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억을 더듬으며(다섯번째 얘기)

그이가한국전통식결혼을하자고제안했습니다.

자기는한국사람들이아름다운한식을버리고양식으로결혼하는게이해가안된다고하면서말이죠.

우리는여기저기를알아보다’남산한옥마을’에서하기로결정했습니다.

그리고한복도맞추고그이한복은’질경이’에서사고그러면서준비를했지요.한식으로하니예식비도덜

부담스럽고색다르면서괜찮은결정이었다는생각이들었습니다.

마침내결혼식날.

저는일찍동생이아는후배가일하는롯데호텔에서화장,머리를하고당시그이역시긴머리여서머리를

손질하고기념앨범도만드느라분주하게보내면서결혼식을하게되었습니다.동생이샤프롱역할을해

주었고요.

저는결혼식이진행되는동안머리속이복잡하면서’이제어떻게잘꾸려나가야하나’라는상념에마음이

무거워졌는데반면그사람은그저싱글벙글하고저를계속뚫어지게쳐다보면서열심히하고있더군요.

후에그가저보고"와무섭고굉장히이성적이다…어째식이진행되는동안한번도나를안쳐다보고그렇게

아래만내려다보고있을수있어?"이러더군요.

그렇게식을끝내고그안에서식사도하고인사도하면서식을마쳤는데부모님께죄송한생각이들었습니다.

‘어찌자식의결혼식을두번이나해주셔야한단말인가’하는생각에정말부모님을위해서도잘살아야겠다는

다짐을해보고결혼식사진에있는우리두아들을위해서도좋은부모가되야겠다는또한번의찐한(?)결심을

하게되었습니다.

그이가한국에서일하는것은자기회사를위해임시로온것이기에따로시간내어신혼여행을갈여유가없고

내년휴가를맞추어가기로하였습니다.그리고새로운우리의보금자리로들어갔습니다.

그이회사에서제공해준아파트가신당동’남산타운’이었거든요.물론우리들이선택했고회사에선1년치

월세를다내주었구요.거기다한달식비도따로나오고아뭏든해외근무에대한혜택이꽤많더군요.

그렇게새로운생활을시작하면서우리둘째는초등학교를새로옮기고첫째는일년은원래다니던중학교를,

그리고학년이바뀌면서근처학교로옮기게되었습니다.저는파트타임으로대학에나가토익을강의하고

말이죠.

새로운환경과생활에적응하면서아이들도만족해하고부모님께서도처음에우려하셨던것보단좋아보이는

생활에대해걱정을덜으시면서순탄한생활의연속이되어갔습니다.단지그이직장이멀어지하철로두번이나

갈아타야하는고충만빼면말이지요.

바로아파트뒤가산이라주말엔아이들과그이와가벼운등산도했었는데시간이가면서점점아이들도빠지고

그이도처음관달리열기가식더군요.남산과아주인접해있어주변환경도쾌적하고교통도편리해아주

만족스러운생활이었습니다.

그렇게일년을지내고6개월을더연장하여지내던중그이가급하게본국으로다녀와야할일이생겼고그이는

캐나다로다니러갔는데저는가족들과부산으로여행을다녀온다음날그이를픽업하러인천공항으로향하던중

제생에있어가장큰교통사고가난것입니다.

그전날부산에서운전하고돌아와몸이많이피곤한건사실이었지만2월의쌀쌀하면서도따쓰한햇살을받으며

운전하며공항으로가던중졸음이막쏟아지는겁니다.제자신도억제못할만큼졸음이쏟아지는데순간깜박

했던것같습니다.

뭔가에부딪히고그리곤정신을잃었는데정신을차렸을땐엠블런스안이었고그와중에도"남편마중가야하는데요.걱정할거에요.저희친정집에전화좀해서기다리지않게해달라고말좀해주세요."이랬던겁니다.

친정전화번호를알려주고그이핸드폰번호도알려주고그리곤또정신을잃고말았습니다.

이번에정신을차렸을땐병원이었는데어머니,아빠도보이고애들도남편도동생도모두울면서저를바라보면서

한소리를하시는겁니다."정신이나니?괜찮아?아이고너그만하기다행이다.다천운이라고하더라."

차는형체를알아볼수없을만큼망가져폐차했고저는졸다중앙가아드레일을들이박고이번엔오른쪽으로가서

쳐박히게되었는데그나마다행인것이뒤따라오던차가없었고공항길이라설치되어있던카메라가절발견했다는

거였습니다.

깨어나자마자드는생각이’아우리불쌍하신어머니를위해서,또우리아이들고아안만들려고하느님께서날

살려주셨구나.’하는감사함부터느끼게되었습니다.웬지내가운이좋아서살았다는생각은전혀들지가않더군요.

후엔그이가아직결혼한지도얼마안되는신혼에다그나마아내잃을운이아니라그런거라는생각도들었구요.

그이는눈물이맺혀저의손을꼭잡으며만약안좋은일이일어났었으면자기도저를따라갈준비를하고있었

다고하더군요.비록말로라도(?)기분이좋아지면서그이에게잘해야겠다는생각이절로들었습니다.

살아있음에나를위해서가아닌가족들을위해서주님께감사의기도를드리게되고인생을겸허하게봐야함을

깨달게된큰계기가된듯합니다.병원에있는동안그야말로많은생각들을하게되었고앞으로의생은덤으로

얻은것이니만큼내자신을위해서라기보단더나은뭔가를위해서생활해나가야한다는일종의책임의식도

지니게되더군요.

한한달정도를병원에있다드디어퇴원을했습니다.그간의남편과부모님을비롯한온가족이보여준염려와

사랑은너무도극진하여다시한번가족애를깊이느꼈던시간들이었습니다.

그리고서서히몸을추스리고있던어느날애들아빠의전화를받게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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