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때는6월의어느더운날,태양은아직도중천에걸려있고,산들바람도한점없고하늘에는한조각의구름도보이지않는다.앞뜰도후원도마치가마속같이찐다.하늘을나는새는그림자도찾아볼수없고,땀은온몸을폭포처럼흘러내린다.점심상을받았으나무더위때문에숟가락을들엄두도나지않는다.그래서돗자리를한장가져오게해서땅바닥에깔고그위에벌렁누워본다.그러나돗자리는축축하고파리떼가코언저리를날아다니며아무리쫓아도영달아나지않는다.이렇게되면나는완전히맥을쓰지못하게된다.그때갑자기우뢰소리가요란스럽게들리더니검은구름이첩첩이하늘을덮고싸움터로향하는대군처럼당당한기세로몰려온다.이윽고처마에서비가폭포처럼떨어지기시작한다.그러자땀은걷히고땅이축축하던것도없어지고파리떼들은모두어디론지숨어버려겨우밥을먹을수있게된다.아아,이또한유쾌한일이아니겠는가.
2.10년동안이나만나지못한친구가갑자기해질무렵에찾아온다.문을열고그를맞아들여배편으로왔는지육로로왔는지도묻지않고,침대나걸상에앉아잠시쉬라는말도하지않은채곧장내실로들어가아내에게조심조심이렇게말한다.’여보,당신도소동파의아내처럼듬뿍수이나좀사다주지않으려오?’그러면아내는기꺼이금비녀를뽑아들며’이것을팔도록하지요’하고말한다.우선사흘동안은실컷마실수가있을듯싶다.아아,이또한유쾌한일이아니겠는가.
3.아무도없는텅빈방안에멍하니,나는혼자앉아있다.그러자베갯머리에쥐가다가와점점성가시게군다.도대체바지락거리며무엇를하는것일까,무엇을쏠고있는있는가,내어느책을쏠고있는것인가.이렇게생각하면서어떻게했으면좋을지결단을내리지못하고있는데느닷없이험상궂은고양이가무언가를노리기라도하는듯이꼬리를움직이며눈을부릅뜨고가까이다가온다.나는숨을죽인체꼼짝도하지않고잠시기다린다.그러자쥐는순식간에바삭하는소리를남겨놓은채바람처럼사라져버린다.아아,이또한유쾌한일이아니겠는가.
4.서재앞에있는해당화와자형을뽑아버리고열그루인가스무그루의싱싱한파초나무를심는다.아아,이또한유쾌한일이아니겠는가.
5.봄날저녁로맨틱한몇명의친구들과술잔을나누어어지간히취기가들었다.술잔을놓기도싫고그렇다고더이상마시기도괴로운일이다.그러자,내기분을알아차린곁의동자가열두서너개의커다란폭죽을넣은광주리를냉큼가져다준다.나는술상을떠나마당으로나가폭죽을터뜨린다.유황냄새가코를찌르고머리를자극하여온몸이매우기분좋다.아아,이또한유쾌한일이아니겠는가.
거리를걷노라니까부량배둘이무엇인지심하게말다툼을하고있다.얼굴은상혈이되고,눈은분노에타고있어마치불구대천의원수와도같은형상이다.그러나서로예의를차린답시고팔을올리거나허리를굽신거리며절을하면서댁께서는,라든가댁과는,라든가어떻게된셈이신가요,라든가그렇지않은가요,라는등매우점잖은말을주고받고있다.그러나그런수작은끝도없다.그러자,느닷없이하늘을찌를듯한험상궂은사나이가팔을휘두르면서나타나더니큰소리로어서집어치워!하고호통을친다.아아,이또한유쾌한일이아니겠는가.
7.물항아리에서물이흘러나오듯이나의아이들이옛글을줄줄따로외고있다.그것을나는가만히귀를기울이고있다.아아,이또한유쾌한일이아니겠는가.
8.식사를끝낸뒤심심풀이로근처에있는가게를찾아가니조그만물건이필요해진다.잠시동안값을흥정하여이제조금만더깎아주었으면좋겠는데,가게점원아이는아직팔려고하지않는다.그래서나는그값을깎는정도의값이될만한간단한물건을주머니에서꺼내어점원아이에게준다.그러자,점원아이는대번에빙그레웃으며공손하게머리를조아리며말한다.’나리께서는아주마음이너그러우십니다.’아아,이또한유쾌한일이아니겠는가.
9.식사를끝낸뒤의무료함을달래려고헌가방을열어그속에든물건을공연스레뒤적거린다.그러자,우리집에돈을꾸어준사람들이쓴수십장수백장의차용증서뭉치가나왔다.빚진사람들가운데는이미죽은사람도있고아직살아있는사람들도있다.그러나,어쨌든돈을받아낼가망은없다.나는몰래그것들을둘둘말아불에태우고하늘을올려다보며연기가깨끗이사라져가는것을바라본다.아아,이또한유쾌한일이아니겠는가.
10.어느여름날,맨머리맨발로문밖에나가젊은이들이수차를밟으면서소주의민요를노래하는것을양산을받고서서정신없이듣는다.밭의물은녹은백은이나녹은백설처럼흰거품을내면서수차속으로흘러들어간다.아아,이또한유쾌한일이아니겠는가.
11.아침에일어나보니,지난밤에누군가가죽었다고집안식구들이수군거리는모양이다.나는곧누가죽었느냐고집사람에게묻는다.그리고그가동네에서가장지독하게노랭이었던녀석이었다는것을알게된다.아아,이또한유쾌한일이아니겠는가.
12.여름날아침일찍일어나니,물받이홈통으로쓰려고사람들이소나무선반아래에서커다란대나무를톱으로자르고있는것이보인다.아아,이또한유쾌한일이아니겠는가.
13.한달동안이나꼬박장마가들어주정뱅이나앓는사람처럼아침이되어도일어나지않고자리에누워있곤했다.그러자창문밖에서비가멎었음을알리는새들의울음소리가들린다.나는부리나케일어나서침실의커어튼을젖히고창문을여니아름다운햇빛이쨍쨍내리쬐고있고,나무들은마치목욕을하고난뒤처럼싱싱하고깨끗하다.아아,이또한유쾌한일이아니겠는가.
14.밤에누군지멀리서나를생각하고있는것같은느낌이든다.다음날나는그사람을찾아간다.그집에들어가거실을둘러보니,본인은남쪽을향해책상앞에앉아무언가기록을읽고있다.내모습을보자,천천히고개를끄덕이고내소매를잡아앉게하더니’마침잘왔으니이것을읽어보게나’하고말한다.그리하여우리는서로웃음을나누고담위에햇살이사라질때까지즐거이이야기를주고받는다.이윽고친구는시장기를느낀듯나에게조용히말한다.’자네도배가고픈가.’아아,이또한유쾌한일이아니겠는가.
15.나는집을지으려고별로진지하게생각했던것도아닌데뜻하지않게돈이조금들어왔기때문에집이라도지어볼까하는생각을갖게되었다.그뒤로는자나깨나재목을사야한다,기와며,벽돌이며,회를사야한다,못을사야한다고성화같은재촉을받게되었다.나는그런것들을파는거리라는거리는샅샅이찾아다녔다.그것은모두가역사때문이었다.그러나그렇다고해서이런일을하는동안새로짓고있는집에서살수있는것도아니다.마침내는모두다집어치우고싶은생각이들기까지했다.그러다가드디어어느날겨우집이완성되었다.벽에는흰회칠을하고마루는깨끗하게쓸고닦았으며문이나창에는종이를바르고,벽에는서화를걸고,일꾼들은모두가버리고,친구들이찾아와서단정히여기저기놓여있는걸상에기대앉는다.아아,이또한유쾌한일이아니겠는가.
16.겨울밤에술을마시는동안에방안이몹시추워진것을갑자기깨닫게된다.창문을열고밖을내다보니,함박눈이펑펑내리고땅위에는벌써서너치나눈이쌓여있다.아아,이또한유쾌한일이아니겠는가.
17.여름날오후,새빨간큰소반에새파란수박을올려놓고잘드는칼로자른다.아아,이또한유쾌한일이아니겠는가.
18.나는오래전부터승려되기가소원이었다.그러나육식을못한다기에망설이고있었는데,이제부터는승려가되어도마음대로육식을해도좋게되었다고하자.자,그렇게되면대야에하나가득물을데워놓고잘드는면도칼로여름철이지나기전에깨끗이삭발을한다.아아,이또한유쾌한일이아니겠는가.
18.음부에조그마한습진이생겼으므로,문을단단히닫아걸고가끔더운김을쐬거나또는더운물에담그거나한다.아아,이또한유쾌한일이아니겠는가.
19.우연히가방속에서옛친구들이손수써보낸편지를발견한다.아아,이또한유쾌한일이아니겠는가.
20.어느가난한선비가돈을꾸러온다.그러나차마말을꺼내지못하고우물쭈물하면서화제를다른데로돌리려한다.퍽괴로우리라생각하고단둘이있을수있는곳으로데리고가서얼마나필요하냐고묻는다.그리고방으로들어와돈을내주고나서이렇게말한다.’이제부터곧가서그문제를해결해야만하겠나?웬만하면잠깐앉아술이나한잔들고가는게어떻겠나?’아아,이또한유쾌한일이아니겠는가.
21.지금나는조그만배에몸을싣고있다.산들바람이기분좋게불어오지만배에는돛이없다.그러자갑자기어딘선지큰배한척이나타나바람처럼빨리다가온다.나는그배로가까이가서갈고리쇠를걸려고한즉뜻밖에도잘걸린다.그래서,그배에밧줄을던져그배더러끌어달라고한다.그리고두보의시를읊는다.’푸른빛은산봉우리가지남을아쉬워하고노랑빛은밀감이익었음을알린다.’그리고유쾌하게웃음을터뜨린다.아아,이또한유쾌한일이아니겠는가.
23.한친구와함께살집을찾아다녔지만,마땅한집이없었다.그때누군가찾아와서알맞은집이있다고말해준다.그다지크지않은집으로열두어개의방이있고강을향해있으며,아름다운푸른나무에둘러쌓여있다고한다.나는그사람에게저녁식사를대접하고나서어떻게생긴집인가하는생각도하지않은채함께어슬렁어슬렁집구경을떠난다.문을열고들어가니,커다란빈터가있고곡물창고가예닐곱개나있다.그순간나는마음속으로생각하기를’이제부터는야채와참외걱정을하지않아도되겠구나.’아아,이또한유쾌한일이아니겠는가.
24.길을떠났던나그네가먼여행을마치고돌아온다.그리운성문이보이고,강양쪽기슭에서는아낙네들과아이들이고향의사투리로이야기를주고받고있다.아아,이또한유쾌한일이아니겠는가.
25.오래된자기그릇이깨지면아무리애써보았자먼저대로되지않는것은뻔한사실이다.깨진그릇을이리저리뒤집어보아도바라보면볼수록더욱화만나게마련이다.그럴때는그그릇을부엌에서일하는사람에게내주며다른낡은그릇과같이쓰라고하면서,한번깨진그그릇을또다시내눈에띄지않도록하라고이른다.아아,이또한유쾌한일이아니겠는가.
26.나는성인군자가아니기때문에좋지못한일을행하지않는다고할수는없다.밤중에그어떤좋지못한일을하고아침에일어나면그때문에매우불쾌하다.그때문득머리에떠오르는것은좋지못한일을감추지않는일은참회함과같다고하는불교의가르침이다.그래서나는알지못하는사람이거나옛날친구이거나주위의모든사람들에게,내가행했던좋지못한일에대해이야기를한다.아아,이또한유쾌한일이아니겠는가.
27.아래위로한자나됨직한커다란글씨를누군가가쓰고있다.그것을옆에서지켜보고있다.아아,이또한유쾌한일이아니겠는가.
28.창문을활짝열어젖히고방에서왕벌을내쫓는다.아아,이또한유쾌한일이아니겠는가.
29.태수가북을치게하여퇴영시임을알린다.아아,이또한유쾌한일이아니겠는가.
30.누군가가날리고있던연줄이끊어져서연이날아간다.그것을바라보고있다.아아,이또한유쾌한일이아니겠는가.
31.벌판에불이붙고있다.그것을보고있다.아아,이또한유쾌한일이아니겠는가.
33.빚진돈을모두갚아버린다.아아,이또한유쾌한일이아니겠는가.
34.규염객전(당태종과관계있는규염객의이야기를쓴무협지의원류)을읽는다.아아,이또한유쾌한일이아니겠는가.
참나무.
2013년 6월 25일 at 11:38 오전
금성탄?
이또한유쾌한일…어디서읽은기억이있어서…?
제방에함와보셔요…
특히미쿠라노소시때문에라도…
불역쾌재삼십삼측김성탄<不亦快哉三十三則>–金聖嘆