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 숲ㅡ 아 꿈이로구나

야생화를좋아하는사람들사이에서는
여름의시작을알리는

나리가‘나으리’라는애칭으로불립니다.
지난주언젠가포천에다녀올때

꽤나깊어보이는산자락인데
누군가를기다리는듯,

혹은누군가를반기려는듯,
山門까지나와서그커다란키를가지고길아래를굽어보는그이(?)를보았습니다.
할수만있다면

한달음에차를벗어나그이품에안기고싶었지요.
아마도스쳐지나가는애달픔때문에

감정이증폭되었을겁니다.

이즈음여름숲은극점을향해치솟습니다.
오히려팔월의숲이더위에약간무츠름하다면
이즈음의숲은높은습도와장맛비에의해
세상모른채자신의세력을펼쳐나가는시간인게지요.
(지금도갑자기작달비세차게내리는군요)

숲이란것이나무만으로된것은아니어서,

나무도그것을모르지않지만
여름숲은나무의전횡을용인합니다.
나무의왕성한자람과성숙앞에서,
마치씩씩하고건장하게자라나는믿음직하고잘생긴아들을바라보는어머니처럼
숲은고요한침묵을견지하며나무를향해있습니다.
숲이그러할진대

숲에서자라나는작은생물들이야더그러하겟지요.

이런

비장하면서도독재의기운이넘쳐흐르는

침묵을유일하게깨뜨리는이가바로이‘나으리’입니다.

대개꽃을여성에비유하지만
이‘나으리’만큼은남성에비유합니다.
나무만큼크지는않지만

그렇다고다른풀꽃들처럼작지도않습니다.
굳이비유를하자치면

나리는는작지만견고한뿌리를지닌
거기다가오랜역사와전통을자랑하는

저동방의기품있는나라,
그래서아무리세가높고덩치가커다란나라라할지라도함부로무시하지못하는,
그는

작지만견고한나라의황제입니다.
그래서무리짓기를거부합니다.
뿌리로번식하는관례를따라충분히무리지을만하지만
아주특별한고지대의산을제외하고는그는홀로피어납니다.

무리를짓다ㅡ.
무리를지어야만살수있는우리들에게초연함과고독이무엇인가를
생각하게도하는그이입니다.

숲사이무성한나무들틈새에서자라나던

그이가어느날꽃망울을활짝엽니다.
짙은초록들사이에서
선명한주황,

날렵한빨강,

그리고아주드물긴하지만솔나리의연보랏빛,
(저도실제로는한번도본적이없습니다.)’나으리’들이피어납니다,

꽃이피어나는것이아니라마치색이열리는것같기도합니다.

색은세상의시작일지도모르겠습니다,
태어나면서부터지니게된고유한입성……

색은사물의배냇옷…아닐까,
어쩌면창조의비밀을슬쩍엿본이가색일지도모르겠어요.

무심한듯,

자연과동화되어있는초록들사이에서생경하게열리는한송이
‘나으리’가피어내는색의향연.
전혀다른색이빚어내는부조화로움이너무눈부셔

숲도잠깐숨을죽입니다.
나무도멈칫거리며바라봅니다.
그렇다고

나의그이가잘난척한다고는생각마셔요.
그는그저가만히피어납니다.

그리고약간고개를숙인채
(아,하늘나리나하늘말나리는하늘을향해고개를들기도합니다만,)
자기만의생각에깊게잠깁니다.
제가본山門의나으리처럼
정말로누군가를세차게그리워하여그만을생각하는
그만을기다리는모습같기도합니다.
그의사유는깊고유장하여

다른많은사물들이
자신을바라보는것조차별로의식하지못합니다.
그는알려고하지않습니다.
자신이얼마나아름다운지,

얼마나화려한지,

얼마나기품있는지,

그래서그는제가보기엔마치숲속의莊子같습니다.
탈속한듯,
자연과일체라는듯,
선과악미와추나와너의구별은무의미하다는듯,

장자의일화하나가생각나는군요.
장자의친한친구인혜시(惠施)가부인의상(喪)을당한장자를조문하러왔답니다.
와서보니,장자는돗자리에앉아대야를두드리며노래를부르고있었다구요.
혜시가아마도격렬하게말했을겁니다.너그럴수있니?어떻게인간으로서?,
장자가대답했답니다.
‘아내가죽었을때내가왜슬프지않았겠는가?
그러나다시생각해보니이제삶이변하여죽음이되었으니
이는춘하추동의4계절이순환하는것과다를바없다.
아내는지금우주안에잠들어있다.내가슬퍼하고운다는것은
자연의이치를모른다는것과같다.

그래서나는슬퍼하기를멈췄다.’
(슬픔이멈추려고하면멈춰지는물건인가,생각해보다가그만큼마음을다스릴줄아는,
그래서나와는조금다른사람이겠지,생각을멈춥니다)

올해북한산에서몇번마주친나리는

그어느해보다도자그맣고

그래서더욱고요해보였습니다.

나리는완연한여름이시작됨을알려주는꽃이기도합니다.
나리를보면서
여름을아는것,

시인의꿈비슷한일일지도모르겠습니다.

***************
꿈/황인숙

가끔네꿈을꾼다.
전에는꿈이라도꿈인줄모르겠더니
이제는너를보면
아,꿈이로구나,
알아챈다.
**********************

*세번째사진분홍솔나리는제사진이아닙니다.

북한산털중나리

그리고덕수궁정경과자귀나무

4 Comments

  1. 잎사귀

    2012년 7월 4일 at 3:56 오전

    숲속의장자^^
    제가장자를모르니
    숲속의철학자쯤으로해석해보렵니다^^
    나리는제첫사랑이랍니다.
    야생화첫사랑.
    처음보다는덜하지만볼때마다반합니다.

    솔나리사진
    제가아는분인데
    저사진보면서푸나무님을어디서뵙지않았을까
    그런생각했습니다ㅎㅎ   

  2. 푸나무

    2012년 7월 6일 at 3:27 오후

    아,잎사귀님도나으리에게반하셨구나.
    사람보다더한연인입니다.
    사람은자주보면안반하게되거든요.
    꿈인듯꿈결인듯,만난듯만나는듯…..
    근데지금이렇게
    만나는것아닌가요….ㅎ~.
       

  3. 참나무.

    2012년 7월 7일 at 6:57 오전

    나리…저힘찬곡선!
    누군들혹하지않을까요

    음…덕수궁자귀나무…정말비슷한데요

    잎사귀님은인디카회원이시지요
    인사아트센타에서해마다전시회도하시는…^^
       

  4. 푸나무

    2012년 7월 9일 at 2:08 오후

    아이구잎사귀님께서?????
    어쩐지사진솜씨가보통이아니시더라….
    참나무님글여기저기댓글달고싶은투성인데
    지금도여수여요.
    시뉘금요일출국해야시간이조금날것같아요.
    우디알렌영화도봐야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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