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이까짓 것 쯤이야!’ 힘들 때마다 징용간 남편을 생각했다.

한분은 일본으로 징용간 남편 용규 소식이 많이 궁금했다.전해져 올 소식을  매일매일 고대하며 건강히 살아 있길 간절히 바랐다.  매일 저녁마다 앞 마당에 정수물을 떠 놓고 하늘을 보면서 빌고 또 빌었다.매일 그 시간에 마음 깊은 자리에서  조용히 남편과 만났다.남편 없이 시부모를 모시고 살기는 보통 힘든 일이 아니었다.시집와서 이제 좀 적응했다 싶은 1년이 지났는데 그냥 잠시 헤어진 것도 아니고 정처없이 기약없이 떠난 일본 징용은 17세가 겨우 지난 새댁에겐 가슴을 도려내는 아픔이었다.그 공허함 또한  이루 말 할 수 없었다. 3개의 작은 방들이 딸린 시골 초가집이 너무도    큰 집처럼  허허벌판처럼 느껴졌다.오빠처럼 늘 기대고 싶었고 마냥 좋기만 했던 신혼의 1년 동안 담아 두었던 이야기들을 꺼내 기억하고 또 꺼내  가슴에 품었다.

분명 곧 다시 건강히 만날 거란 믿음을 가지니 다시 몸 속에서 잠자고 있던 힘들을 깨워 낼 수가 있었다. 어느날 조금씩 몸이 달라지는 것을 느꼈다.입 맛을 크게 굳히지는 않지만 평소와 다른 입 맛이 자신의 몸이 달라지고 있음을 금새 알게했다.14살에 시작된 월경이 그냥 지난 달 없이 너무도 규칙적이었는데 달걸이가 없어 이상해서 자기 몸의 변화를 통해 한분은 금방 임신했다는 것을 알아차렸다.힘들고 어려운 중에도 기쁘고 감사한 큰  소망이 생겼다.

시부모 하루 3끼 식사 준비며 집 안 일이며 시어머니가 이웃에서 거둬다 주는 바느질까지 하다보면 몸이 천근만근이되었다.’이게 바로 시집살이라는 것이구나! ‘싶은 생각도 들었다.시부모가 너무도 잘 해 주는데도 며느리 입장에서 친정 부모한테 하던 식으로 대하긴 어려운 것이 당연했다.그러나 금새 그 생각을 내려 놓았다.징용으로 끌러간 남편은 지금 어떤 일로 어떤 고생을 하는지 모르고 생명은 안전한 곳에 있는지 조차 모르는 상황이기에 한분은 힘들 때마다  ‘이까짓 것쯤이야!’라는 말을 스스로에게 했다.마음 속의 힘찬 격려와 응원의  이 말로 자신을 세우고 이겨 나갔다.정말 신기하게도 ‘이까짓 것 쯤이야!’라고 생각하면 모든 것을 쉽게 이길 힘이 생겼다.

남편이 일본가서 전쟁터에 배치 되었는지? 탄광으로 끌려 갔는지? 아니면 조금이라도 안전한 곳에서 다른 일을 하는지? 도통 알 길이 없었다.편지라도 분명 올거라는 기대가 한결 한분을 안심시켰다.힘들 때지만 임신을 한 것은 정말 너무도 기뻤고 남편을 기다릴 수 있는 든든한 힘이 되었다.

시어머니가 드디어 며느리의 잉태 소식을 알고 크게 기뻐했다.며느리를 딸처럼 아끼고 사랑하는 시아버지는 더더욱 기뻐했다.시집 오자마자 혼자 살게 된 며느리가 안쓰러워 어쩔 줄 몰랐는데 아이를 가졌다니 많이 안심이 되었다.아이 키우면서 남편을 기다리기가 힘든 일이지만 홀로 외롭게 기다리기 보다는 훨씬 낫기 때문이었다.

감사하게도 입덧이 그리 심하지가 않았다.힘들긴 해도  평상의 일들을 무리 없이 잘 해 낼 수 있었다.한분은 매일 잠들기 전에 조용히 남편을 그리워하며 곁에서 이야기 하듯이  마음을 담은 글을 썼다.

“여보! 몸은 성케 잘 지내시는지요? 당신이 떠난 지 벌써 세 달이 훨씬 지났네요.당신이 떠난 빈 자리가 어찌나 크고 황망한지요.내 안에 눈물 통이 그리 큰지를 진작 몰랐어요. 매일 당신 생각에 그리움 밭이 커져 갑니다.고맙기도 하지요.그 그리움 밭을 가꿀 씨앗이 심겨졌어요.저에게 소망을 준 참으로 기쁜 일입니다.당신도 참으로 좋아하실 일이고요.그래서 기쁘고 감사합니다.아버님,어머님도 건강하시고 참 좋으신 분들이세요.저가 잘 이겨 낼 수 있는 것이 두 분 덕분이기도하고요.막내인 당신을 사지에 떠나 보내 놓고 두 분도 늘 마음 아파 하세요.그래도 저가 곁에 있을 수 있으니 얼마나 다행한 일인지요.저가 복이 많아요.이렇게 좋은 당신과 좋은 시부모님을 만났으니요.우리 걱정 마시고 당신 꼭 식사도 잘 챙겨 하시고 어찌 되었건 건강 잘 챙기셔야됩니다.우리 걱정일랑 눈꼽만큼도 하지 마시고요.몸 성히  계셔야 됩니다.그래야 우리 모두 함께 행복하게 다시 또 만날 수 있으니요.힘든 중에도 당신 생각하면 이겨 낼 수 있어요. 정말 ‘이까짓 것 쯤이야!’싶습니다.다 당신 덕분입니다.입덧이 조금 시작되었는데 한결 좋아졌어요.내 몸에 변화가 시작되네요.매일매일 당신한테 들려 줄게요. 우리들의 아가가 생겼어요.참으로 기쁘고 놀랍고 감사한 일이에요.당신이랑 이야기도 많이 했는데 몸은 지금 떨어져 있지만 저는 여전히 당신과 늘 이야기하고 있습니다.마음 편히 몸성히 잘 지내세요.’사랑하는 당신의 아내 한분”

한분은 조금씩이지만 남편을 향해 말하듯이 글을 썼다.혼자 지내는 겨울 밤이 그리도 길더니만 이제 태중의 아가에게도 아버지 이야기 해 주면서 함께 기다릴 수 있으니  그 밤이 참으로 포근하고 따뜻하게 전해왔다.(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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