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 좋은 저녁이야
BY 푸나무 ON 2. 10, 2015
유서를쓰기딱좋은저녁이야
밤새워쓴유서를조잘조잘읽다가
꼬깃꼬깃구겨서
탱자나무울타리에픽픽던져버리고
또하루를그을리는굴뚝새처럼
제가쓴유서를이해할수가없어서
종일들여다보고있는왜가리처럼
길고도지루한유서를
담장위로높이걸어놓고갸웃거리는기린처럼
평생유서만쓰다죽는자벌레처럼
백일장에서아이들이쓴유서를심사하고
참잘썼어요,당장죽어도좋겠어요
상을주고돌아오는저녁이야/참좋은저녁이야//김남호
유쾌,발랄,상큼한시다.
이시를읽으며갑자기유서가쓰고싶었다.
아침인데도저녁처럼유서를쓰고싶었다.
굴뚝새처럼왜가리처럼기린처럼자벌레처럼
사실밤과저녁은아주다르다.
밤은…깊음이내재되어있어
결국생을돌아보게하는<유서>라는무거운,깊은장르의글에
어울리지않아밤은,
그렇다고환한낮에
그산만한낮에
햇살이모두를비추며말을거는..
(햇살이모두를비추며말을거는…..
이런문장은사실매우개념적인이야긴데
이제는아주가끔개념이형상화되는순간들이있어지곤하더라.
섬세해서가아니라세월이주는경험의축적들이
어느한부분에부딪혀선명해지는순간이라고나할까,
보편화할수없는나만의특별한정서긴하지만….
며칠전제천의자드락길을약간걸었다.
자드락길이란이름이붙은많은길들중얼음골
그얼음골길중아주조금
그렇게낯선길을걷노라면내발이닿는아주작은길이
문득아주잘쓴시처럼여겨지기도한다.
세상의수많은시들중아주특별하게내게다가온시
세상의수많은길들중의하나가내앞에현현해있으니….
그길에눈이나폴거리며내렸다.
이상하게차에서내리자눈이나풀거리며몇개내리기시작했다.
깊은겨울눈이아니라
11월중순에갑자기내리는첫눈처럼
그러니마음이어떠했을까?
세상에….만읖조리며길을걷게되더라
詩…속을걷는일아니겠나.
눈은,
낯선길위에나폴거리며내리는눈은
부유하는시어
그렇게걸어장방사라는절에다다랐다.
거대한바위위에자리를잡은절
절에는흥미가없어선지전혀미적감화를주지못하는데
그곳에서바라보이는산그리메들은정말일품이었다.
선명하고뚜렷한자락들이거리가멀어질수록아스라한자태로
그늘진곳에는여전히야트막하게눈이쌓여
겨울의정취를나타내주는….
구름이옅게끼었다가사라지고겨울햇살이환하게드러났다.
산에서다가오는거친추위에질렸는지
누렇게질려있던대나무잎이
햇살아래서두런거리며순간에연두처럼변했다.
따스한햇살이말을걸어오니화답하는대나무
원래대나무는사철푸르르지만
그대신저쪽내고향아래쪽을좋아하는식물이다.
그런데중부지방인제천더군다나깊고높은산자락에자리를틀었으니
햇살이모두를비추며말을거는구나.
를생각했다.)
그러니저녁답은아주유서쓰기에딱맞은시간이다.
깊지도옅지도않은시간,
그런데유서에는무엇을써야하나
다들유서하면재산을떠올리던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