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서에 피는 꽃은 보이지 않는다
BY 푸나무 ON 8. 24, 2012
진관사앞의누리장나무는싱싱한에너지를풍긴다
처서타령이너무심한가?
이해하시라.
처서는24절기중내가가장좋아하는절기이니,
푸르름과맑음과걷힘과개임.
그리고투명함의세상이니.
햇살개인날은개인날대로
흐린날은흐림대로저멀리까지내비치는힘이
다른계절과는비할수없다.
처서무렵행하는포쇄는단순한햇살의포쇄가아니다.
햇살과서늘한기운이공존하는……소독이다.
책만이랴,사람속깊은곳까지터치하는…..포쇄다.
처서에는그래서책갈피넘기듯내안을넘겨보기좋다.
마음속들여다보기위하여고개를꺽기좋은것도
어두운속내한참응시하면눈이밝아지는것도
처서에만가능한일이다.
처서개화불견화處暑開花不見花
처서에피는꽃은보이지않는다는말이있다.
설마처서에꽃이피지않으랴.
여전히목백일홍은구름처럼피어나고
시골집뜨락에는백일홍과다알리아가어정건들거리며서있다.
키작은산야의들꽃들도만만치않다.
그런데왜보이지않을까,
속설로는목화에서하얀송이꽃피어나는데가까이가보면꽃이아니라솜이라는….,
내생각엔,
꽃이면서솜이기도한목화에대한애정이너무커서
다른꽃을꽃으로여기지않음이아닐까,
기러기날아오는초후이다.
그리고나는상사병에걸려
심각한투병중이다.
相思가무엇인가
생각을많이한다는이야기아닌가.,
무엇을해도그이생각이다.
그를보지않는모든시간이짜증난다.
그좋아하는책을읽을때도상시로그에대한생각이출몰한다
언제하던일접고그에게로갈까…
내안에는깊은옹달샘이패어있다.
오직그를향한그리움이고이는옹달샘이다.
아주깊은물줄기어딘가에옹달샘닿아있는것처럼
나도그의깊은곳어디에닿아있는지도모른다.
아니면내안의옹달샘은
우기를만난건지도모른다.
자꾸만고이고또고인다.
나는그의완벽한포로이다.
혹시처서즈음이라상사병더깊어지는지도모르겠다.
결국나는사람도살림도떨치고훠이훠이그에게로향한다.
그제서야,
그에게안겨서야,
숨이포옥내쉬어진다.
그를만나고오면조금마음이풀린다.
그렇다고풀린마음이오래가는것도아니다
다시시간이흐르면
그에대한생각으로가득차오른다.
나는산과바람났다.
나는산과정분났다.
나는바야흐로산과연애중이다.
산은품넓고잘생긴듬직하기그지없는
나를정신없게하고나를홀리며세상사잊게하는
나의남성나의연인나의애인이다.
나는상사병에걸렸다.
어제도살림대강대강(이게바람난여성들의제증상이다)해놓고
커피한잔타서배낭에담고
바람난여인집을나섰다.
더위꺽인산길
아직초록중인산길에는사람이없다.
여름날,
영양실조걸린아이보다더가느다란계곡에앉아있던그많은사람들
하나도없다.
물은맑고도맑게
여기저기거침없이넘나들며소리내며흐르는데
여름지나
가을전인
내애인호젓하고적막하게나를기다리고있다.
진관사에주차하고응봉능선쪽으로오른다.
언제나처럼다리폭폭하다.
응봉까지는제법가파른오르막길만계속된다.
그러나응봉에만오르면그뒤능선길은그저편안한하늘길이다.
부러나는양손을바지호주머니에넣고건들거리며걷는다.
건들거리는몸짓이라도해야
어정내애인에게체면이설듯해서…..
‘밀당’없는연애너무재미없지않는가,
길게숨을내쉬고들이쉰다.
내숨은
내애인만이거닐수있는
우리둘이화합하는향기로운연애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