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정행선생님의 비목

가을이이토록<맑음>인가맑음을보며맑음속에서걸어다니며

하루내내생각한화두입니다.

맑음은혼자존재하는사물은아니지요.

들판에하늘에노오랗게익어가는나락속에

그어떤사물보다더확연하게존재하더라는거지요.

강원도양구는우리동네보다훨씬더이르게벼들이익어가더군요.

보리가익어가는여름의노란빛과나락이익어가는가을의노란빛은

여름과가을의차이만큼이나다르지요.

색의갈래는아마우리네몸속을흐르는핏줄만큼많을거예요.

그많은색들에보는사람의감정이이입되기시작하면

실제보이는것보다더많은해석의여지들이들어서기시작하겠죠.

고흐의보리밭도형언키어렵지만

양구의들판그노란빛도형언키어려웠어요.

특히을지전망대….세상에얼마나날씨가맑던지

금강산자락인가칠봉이보이더군요.

그러니바로곁의펀치볼……

외국종군기자가가칠봉에서내려다본마을이

마치화채볼같다고해서붙여진별호인데.

해발천여미터가넘는여러개의산봉우리속에들어앉은마을,

펀치볼이지닌나락의노란빛은

울컥할정도로아름답더군요.

어우러짐탓이지요.

맑고푸른하늘빛이스며들고깊은산의정기가스며들며

이제막새로운시간의옷을갈아입기시작하는

그어느때보다원숙한기품을지니기시작한나무들

그리고풀들이함께어우러지는…..

낙향하여계시는선생님동네도가을이무르익어가겠습니다.

아조금아래쪽이라아직초록중일수도있겠구요.

혹전번이바뀌셨을지도모르지만

그래도선생님께아주오랜만에이리글을쓰는것은

어제다녀온양구두타연트래킹때문입니다.

DMZ안에있는작은폭포와작은연….을갔었어요.

사람의흔적이적은나무들은뭔가좀달라요.

북한산나무들이사람들에치어

아주당당하고날카롭게나무의시선으로사람을바라본다면

두타연주변의숲과나무들은고즈넉하게사람들시선을피하는

마치내가만난인도의오릿사사람들같았어요.

두타연은단장의능선’‘피의능선으로엄청난전투가벌어진곳이라고해요.

그곳에조성된전투위령비….앞에서우리를안내해주던해설사는

이곳의치열했던전투가<비목>을낳았다며

비목을틀어주는거예요.

아이참촌스럽긴….이마를살짝찌푸리며뒤돌아서는데

세상에선생님목소리가들리는거예요.

초연히쓸고간깊은계곡깊은계곡양지녘에

비바람긴세월로이름모를,이름모를비목이여

먼고향초동친구두고온하늘가

그리워마디마디이끼되어맺혔네.

궁노루산울림달빛타고달빛타고흐르는밤

홀로선적막감에울어지친울어지친비목이여

그옛날천진스런추억은애달퍼

서러움알알이돌이되어쌓였네

나는참생각지도못했어요.

기가폰에서흘러나오는노래한줄기가그토록이나나를사로잡으며사무치게할줄은말이죠.

비목너무익숙하잖아요.

교과서에나온곡들은다그렇잖아요.

너무익히알아서시시하고특별함이없는것요.

그런데그런데

노래가그림을그리는거예요.

푸른하늘이도화지라도되듯

나무들….이목탄이라도되듯

흑백의드로잉이거기펼쳐지는거예요.

사람발길닿지않는곳이라고

시간이흐르지않을리가요.

들꽃들은무심한듯피거나지고있습니다.

초연이….

이미사라져버린초연이가느다랗게보이는듯했고

<참화속생명을잃은흙에깔린돌무더기하나를만날수있었다.필경사람의손길이간듯한흔적으로보나푸르칙칙한이끼로세월의녹이쌓이고팻말인듯나뒹구는썩은나무등걸등으로보아그것은결코예사로운돌들이아니었다작사가한명의의글>

그리움이이끼가되어는정말절창입니다.

그것도마디마디라니요.

나무로만들어진비목에서

십자가를연상했고..

<한번은대원들과함께순찰길에서궁노루즉,사향노루를한마리잡아왔다.정말향기가대단하여염소만한궁노루한마리를잡았는데온통내무반전체가향기로진동을했다.그런데문제는그것이아니고그날부터홀로남은짝인암놈이매일밤을울어대는것이었다.덩치나좀큰짐승이울면또모르되이것은꼭발바리애완용같은가녀로운체구에목멘듯캥캥거리며그토록애타게울어대니정말며칠밤을그잔인했던살상의회한에잠을이룰수가없었다.더구나수정처럼맑은산간계곡에소복한내누님같은새하얀달빛이쏟아지는밤이면그놈도울고나도울고온산천이오열했다."궁노루산울림달빛타고흐르는밤"이란가사의뒤안길에는이같은단장의비감이서려있는것이다작사가한명희의글>

그렇게만화를좋아하던어린시절에도

싸움만화나전쟁만화는거들떠보지도않은걸요.

지금도솔직히전쟁영화는….별로좋아하지않아서

태극기휘날리며도보지않았어요.

그런데이제막가을빛물들어가는산…..

장군바위가멀리보이는산

그앞위령탑앞에서

선생님의목소리로비목을듣는데

삽시간에전쟁이,

전쟁의상흔이,

전쟁속에서목숨을잃은젊은이들이

전쟁을하지않고는살수없는인간의탐욕이

적막한깊은산속

.아무도찾는이없는묘

(묘는기억이겠지요)조차없는유골들이

마치영화속에베레스트눈사태처럼

선생님노래속에서휘몰아쳐오더군요.

해설사의구령에따라묵념을하고….

DMZ…공원에있는조각들을보았습니다.

연명이라는제목으로아가미를형상화한작품은

내겐땅에묻혀져가는….잊혀져가는군모처럼보였어요.

쑥부쟁이와구절초의시간들입니다..

양구의들국들은키가조금작은듯하더군요.

바람이혹세차서일까….그래서일부러키를키우지않은걸까,

사진을찍는내게어느분이그래요.

이게엉컹퀴같은데조금작네요…..

,각시취예요.각시는예쁜꽃들에게얹어주는왕관같은거죠.

희디흰참취가드문드문피어나있었고

연보랏빛쑥부쟁이….와그보다훨씬꽃송이수가작은구절초들

흰빛분홍빛….들이피어나있었어요.

엉컹퀴이야기를하신분이또그러더군요.

이곳은외래식물들은거의없겠네요.

아네그렇겠죠.그래도미국쑥부쟁이도있긴하던걸요.

처음그작은강의실에서뵐때

선생님의겸손하고다정하신모습은

노년에이르러서야피어낼수있는

그것도절대아무에게서나피어나는것이아닌

드물게보는아름다운꽃아닌가.

두번째뵐때

제작은글한꼭지를

세종문화회관에서하는공연보다더크게생각하신다는

커다란칭찬을서슴없이제게해주시던,

그리고선생님을좋아하시던분께서주최하셨던

밥과함께하는처음공연….이라고말씀하시던

임페리얼호텔에서했던공연도

제겐잊을수없는시간입니다.

차창으로보이는소슬하고아담한가을풍경들은삽시간에스쳐지나가버립니다.

나도시간속을그렇게달려가고있겠지요.

다시오지못할시간일지라도

아름다운기억은힘이있습니다.

선생님에대한제기억도

그리고지금올해

양구의가을도

비목도

펀치볼도

지금

마디마디

이끼되어가고있는중일겝니다.

2015년구월

가을편지로안부를여쭙습니다.

엄정행선생님께위영올림

>;

2 Comments

  1. trio

    2015년 9월 19일 at 4:52 오전

    엄정행님…많이늙으시지않았나요?
       

  2. 푸나무

    2015년 9월 21일 at 8:14 오전

    저보다는조금더연배시겟지요?
    그래도몇년전제가뵈엇을때믄젊고아주아주멋지셧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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