.(그윽히는물론내생각이긴하오만)

하여간연두에서나온손이내머리를쓰다듬었고….

그래서
연두는내겐첫사랑의빛깔이오.

봄이와락왔다가삽시간에가고있소.

이젠시간조차변덕을부리는세상이되는것같아.

늦은오후인데도바튼걸음으로북한산구기계곡을갔소.

박새교를지나

버들치교를지나

귀룽교앞의귀룽나무를보기위해

박새야….날아다니니보려고마음도먹지않았지만

버들치교앞에서는한참버들치바라다보았소.
뭐랄까,

마음이좋았소.

요즈음내게

<좋다>는갈등없음을뜻하오.

버들치를바라보노라니그들의깊은내심이야어찌알겠소만

그들은보는이에게평화를학습시키려는것처럼안온해보였소.

귀룽나무보러가는길

세상은온통연두요.

물론그연두들다아결다른색감을지니고있소.

그차이를지켜보는것

재미있고아주신선한일이오.

두어송이핀철쭉은

진달래의난분분함과는또다른격을지닌채

조용히피어나있었소.

아마도북한산연분홍철쭉은소수를아는듯……

드디어귀룽나무와대면하오.

귀룽교오른쪽에서있는,

계곡으로한껏가지를드리우고있는,

가슴한켠뭉클했소.

구름꽃저물어가고있었소.

향기있는꽃은

꽃이시드는것보다먼저향기가사라지오.

혹시나하며

조금더위

아주커다란귀룽나무…..하도품이넓어서

산속의작은쉼터인곳……도마찬가지였소.

저물어가기는,

늦게오른길이라

어느새해도저물어가고있었소.

발걸음돌려걷다가

뒤돌아보니

오래남을풍경이었소.

깊은바다의고래처럼장엄하고고독한모습

북한산에서보내는늦은전언이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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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Comments

  1. Grace

    2012년 5월 5일 at 3:22 오후

    연했던초록의색이이제는점점짙어지겠지요..

    근데..
    왜이리사진을잘찍으시는지..??^&^

       

  2. 말그미

    2012년 5월 5일 at 5:37 오후

    병산서원의5월의정경이펼쳐집니다.

    멋진5월의詩!아름답습니다.
    달리표현할길이없는5월입니다.

       

  3. 나를 찾으며...

    2012년 5월 6일 at 9:18 오전

    이글읽다가제가그만
    저어릴적중학생시절로와다리가다리~

    그시절미술시간인가그랬어요.
    미술쌤~이들어오셔서수업을하시려다가
    가만가만저한테다가오시더니~
    "너~중학생이왜?화장을응?"
    그말에그만울음을팎터트려버리지않았겠어요.ㅎ
    제가어찌화장이란걸알았겠냐구요?
    그런선생님의말씀에그만~울컥해서엉엉울어버리다가그만~
    물감이하얀교복윗도리에다번져가지고서리~

    짝지랑~
    또래친구들이랑~
    쟤가원래저래요?선쌤!!!!
    화장가튼것안했어요….

    그제사선쌤께서제볼에다가
    당신의손가락을몇번인가눌러찍어보시고는
    머릴끄덕끄덕~하시더니
    저한테미안해지셨는지
    선쌤하얀와이셔츨벗어절입히고선~
    직접손으로제교복웃도리를수돗가로가져가셔선
    하얗게다시빨아주셨더랬어요.ㅎㅎ
    교복씻은물을털다가털줄몰르셨던지ㅎㅎㅎ
    선쌤회색바지위로온통물방울이튀어다젖어버린것보고
    제가더미안해지기까지했더라는거죠?ㅎㅎㅎ
    그담부텀저한테선쌤이괜히잘해주셨는데요.
    전그때선쌤의그흰셔츠의느낌이아주오래오래갔었던거같아요.
    직굼도아직흰셔츠만보면그때선쌤이생각이난다눈요.ㅎㅎㅎ

    글,사진,음악이
    글을읽어내려오는동안
    여기저기거기쩌어기요오기그기
    이짝저짝요짝저짝그짝
    마구마구쏘다니던봄바람을만나게해주신것같아^

    일다가제가스ㅡㅡㅁ에실데엄는봄바람만
    잔ㄸㅡㄱ들어앉는것아닌지몰르겠어요.ㅎㅎㅎ^   

  4. 綠園

    2012년 5월 6일 at 10:42 오전

    누구나좋아할연두색을첫사랑의색갈로하셨으니더좋아하시겠네요.
    5월내내그수학선생님생각도많이하시겠구요.^^

    귀룽나무처음으로봅니다.
    오늘올리신사진은더특별히잘찍으셨어요.
       

  5. 소리울

    2012년 5월 6일 at 10:21 오후

    사연이랑꽃이랑귀롱나무….
    감칠맛나는사진글..
    첫사랑의빛깔은누구에게나연록빛이아니겠는지요?
    첫사랑의사연들을모으면대단한재미있는이야기들이터져나오겠지요?   

  6. 산성

    2012년 5월 8일 at 10:07 오전

    북한산에도귀룽나무가…
    아니정말귀룽교란이름의다리가…?

    덕분에,’드디어귀룽나무와대면하오’
    이미구름꽃저물었다하오니
    내년봄,
    봄이오는가아직아닌가할무렵…부터가서
    기둘릴테요^^

    산을진채,날아갈듯한구름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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