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 좋은 저녁이야

유서를쓰기딱좋은저녁이야

밤새워쓴유서를조잘조잘읽다가

꼬깃꼬깃구겨서

탱자나무울타리에픽픽던져버리고

또하루를그을리는굴뚝새처럼

제가쓴유서를이해할수가없어서

종일들여다보고있는왜가리처럼

길고도지루한유서를

담장위로높이걸어놓고갸웃거리는기린처럼

평생유서만쓰다죽는자벌레처럼

백일장에서아이들이쓴유서를심사하고

참잘썼어요,당장죽어도좋겠어요

상을주고돌아오는저녁이야/참좋은저녁이야//김남호

유쾌,발랄,상큼한시다.

이시를읽으며갑자기유서가쓰고싶었다.

아침인데도저녁처럼유서를쓰고싶었다.

굴뚝새처럼왜가리처럼기린처럼자벌레처럼

사실밤과저녁은아주다르다.

밤은깊음이내재되어있어

결국생을돌아보게하는<유서>라는무거운,깊은장르의글에

어울리지않아밤은,

그렇다고환한낮에

그산만한낮에

햇살이모두를비추며말을거는..

(햇살이모두를비추며말을거는…..

이런문장은사실매우개념적인이야긴데

이제는아주가끔개념이형상화되는순간들이있어지곤하더라.

섬세해서가아니라세월이주는경험의축적들이

어느한부분에부딪혀선명해지는순간이라고나할까,

보편화할수없는나만의특별한정서긴하지만….

며칠전제천의자드락길을약간걸었다.

자드락길이란이름이붙은많은길들중얼음골

그얼음골길중아주조금

그렇게낯선길을걷노라면내발이닿는아주작은길이

문득아주잘쓴시처럼여겨지기도한다.

세상의수많은시들중아주특별하게내게다가온시

세상의수많은길들중의하나가내앞에현현해있으니….

그길에눈이나폴거리며내렸다.

이상하게차에서내리자눈이나풀거리며몇개내리기시작했다.

깊은겨울눈이아니라

11월중순에갑자기내리는첫눈처럼

그러니마음이어떠했을까?

세상에….만읖조리며길을걷게되더라

속을걷는일아니겠나.

눈은,

낯선길위에나폴거리며내리는눈은

부유하는시어

그렇게걸어장방사라는절에다다랐다.

거대한바위위에자리를잡은절

절에는흥미가없어선지전혀미적감화를주지못하는데

그곳에서바라보이는산그리메들은정말일품이었다.

선명하고뚜렷한자락들이거리가멀어질수록아스라한자태로

그늘진곳에는여전히야트막하게눈이쌓여

겨울의정취를나타내주는….

구름이옅게끼었다가사라지고겨울햇살이환하게드러났다.

산에서다가오는거친추위에질렸는지

누렇게질려있던대나무잎이

햇살아래서두런거리며순간에연두처럼변했다.

따스한햇살이말을걸어오니화답하는대나무

원래대나무는사철푸르르지만

그대신저쪽내고향아래쪽을좋아하는식물이다.

그런데중부지방인제천더군다나깊고높은산자락에자리를틀었으니

햇살이모두를비추며말을거는구나.

를생각했다.)

그러니저녁답은아주유서쓰기에딱맞은시간이다.

깊지도옅지도않은시간,

그런데유서에는무엇을써야하나

다들유서하면재산을떠올리던데

(근데돈은참이대목에서도삭막하기그지없구나)

별로남길것이없으니

주절거릴일이없고

인생에대한소회는굴뚝새의그것보다더지루한일일테고

혹시나회한에대하여적는다면

아마도

왜가리유서보다더난해할수있을것이다.

겨우가장가까운아이들에게나

야아살아보니그렇더라,

아주가끔왜가리가사람들쳐다보는거보다더가끔말하지만

모든인생이지극히개별적인것이라는것을저들보다내가더잘아니

슬며시꼬리를감출수밖에없다.

그렇다면유서에무엇을적어야하나…..

정말환하고밝은아이들에게아주잘썼어요.칭찬받고싶은데

그러고보니정말유서를써봐야될것같기도한데

적어도유서를쓸준비를해가야될텐데

그러보니유서는가장어려운글쓰기이구나.

죽음처럼

미래처럼

아득하고요원하구나.

그래서저시인저런시를썼구나.

누구의묘비명이생각나네.

내그럴줄알았지

혹저녁답이아니라선가….

9 Comments

  1. 데레사

    2015년 2월 10일 at 3:52 오전

    아직유서를써본적이한번도없거든요.
    이제한번써볼까요?
    저녁답에.

    인생도저녁답이니때도저녁답에쓰면좋을것같아요.   

  2. Angella

    2015년 2월 10일 at 5:04 오전

    유서쓸것은없고…
    저는그냥평소에
    나죽거든베옷은싫으니무명한복으로입혀달라고했지요.ㅋ
    그러고보니남길것이별로없구먼요…
       

  3. 벤자민

    2015년 2월 10일 at 7:29 오전

    여기는우체국에유사를팝니다
    그냥동네JP에게싸인받으면인정되지요
    뭐거창하게변호사까증동원할것도없고요
    사실변호사동원할만것도없지만요^^

    건데
    요즘은푸나무님이저에게자주강조?하시는
    몇푼안남은비자금!!
    이거라도딸에게전해줄라면어떻게해야할까하고고심?하다가
    얼마전에둘이만맥도날드사먹으면서딸에게야기했어요
    아빠방에작은깡통저금통있지
    혹시나무슨일로불시에죽으면
    그거파인애플따는거로손안비게잘따서
    그안에너에게보내편지가한장들어잇으니읽어봐!
    아빠뭔소리?그작은깡통안에현금들어있어봐야얼마없겠구만은ㅎㅎ

    그래도
    빚안남기고가는것만도
    유서쓰는보람ㅎㅎ   

  4. mutter

    2015년 2월 10일 at 2:21 오후

    유서는저녁에써야어울리는거예요?ㅎ흐~
    난그런면에서수학적인사람인가?느낌이없어요.
    아무때나아무렇지않게유서를쓸수있거든요.
    간단하게요약해서5가지조건에맞추어서.
       

  5. 푸나무

    2015년 2월 10일 at 2:44 오후

    데레사님
    저두유서안써봤어요.문득이시를읽으니써볼까……
    근데정말무엇을써야할지모르겠던데요.

    인생도저녁답이니때도저녁답에쓰면좋을것같아요
    명언이십니다.ㅎ
    아직저녁답이니청춘이신거구요.   

  6. 푸나무

    2015년 2월 10일 at 2:45 오후

    안젤라라님도저비슷하신가봐요.
    아무리봐도남길게별로없어서

    저두베옷은싫어요.
    편안한평상복이괜찮겠군요.
    글고보니박완서…의글생각이나네요.
    외국에이민가서너무나이쁜옷을만드는집에서
    일을하는데하이뻐서
    아무도없는틈에이것도입어보고저것도입어보는데
    나중에보니장레식에입을옷이더라는이야기요.
       

  7. 푸나무

    2015년 2월 10일 at 2:50 오후

    벤님
    비자금이야기는벤님이시작하셔놓고….ㅋㅋ
    우체국에서유서를판다면서식이있겠네요,
    그서식이뭔지궁금궁금ㅎ

    에또다시비자금으로돌아와서
    그러니까그비자금을부인도아니고
    아들도아니고딸에게준다는말씀이시네요.
    벤님도딸바보시구나…
    아내바보가더지헤로운건데,,,ㅎ

       

  8. 푸나무

    2015년 2월 10일 at 2:53 오후

    무터님전이글을쓰면서
    정말유서를쓴다면뭘적어야하나
    곰곰히생각해봤는데
    생각이없던데요.
    무터님5가지가궁금하군요.

    저시상으로는그렇다는거지요.
    저녁답이
    유서쓰기에…
    근데제가생각해도
    저녁답이괜찮을것같아요.
    가능하다면커다란창문에
    이제막어스름이스멀거리며다가올때…^^*   

  9. trio

    2015년 2월 10일 at 10:41 오후

    푸나무님,한국에서는어떤지모르겠지만
    미국에서는적어도재산이10만불(한국돈1억?)이상인사람들인경우
    유서를포함한서류인LivingTrust를만들어놓지않았을때,
    유사시에재산상속이나모든문제들이법정에서해결되니까
    시간도많이걸리고비용도많이들고상속세도많이내게되므로
    젊어서부터만들어놓는답니다.
    물론젊어서만들었다가중간중간내용을변경할수도있구요.
    유서는실리적으로,재산분배가주요사항일테구요.
    유서가없을경우의불상사를대비해서..

    다만자녀들에게남기고싶은말은유언이라고해야할까요?
    자녀들이두고두고부모님의유언을기억하며일생을살수있도록유언을
    남기는것도아주중요하겠지요.

    누구나가는인생이니까…뭐심각하게생각할것은없을것같아요.
    오랫만에댓글오픈하셔서반갑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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