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나어느경우에는본인은별로늙었다고생각하지않는데상대방으로부터늙은이의대접을받아서자신이노인이라는것을새삼스레느낄수도있었다.꽤나이가많아보이는승객으로부터지하철자리를양보받았을때,혹은훌쩍자란조카를쳐다보았을때가이런경우에속한다. 나는며칠전어느제자의편지를받았다. 선생님,격식을차린인사는드리지않겠습니다.제가학위를받고버젓이어느지방대학에전임이라도되면그때선생님을찾아뵙고“시골에서몇년동안보내겠습니다”라고말씀드릴때를기다렸습니다.워낙인문학공부란것이진전이더딘것은익히알고있었지만,그간의공부가눈에띄게성과가있는것은아니었습니다.부끄러운일입니다.그저우여곡절끝에오는학기에학위논문을제출할채비가겨우되었을뿐입니다. 나는여기까지읽으면서도그의편지가그저안부편지려니했다.그러나그편지의다음부분은완전히나의늙음을실감케했다. 선생님,지난번에우연히전철역근처에서선생님의모습을알아차린것은모두선생님의제자였던우리일행중에서제가제일먼저였습니다.선생님께택시를잡아드리기까지불과몇분간이었지만,그래도그것은몇년만의만남이었습니다.그날이후선생님의모습이제뇌리에지금까지맴돌고있습니다.그래서지난구정전날에는식구들을데리고명절을쇠러가는길에선생님께인사라도드릴까하여전화를했더니,아드님이전화를받아선생님이친구분댁에가셨는데자정쯤에야오실것이라했습니다. 그날뵌선생님의모습은저에게조그만충격이었습니다.이렇게‘충격’이라는단어를사용하는것이선생님께결례가될수가있겠지요.그러나저의가슴과뇌리에는계속작은파도를일으키고있습니다.우선제가몰라뵐정도로하얗게서리가내린선생님의수염이왈칵세월의무상함을절감케했습니다.늦은밤이어서잘못뵈었을수도있다고생각해보기도했지만,부디아직은건재하다고믿고싶은마음이더욱컷다고생각합니다. 물론선생님은제가이렇게감상적으로선생님의모습을그릴정도로기력이쇠퇴했다고는생각하지않습니다.단지의연한자신감으로천하의사람들을멋대로야단치고충고하고희롱하던학부시절선생님의모습이저희들의눈에비쳤고,또한그강렬한눈빛을텔레비전화면에서나마요즘도가끔느끼고있었기에선생님의모습은더욱충격이었습니다. 나는편지를놓고가만히생각해보았다.그는나의육체가늙었다는사실에‘조그만충격’을받았다고했다.그러나나의육체뿐만아니라정신까지늙었다는것을그가발견한다면그는분명커다란충격을받을것아닌가. 나는다시한번‘몸은늙어도마음만은젊게!’라는구호를조용히외운다.그러나‘마음은늙어도몸만은젊게!’라는구호가없는것을보면,그래서몸과마음이전혀따로따로작용할수없을정도로서로밀접하게연관되어있다면,마음의젊음이나늙음도몸의젊음이나늙음과밀접한관계가없을수없겠다. 이렇게보면성서가말하는‘백발의영광’은몸이나마음이젊다는데있는것이아니라오히려자신이늙었다는사실을솔직히인정하는데있지않을까.
어느날갑자기신문의글씨가희미하게보일때,
상대방의질문을잘못듣고전혀딴얘기를하여지적을받을때,
잇몸에음식이유난히많이낀다고느낄때,
과음을한다음날아침에손이부들부들떨릴때,
그리고한말을몇번씩다시한다고아내로부터핀잔을받을때.
동국대,강남대교수역임.생활철학연구회이사장.계간『어느철학자의편지』발행인.저서<종교철학개론><문학철학산책><통일교의종교철학><행복한결혼을위한여성의철학><철학적인간종교적인간><모든생활은철학이다>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