늙는다는 것

여전히가을이다.

날마다가을의강도는세진다.

메조포르테에서포르테포르테시모포르테시시모….

마에스트로의몸짓이점점커지기시작하고

어느순간고공속에서그몸짓은탁!멈출것이다……설마그렇게가을이멈추라먄,

아침에온메일속에서황필호선생의글이있었다.

새삼늙음에대한그분의안목이보여지는글이고

무엇보다나는그분을실제로뵌적이있다.

인상적인만남이었고…책리뷰를쓰듯그분을그려본글이생각났다.

그때도가을이었다.

************.

나이가들수록늙음을새삼스레체감할때가많다.
어느날갑자기신문의글씨가희미하게보일때,
상대방의질문을잘못듣고전혀딴얘기를하여지적을받을때,
잇몸에음식이유난히많이낀다고느낄때,
과음을한다음날아침에손이부들부들떨릴때,
그리고한말을몇번씩다시한다고아내로부터핀잔을받을때.

그러나어느경우에는본인은별로늙었다고생각하지않는데상대방으로부터늙은이의대접을받아서자신이노인이라는것을새삼스레느낄수도있었다.꽤나이가많아보이는승객으로부터지하철자리를양보받았을때,혹은훌쩍자란조카를쳐다보았을때가이런경우에속한다.

나는며칠전어느제자의편지를받았다.

선생님,격식을차린인사는드리지않겠습니다.제가학위를받고버젓이어느지방대학에전임이라도되면그때선생님을찾아뵙고“시골에서몇년동안보내겠습니다”라고말씀드릴때를기다렸습니다.워낙인문학공부란것이진전이더딘것은익히알고있었지만,그간의공부가눈에띄게성과가있는것은아니었습니다.부끄러운일입니다.그저우여곡절끝에오는학기에학위논문을제출할채비가겨우되었을뿐입니다.

나는여기까지읽으면서도그의편지가그저안부편지려니했다.그러나그편지의다음부분은완전히나의늙음을실감케했다.

선생님,지난번에우연히전철역근처에서선생님의모습을알아차린것은모두선생님의제자였던우리일행중에서제가제일먼저였습니다.선생님께택시를잡아드리기까지불과몇분간이었지만,그래도그것은몇년만의만남이었습니다.그날이후선생님의모습이제뇌리에지금까지맴돌고있습니다.그래서지난구정전날에는식구들을데리고명절을쇠러가는길에선생님께인사라도드릴까하여전화를했더니,아드님이전화를받아선생님이친구분댁에가셨는데자정쯤에야오실것이라했습니다.

그날뵌선생님의모습은저에게조그만충격이었습니다.이렇게‘충격’이라는단어를사용하는것이선생님께결례가될수가있겠지요.그러나저의가슴과뇌리에는계속작은파도를일으키고있습니다.우선제가몰라뵐정도로하얗게서리가내린선생님의수염이왈칵세월의무상함을절감케했습니다.늦은밤이어서잘못뵈었을수도있다고생각해보기도했지만,부디아직은건재하다고믿고싶은마음이더욱컷다고생각합니다.

물론선생님은제가이렇게감상적으로선생님의모습을그릴정도로기력이쇠퇴했다고는생각하지않습니다.단지의연한자신감으로천하의사람들을멋대로야단치고충고하고희롱하던학부시절선생님의모습이저희들의눈에비쳤고,또한그강렬한눈빛을텔레비전화면에서나마요즘도가끔느끼고있었기에선생님의모습은더욱충격이었습니다.

나는편지를놓고가만히생각해보았다.그는나의육체가늙었다는사실에‘조그만충격’을받았다고했다.그러나나의육체뿐만아니라정신까지늙었다는것을그가발견한다면그는분명커다란충격을받을것아닌가.

나는다시한번‘몸은늙어도마음만은젊게!’라는구호를조용히외운다.그러나‘마음은늙어도몸만은젊게!’라는구호가없는것을보면,그래서몸과마음이전혀따로따로작용할수없을정도로서로밀접하게연관되어있다면,마음의젊음이나늙음도몸의젊음이나늙음과밀접한관계가없을수없겠다.

이렇게보면성서가말하는‘백발의영광’은몸이나마음이젊다는데있는것이아니라오히려자신이늙었다는사실을솔직히인정하는데있지않을까.

황필호(黃弼鎬,1937~충북괴산)서울대졸업,미오클라호머대학철학박사.
동국대,강남대교수역임.생활철학연구회이사장.계간『어느철학자의편지』발행인.저서<종교철학개론><문학철학산책><통일교의종교철학><행복한결혼을위한여성의철학><철학적인간종교적인간><모든생활은철학이다>등

***********

드물긴하지만어느순간,

상식적인표현이다정한벗처럼정겹게스며들때가있다.

가령오늘,

나이많으신어른한분을만났다.

그분의눈을보는순간,

눈은마음이창이다라는지극히일반적인표현이떠올랐고

내마음은내내그단순한문장에머물러있었다.

그래정말눈은마음이창이야.맞네,맞아,응맞는군.

가만,그러고보니우리의몸중에가장섬세한부분이눈이아닌가?

입술이지각의언어를혹은들려줄만한언어만을표현한다면

손이나발의면구스러운포즈가불안이나두려움을나타낸다면

좀더깊고내밀한혹은솔직한마음의언어는

눈빛이대신하는게아닌가?

보이지않는마음의더듬이라고나할까,

무엇보다눈은마음이창이다라는

구태의연한이문장의미덕은다분히긍정적인어조에있다.

눈이맑을때,

눈이깊은마음의뜻을은일하게전할때,

그눈에비치는상대방이눈속에서자신을바라볼수있을때,

그렇지,

굉장히투명한눈빛을이야기할때우리는

눈이창이란표현을이야기한다.

창은양면적이다.

밖을내다보게도하지만

밖에서안을들여다보게도한다.

누구나새로운사람을만날때면

맨처음하는행위가아마눈마주하기일것이다.

통성명을하기전

미소도나누기전

눈빛으로

먼저상대방을바라보며

눈빛으로

먼저나를보여주게된다.

창을통한들여다보기혹은내다보기가시작됨과동시에

사람과의만남은시작되는것이다.

낯선사람과의만남속에서

가장최상급의관계를이끌어내는지름길은

솔직함과겸손함이다.

물론일부러지어내는솔직함이나마음에없는겸손함이아니라

자연스러움,편안함.

없으면없는대로

부족하면부족한대로과장없이보여주는것,

더불어,

(이제까지배워온대로)

당신은천하보다더귀한사람이라는것을인정하는겸손함은

당연히상대방에게같은느낌을갖게할것이다.

물론모든사람과의만남속에서

내가지닌이태도가견지될만큼성숙한것도아니고

또한상대적인경우도없지않아서전부다라고는절대로말못할일.

사람을통해사람을본다.

늙음은단조短調.

초등학교때는단조노래가별로없었다.

기억컨데육학년때음악책에

누나하고손잡고함께거닐던오솔길이란노래가단조였다.

이상하게그노래의정적인분위기가좋아

자주부르곤했다.

그러다가어제그분을뵙고돌아오면서문득

단조의그노래가생각났다.

노래하되슬프게…..

노래하되어둡게……

마치콘트라베이스의음색같지않는가?

무엇보다

콘트라베이스의낮은저음은

설령고음을연주한다할지라도고음처럼들리지않는다.

마치아주가파를고갯길을무겁게힘들게올라가다

잠시잠깐쉬어서걸어가야할길을망망한눈빛으로

걸어온길을아득한눈빛으로바라보는

노구.

그지독히낮은저음.

몸은무거워지고기운은없는데정신은명료하다.

늙음을혹은겨울을콘트라베이스

중년을혹은가을을비올첼로

젊음이거나여름이거나봄이거나는바이얼린…..비올라…..

그분은자신이수필가라는것을강조하셨다.

내게는그말씀이수필처럼살고싶다는의미로읽혀졌다.

플라톤은시인이었으나

아리스토텔레스는평론가였다고

그래서플라톤을더좋아한다고……….

본인이쓰신글속에서

아름답게나이드는6가지방법을말씀해주셨다.

그중의하나가

말을조금할것,그리고적게할것,이라고

늙어갈수록말하는것을좋아하는이유가걱정과마뜩찮음이라고도하셨다.

혹시확인과외로움탓은아닐까….

나는속으로생각했지만.

그러면서일종의자신만의규칙으로

둘이이야기할때는50퍼센트

셋이있을때는30퍼센트만말할것을세워놓고있는데

오늘은그걸어기고있는것같다고…..

지적인노인과의대화는얼마나재미나는지?

평생을공부하면서사유하며살아온그폭넓고깊은사고력에

세월의무게를얹은

단순소박한어법은얼마나매혹적이던지….

문득내가칠십이되어서도이십살젊은남자에게

정신의깊이로매혹을느끼게할수있을까?

얼토당토않은생각도하다가

여자와남자의치이도생각하다가……

깊은늦가을해가저물어왔다.

자그마한등이여기저기켜지기시작하고

어둠이오기직전

밝음이사라지기전의그미묘힌흐름이보일때쯤우리는자리에서일어낫다.

헤어지기전

이다음에뵐때는선생님글을더많이숙지하고와서

이야기를나누겠다고하니

어머,이노인이쁘신것봐라.

사랑의고백을할때꼭꽃이필요하지는않으나

꽃이있으면사랑의고백이더좋을수있다고……….

차암,

이런메타포의간극을순식간에사용할줄아는분.

늙어도아름답다.


>>

제주도오설록에서본삼백년된(?)차나무의차꽃….

9 Comments

  1. 凸凸峯

    2012년 11월 8일 at 2:42 오전

    아름다게살다
    아름답게늙어
    아름답게죽으면
    아름다울터인데
    아름답게사는것도
    아름답게늙는것도
    아름답게죽는것도
    쉽지않은일인데…
    노인이어도이쁜
    늙어도아름다운
    그사람부러워라.

       

  2. 벤자민

    2012년 11월 8일 at 4:45 오전

    요즘마누라가좀다쳤어요
    여러명도아니고딱?하나밖에없는마누라인지라^^
    오늘주제처럼
    늙어가메좀짠하기도하고해서
    있는비자금없는비자금다털어
    걷어먹이고잇을려니^^
    괜히저까증짜증이덥쳐옵니다
    이럴땐쉬는게최고^^

    어제모처럼골프한번쳤더만은
    여긴워낙자외선이강한나라라
    아침에거울을보니
    왠저승꽃이다필려고하네요
    아이고~~
    지적노인은고사하고
    이눔의저승꽃까지….
    이거또돈들게생겼네요ㅎㅎ

    이래저래
    짜증나는김에좀쉴려고합니다
    늙는다는것은
    별게아니군요^^   

  3. 청목

    2012년 11월 8일 at 5:22 오전

    새삼그분의구레나룻이기억의저편에서떠오르는군요.
    아름답게늙는다는것.
    쉬운것같으면서도결코쉽지않은일이지요.
    우선모든걸비워내는일입니다.
    생각을덜어내고,욕심을덜어내고,먹는것도덜어내고,하는일도덜어내어몸과마음을가볍게하는일입니다.
    비워낸자리에사랑을담으면되겠지요.이해와존경과배려와인내를담으면…

    오설록엔뜨거운작년9월에들렸었는데구경못한꽃을귀하게보여주셨습니다.노란색이품격을더하는것같습니다.   

  4. 술래

    2012년 11월 8일 at 6:22 오후

    가장큰바람이었고
    그래서아직은늙은층에들어가지안아도될
    40초반부터그것을화두로삼고살았는데
    이제는거의포기수준에이르렀습니다.ㅠㅠ

    아무나아름답게늙을수있는게아니고
    특별한사람만이할수있는것이라고…

    그래도이런글을읽으면
    다시희망을가져보게되어좋고요.   

  5. 푸나무

    2012년 11월 9일 at 1:54 오전

    철님…
    글속에서는누구나아름답죠.
    철님의글에서뵈면
    철님도황선생님못지않게아름다우신분이세요.
    그렇잖아요
    까마귀에게
    그렇게극진하게
    조문하신분…흔치않을걸요.
       

  6. 푸나무

    2012년 11월 9일 at 1:56 오전

    오,벤자민님비자금이
    이제서야제대로가치를발휘하시는군요.
    아내를
    짠하게여기시는분..
    당연히지적노인이시구말구요.
    짜증빼시면더지적노인이실텐데….^^*   

  7. 푸나무

    2012년 11월 9일 at 1:58 오전

    청목님….
    그렇게비워내실수만있다면야….
    노후가아름답구말구요.

    작설을생각하면
    차꽃제법크지요.   

  8. 푸나무

    2012년 11월 9일 at 2:02 오전

    술래님
    57년생이늙음타령하는것……
    더위이신분들이보면아이구하실지도모르지만
    제겐일종의백신이기도하고
    익숙해지며
    조금더객관적으로늙어갈수있지않을까,

    세상에
    근데술래님은사십대부터???

    제가보기엔
    술래님이미아름답게늙어가시려고
    준비다하신것같은데요.
    음악만있어도충분하잖아요.
    더불어여름에도드거운커피의맛을아는
    예술가아드님이함께하는데…..   

  9. 좋은날

    2012년 11월 19일 at 1:04 오전

    아름답게은발을날리시며
    멋진중절모를쓰신노신사가요즘은눈에들어옵니다.

    저도그렇게멋지게늙어가고픈마음으로
    부러움이듭니다.

    그러기위해서는늙어도마음만은동심의세계를
    잃지않고살아가는것이비결이라고평소에생각하곤합니다.

    그래서자주동요를부르고
    유년의추억을꺼내반추해보곤합니다.

    잘늙어가는일.

    그것이사람으로제일의행복이아닐까여겨집니다.
    글감사하게읽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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