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석 편지
BY 푸나무 ON 9. 18, 2013
부엌,이라는말을들으면나는곧잘슬퍼져요부엌은늙거나사라져버렸으니까요
덩달아부엌,이라는말도떠나가겠죠?안그래도외할머니는벌써돌아가시고어
머니는부엌에서더는고등어를굽지않아요아,하고입을벌리고있던아궁이
생각나요?아아,나는어릴때아궁이앞에서불꽃이말을타고달린다고생각했어
요그것은말도안돼,하면서도말이된다고생각했어요말이우는소리로밥이익
는다고생각했어요알아요?아궁이는어두워지면부엌의이글거리는눈이되어주었
지요참크고붉은눈이었어요이제아무도자신의붉은눈을태우지않아요숯불
위에말이쓰러져요나는세상이슬퍼도분노하지않아요//붉은눈/안도현
어젯밤…깊은밤…혼자달을보려했어요.
소동파처럼…혹은그친구처럼
달빛때문에친구를찾아오가지는못한다하지라도
벗과함께말없이그저달빛에젖은만물을느끼지는못한다할지라도
달을볼수는있잖아요.
휘영한보름달,추석달..
봐줘야하잖아요.
세상을공평하고소담하게가득비치고있는그달빛.
날카롭과눈부신태양빛을한번더몸안에서삭혀
부드럽고은은하게만들어우리를비추는그달빛이요.
날마다는그리하지못한다할지라도
이무렵..계절이오가는이무렵….
휘영하니요.
유별나게어두운하늘을높고짙푸르죠.
낮에만하늘이푸른게아니에요.
마네선생은그리생각하지아니하실지라도
내겐그래요.
밤하늘….짙푸르죠.
낮의그파아람과는다르지만
밤하늘…그어두운짙푸름..분명블루에요.
그러나어제나는그리하지못했어요.
많은사람들과이야기를해야했죠.웃어야했구요먹어야했고과일을깍았고
어느분께는아주깨끗한흰접시에사과를
그왜토끼사과..있잖아요,
여섯쪽을아주예쁘게깍아서네개는가지런히
그리고두개는살짝옆으로….
아주깔끔하고어여뻤어요.평소의나답지않는오랜만의멋부림이었죠.
이즈음은그런짓
야지랑이라고여겨잘안하거든요.
그냥퉁명스럽게…..
사과껍질이좋대드라..그러니그냥먹어…
잘씻어서그냥네조각뭉툭하게깍아주는거죠.
생각은…어찌보면점점더섬세해져가는것같기도한데
몸으로해야하는일은점점굵어져요.
그리고
어머!..도.
사실안해도되는데안해야맞는데도어머!를톤높게발하곤했어요.
어느분께는그랬죠.
‘밥먹는게엄청중요한일인가봐요.
몇번같이식사를해선지지난번먼발치서뵈니디게반갑던걸요…..‘
이말은아주거짓말은아니에요.
그분과는실제식사를했고
그것도자주먹는밥이아닌상당히비싼밥을사주신분이었거든요.
그리고인상도좋으셔서…
무슨모임에선가먼발치로뵐때반가운마음이든것두사실이었구요.
그러니까그러더라구요.
그게가슴속에있을때는아주작은거라도
진실이고진심이고진짜에요.
근데그게세상속으로…희번득한빛속으로…나와버리면
진실은감해지고진짜는약해지고진심은…흐릿해지죠.
관계를위해서
내안의것을내보여버리면소멸되어버리는게있구나….
이제자꾸헛헛해지는시간이다가오는데
마음속의것들을그렇게가볍게천박하게자꾸꺼내지말아야겠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