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가볍지 않는 적요함이라니ㅡ 창덕궁에서

창덕궁의관문인돈화문을지나내원에들어선다.

정승나무라고도하는회화나무가울울(鬱鬱)하다.

느티나무와회화나무를일컫는괴()는주나라이래궁내에심는나무의대표적수종이다.

사람들은꽃처럼덧없이사라지지만

오랜세월나무는그저무상여일하다.

비온뒤찬연한햇살이푸르른잎들사이로눈부시게내리꽂힌다.

왠지마음한켜고즈넉해진다.

겨우하나지났을뿐인데

이가볍지않는적요함이라니,

서울에서가장오래되었다는돌다리금천교를천천히지난다.

맑게흘렀을,

그래서궁으로들어가기전자신을비추어보았다는명당수는어디로사라져버렸을까?

말라있는물길이현대를사는우리의갈함을상징적으로보여주는지도모르겠다,

하긴유장하게흐르는한강위의거대한다리를수없이지나다니면서도

어디거기마음비쳐볼생각을한번이라도했었던가.

창덕궁은비정형적조형미를갖추었을뿐만아니라

주변환경과의완벽한조화로움이라는덕목으로

1997년세계문화유산으로등록되었다.

이제우리만의것이아닌세계인의문화유산이된창덕궁은크게네권역으로나누어진다.

치조영역인인정전선정전,

침전영역인희정당대조전,

왕후와후궁들의거처인낙선재와

동국여지승람에서상림이라불렸던금원이자비원인후원

장마속이라선지경내는의외로한가하다.

진선문숙장문인정문을지나인정전에다다른다.

이중의월대위에중층으로세워진궁인데

전각안천정중앙에는봉황한쌍이장식되어있고,

중앙에는닫집으로용상이자리하고있다.

안녕하세요,마마.

그렇게홀로높고먼닫집에앉으셔서외롭지않으셨습니까?

왠지마음이가는정조대왕께마음속의인사를건네본다.

인정전옆은창덕궁에서유일하게푸른색기와가선명한왕의공식집무실인선정전이다.

낡아있는푸른빛기와와

청와대의짙푸른지붕이자연스레연상되면서

왕과대통령의자리를반추해본다.

그때나지금이나높아서외로울것만같다.

선정전곁으로약간방향을다르게하여희정당이있다.

희정당은일상적인생활을하는곳이라선지

선정전이주는느낌과

왕비의공식집무실인대조전이주는느낌과도현격한차이가있다.

일종의완충지대라고나할까.

아마임금은인정전이나선정전에서입었던옷을

희정당에서는벗고

좀가벼워진마음으로왕비를만나러가지않았을까.

여러번증개축을했다는대조전은

큰것을만들어낸다는이름이지닌뜻처럼고압적이다.

큰것은대를이어갈왕자를이른다고하니

문득남자는세상을다스리고

그남자를여성이다스린다는

유머러스하면서도진실이가미된문장을떠올리며

슬며시미소가나온다.

크고작음의여상함도아울러훈풍처럼감지된다.

조선시대정원의전형적인특징을지닌

사단의화계에는이제꽃잎은보이지않고

짙은초록잎우거지는매화앵두살구나무가심어져있다.

오래된화단,

그안에서살아가는살아있는식물들앞에서한참서있었다.

꽃못지않게어여쁜굴뚝은

붉은색벽돌로경계와변화를준화계를장식하는멋진조형물이다.

도대체알지도못하는아주오래전사람의섬세함이

바로지척에서처럼다가와

사람의기분을상승시키는이놀라운경험이라니,

잘생긴소나무들을곁에두고

마당을거슬러

세번째권역인낙선재로향한다.

1989년까지만하여도영친왕의비()이방자여사가생활하던곳이기도하고

요절한젊은왕헌종의사랑이어려있는건물이다.

아름다운사랑의스토리도흥감한데

형형의나무들을배경으로여러채의서로다른지붕들이

닿고흩어지며하늘가에빚어내는선의예술은가히일품이다.

오호,저절묘한아름다움은의도했던것일까?

우연이빚어낸산물일까,

한참동안넋을잃고지붕에취해있었다.

오래된기품이마치내속에조금배어들기를바라는심정으로,

사치를배격한다는의미로

단청없이지은낙선재는

단아하면서부드러운느낌이오히려어느궁궐보다도그윽한아취가있다.

특히세자전용도서실이었다는

승화루(承華樓)의꽃담은

낙선재의고아한예술성을한눈에느끼게한다.

소박함의절대적미감을보여주는듯하다.

물은더욱맑고땅은더욱그윽하며해가솟아오르고,

달은항상제자리에있으며…”

정조의부용정상량문의일부를기억하며드디어금원으로들어선다.

홀로그윽히존재하면서도가장아름다운화음을만들어내는가인,

다가설때마다그만큼멀어지고더욱신비로워지는우리의가인은

부용지의햇살속에서선연히들어난다.

둥근하늘에는잘생긴소나무비상하고

네모진땅에는오히려빛이웅비한다.

한국정자건축의백미인부용정은연못에두다리를담고조촐하게서있다.

눈을조금돌리면모란나무울창한화계사이로

어수문이보이고

거대한우주에대한정조의꿈이어려있는주합루가당당하다.

과거에등극한개랑한젊은인걸들과

인문을논하는정조대왕의모습이보이는듯하다.

자연의드므

후원의연못들을나는자연의드므로보았다.

부용지를시작으로

후원곳곳에는애련지와존덕지관람지등

자연의드므가그림처럼자리하고있다.

다함없는풍취는후원의가장깊은곳의계원,

한여름에도소슬한한기를느끼게하는옥류천에이르기까지계속된다.

소소한길을따라

길이이끄는대로,흐르는물을따라물이이끄는대로

혹여바람이라도되듯걷다보면독특한모양의정자들과도저절로조우하게된다.

안녕하십니까?

당신앞에이리경건한마음으로섰사오니

바라옵건데나의어리석음을경계하여고쳐주시겠습니까?

폄우사앞에서속삭여보기도한다.

무엇보다창덕궁후원의가장큰아량은

느티나무,단풍나무,떡갈나무등우리나라어디에서나볼수있는활엽수가많다는점이다.

언제나푸르른관상수를심을수도있었을것이고

화려한꽃들이사시장철피어나는꽃나무들을식재할수도있었겠지만

창덕궁후원은자연그대로이다.

육백여년으로추정되는

다래나무와

천여년을살고도아직도푸르른잎을틔우고있는느티나무

750여년의향나무

족히삼사백살정도로추정되는회화나무등무수한노거수들이

아직도청년처럼싱싱한자태를유지하고있다.

조화는홀로이면서도함께를의미한다.

창덕궁후원의들과,

그리고들은유유자적홀로이다.

그러나그들모두는자연과함께이다.

하난가하면전체이고

전체인가하면독특한개성을지닌이다.

안긴듯품으며품은듯안겨있다.

이즈음보기드물었던고즈넉한시간….

그순간만큼은세상사다잊고고요해졌다.

애련정과저윗사진은창덕궁후원

23 Comments

  1. 士雄

    2013년 7월 25일 at 3:28 오후

    좋은글,,감사합니다!^^~   

  2. 벤조

    2013년 7월 25일 at 3:46 오후

    지금이삿짐싸는중.
    집으로돌아가서조용히다시한번읽을게요.
       

  3. 푸나무

    2013년 7월 25일 at 3:59 오후

    아벤조님여름여행끝나신거예요?
    잊어버린것없이잘싸서가셔요.
    동네가시면편안하시겠다.
    여행많이하셔서여행생각도안나고…….

    내맘대로해찰을안부린글이라
    재미가좀없죠?ㅎㅎ
       

  4. 푸나무

    2013년 7월 25일 at 4:06 오후

    사웅님도깊은밤안주무시네요
    주무세요.얼른….ㅎ   

  5. mutter

    2013년 7월 25일 at 8:52 오후

    어떻게이런글을쓸수있을까요?
    푸나무님글은대단해요.
    글쓰는실력도대단하고창덕궁에관한공부도해야할것같거든요.
    저는쭈루룩~보고말거든요.ㅎㅎ   

  6. 김성희

    2013년 7월 26일 at 12:09 오전

    이대단한관찰력과기억력,,그리고필력,,,
    거기에사진까지,,사진도푸나무님작품인가요?…
    푸나무님은,,잠도없으신가보~~ㅏㅎㅎ
    저도종달새형이되고싶은올빼미과랍니다요,,

    참,어제는지인들과여행가시는줄알았어요,,
    장례식장에가신줄도모르고,,ㅊㅊ

    어제공주출장은너무힘들어,,
    무지덥고,,온캠퍼스를이리저리돌아다니느라,,
    게다가물것의공격까지,,
    가렵다고하소연했더니이집아들도들은척도않던데요ㅎㅎ

    오늘은편안한티셔츠에로퍼신고출근,,
    시원한삼실에서만근무,,
    어느새금욜,,,^^^***   

  7. 참나무.

    2013년 7월 26일 at 12:46 오전

    아참맞아요비오시는날고궁
    특히비원…그적요…어디한번!

    아까로긴않고위엣분들처럼
    아참기막히는기억력필력…이러며읽었다우…^^
       

  8. Anne

    2013년 7월 26일 at 1:58 오전

    푸나무님글머리에넣고창덕궁을다시한번가봐야겠다.싶어요^^

    아.서울가서할일이왜이리많은거야!ㅎㅎㅎ   

  9. 공군

    2013년 7월 26일 at 7:48 오전

    고등학교이후한번도안가봤네
    그래야뭐몇년안흘렀지만…
    아냐그후로가본적이있을거야요근데기억이전혀안나고
    막아??놓은후론안들어간건확실…
    맘만있다면왜못가나…맘이약하지..
    근데그좋은데같이가자고얘기하시지…   

  10. 푸나무

    2013년 7월 26일 at 1:36 오후

    무터님이글은꽤여러날찔끔찔금.
    공부해가며쓴거예요.
    궁의이름연못이름…각의이름등….ㅎ   

  11. 푸나무

    2013년 7월 26일 at 1:38 오후

    잠은요즈음더그러네요.보통한시전후에자는데
    이즈음은두시전후에도말똥말똥.
    일찍자야피부가좋다는데….ㅎㅎ

    머든좀섞이죠.?
    어제장례식은아니었구요.
    그집아들래미나울집아들래미나.,,,
    음식쓰레가버리라고하시지…
    더많이물리셨으니
    청소기도다돌려……까지,

    내일모레쉬셔서좋으시지요?
    ,
       

  12. 푸나무

    2013년 7월 26일 at 1:39 오후

    비오는날어디든안멋지리오만
    고궁의정취는참으로그윽하지요.

    필력은
    어디막사발님만하려구요.ㅎㅎ   

  13. 푸나무

    2013년 7월 26일 at 1:40 오후

    앤님은언제성루납시시는대요.
    올만에오시니가실곳이많으시긴하시겠어요.
    여름엔고궁좀덥긴해요.ㅎ
       

  14. 푸나무

    2013년 7월 26일 at 1:42 오후

    내일둘레길재미있으시겠네요.

    그래도쎈백운대나갈까해요.
    산성쪽에서대남문이나걸을까…..
    여러분이서즐겁게놀으시고
    전혼자…..산열심히탈께요.   

  15. 말그미

    2013년 7월 26일 at 5:20 오후

    푸나무님,
    글이너무멋져읽기보다느낍니다.

    장마중이라좀더적요했나요?
    당장가보고싶은마음이…
    매력있는정조의그림자라도만날까하고요.

    참눈이밝으십니다.
    회화나무는딱우리나라에서그곳에1그루가있다고들었는데
    저는가서도회화나무는눈에들어오지도않았답니다.
    눈뜬장님.참내~~
       

  16. 참나무.

    2013년 7월 26일 at 11:06 오후

    소쏘리..습관은무섭지요일본이지은말비원..고쳐야하는데

    그나저나씨네마토크(후기4중주)는잘다녀오셨나요-은근압력…^^   

  17. J cash

    2013년 7월 27일 at 2:21 오후

    자연의드므…푸님만쓸수있는표현!!!
    주택에사는저는도둑고양이땜에더러밤에세콤이오작동하는데ㅡ
    펫트병에물을담아세워놓으면고양이가비치는제모습이큰동물로보여
    놀래도망간다고세콤직원이알려주더군요…..
       

  18. 푸나무

    2013년 7월 29일 at 1:14 오전

    말그미님은장마잘보내고게시죠.
    아마도온집안이빤짝일것같아요.
    뽀송뽀송^^*   

  19. 푸나무

    2013년 7월 29일 at 1:16 오전

    참나무님
    구천원버렸어요.
    금날
    손님이들이닥치고…아이구도무지몸을뺄수가없더라구요.
    반환도직접와서해야한다고들었거든요.

    이제앞으로에약은안할거야…다짐했어요.
    낼이나모레봐야지….ㅎ   

  20. 푸나무

    2013년 7월 29일 at 1:24 오전

    쟈니케시님
    자연의드무라는말은제가써놓고도제가반한말..ㅎㅎ
    감사합니다.
    꼭집어주셔서…..

    제가쓴글들거의
    한시간이내설렁설렁쓴글이라면
    이글은
    공부도해감서….ㅋ~
    한사흘정도조금씩쓴글이에요.

    마치
    그림그리듯
    그리워하듯…쓴글이죠.ㅎㅎ

    근데사람도고양이처럼크게보이나요.
    그래서자신을보며도망갈까요?

       

  21. 인회

    2013년 7월 29일 at 7:58 오전

    한참을정독했습니다.
    겨울에다녀온후…
    이여름의창덕궁을푸나무님의글을통해혼통그속에빠져버렸습니다.
    그숲과..
    그亭,池,,樓그리고울창할것으로생각되는나무들…(제가간겨울은나목이었거든요.)이
    푸나무님의글을통해모두함께느껴지네요.

    세세한관찰력과필력에놀랍니다.   

  22. 푸나무

    2013년 7월 30일 at 12:54 오후

    정독해주셨다니
    글쓴보람이있습니다.
    인회님…도글을좋아하시나봐요.
    울아들딸도안보는
    재미없는제글
    정독까지해주시니…..ㅎㅎ
    고맙습니다.^^

       

  23. 좋은날

    2013년 8월 21일 at 8:04 오전

    연전에다녀왔던궁궐나들이를
    다시걷는느낌입니다.

    마음이엉클어질때면다녀오곤하던그곳에서
    이가을을맞이하고싶어지게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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