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곳에서 좋은 만남을…

오랜세월을알고지내온사람들을만나는기쁨은더깊은게사실인것같다.어린시절순수
했던그마음을그대로간직한채,어느새나도모르게그시절로되돌아가있는내자신을발
견하게된다.그리고그때의순진한모습,동심이되어재잘거리며흥겨워하게된다.그래서
나이드신할머니들께서도오랜만에옛친구를만나면가랑머리소녀가되어평소의어투가아
닌오래전의모습과어투를드러내는걸이젠이해할수있다.

어제는아주어려서부터의이웃사촌을시작으로,언니가없는내게각별하게느껴지는아는
언니를만났다.친정에서아주가까운덕성여대안에서동생과함께만났는데거기엔또그
언니를통해알게된언니의친구둘까지나와있었다.허그를하면서오랜만의만남을유쾌
하게시작했다.서로바쁜생활탓에언니들도셋이뭉친건아주오랜만이란다.

나와동생,그언니와의만남도오랜세월을지나오면서곰삭고,뭉근한맛을지닌사골국물같
지만언니들셋의관계도옆에서보기에조금은특이하게엮어진,끈끈한사이다.두언니는
이웃사촌이었고,내가아는언니의친구가또자신의고등학교동창이었던친구를소개해줘서
서로친하게된사이.그런데언니들사이가웬만큼친한동창끼리보다도훨씬친해보인다.
거기에나와동생까지그언니들과서로알고지내는사이이니사람과사람의만남,인연은참
신비로운게맞는것같다.

덕성여대는몇년전내가영어를가르치기위해들락거려본적이있는곳이라더애틋했지만
그곳에멋진커피숍이있다고언니가내게알려줘서가보게되었다.그런데막상가봤더니
거기에정말언니말대로산이병풍처럼둘러쳐진정경을앞에두고멋진테라스커피숍이아
주착한가격과함께얌전히앉아있었다.오!~정말이런곳은두고두고아껴가며애용해야
지~싶어졌다.

언니는사실강남일번지에살고있는데딸이덕성여대를다니기에딸과함께가끔학교로등
교(?)한단다.자식사랑이유별난언니이긴하지만딸대학까지쫒아다니는건좀너무한거
아니야?했더니자식사랑이라기보다워낙무거운재봉틀,실기도구를들고다녀야하기땜이
기도하지만사실은이곳의풍경과운치에뿅가서가끔오는거라고애써변명을했다.그런
데나도그곳에매혹당해단순한변명이아님을확인하게되었다.

마치내집정원인듯한잔디가앞에펼쳐진멋진풍광과함께(모든여인들이다자기집정원
이라고한마디씩했던지,아님맘속에그생각을품었었다.ㅎ)커피를마시며여인들의수다
가시작되었다.살아온얘기,이런저런살아가는얘기를하다보니어느새점심먹을시간이
되어버렸는데,친정이이동네이니아는식당이있냐고하길래동생과내가주욱~불러댔더니
언니들은웃으면서"이거캐나다에서온사람한테아주유용한정보를한가득들었네~"한다.

그래서동생이에스코트하여언니들과함께맛난한정식집으로향했다.맛나고푸짐한식사를
하면서언니들은감탄한다.이가격에이렇게훌륭한반찬참으로맘에든다고.나역시한국
에오면제일맘에드는게바로맛난음식을아주좋은(?)가격에먹을수있다는그점이다.
사실캐나다한식당은맛도그렇고,밑반찬을달라고말하기도웬지좀미안스럽고,밥먹고팁
까지꼬박줘야한다.그러니한국에오면사방에널린싸고도맛있는음식점앞에서선택의기
로에서서행복한고민을아니할수가없는것이다.

밥을먹고,후식으로시원한식혜까지마시고우리는다시덕성여대안으로들어갔다.부른배
를좀진정시키기위해교정을걷다보니아니이게웬떡!덕성여대박물관을발견한거다.즉
시들어가방명록에사인하고박물관안을둘러봤다.아주단정하게잘보관되어있는우리네
물건들,의복을비롯,생활용품들이전시되어있었다.역시찍사의사명감으로열심히사진을
찍어대고나오다보니아고~원래사진을못찍게되어있는곳이었다.어쩌누!이미늦어버
렸는데,그렇다고찍어놓은사진을다지워버리긴너무아깝자녀!~그냥양심의가책만받고
나왔다.ㅎ

커피숍에앉아다시커피를마시면서식사후수다를또풀어헤쳤고,조금후우리들은아쉬운
마음을접고일어나야했다.왜냐면언니들도일이있지만나와동생도내후배를만나기로약
속이또되어있었기에말이다.다음을기약하며헤어졌고우리는종로로향했다.

엄밀히말하면만나기로한후배는학교후배는아니고,그냥나이로보아나보다연하니까적
당한말이없는관계로후배라고하는데우리의인연또한재미나다.내가미국에서한국으로
돌아와친정근처의영어학원에서영어를가르치며매니저역할도하고있을때그녀(이름이
경아)가강사로지원해내가면접을봤었다.

그때그냥노우트한장을찍은것같은종이에간단하게자신의이력을써온경아가내눈에
는참귀엽고순진해보였고,그러면서도나름근성이있어보여서내가채용을했는데그녀로
서는처음사회생활을시작하는물꼬를내가틀어준셈이었다.그후에나를언니처럼따랐고
나또한동생처럼사랑했었다.그러면서자주내게"언니는세상살이에많이순진한것같아.
약게살필요도있어요."라는조언도해주었던많이어른스러운,의젓한동생이었다.

우리는속에있는깊은얘기까지나누며친하게지내온사이인데,원래속깊은얘기를잘안
하던내가오히려마음으로경아에게의지하는경우가더많았던것도같다.나이가더먹어
말이언니지,어찌보면나보다훨씬야무지고,세상사에능통한,어른스런여인이여서날가
르쳐주는것도많았다.세상을살아가는이치도그랬지만사실경아땜에토익가르치는걸
시작하게되었었다.토익이한참뜨기시작할때자신이가르쳤던토익팀을내게인계해주
었고그걸기회로나역시토익강사가되었었다.

나랑친하다보니당연히내동생과도친해졌는데(내친구나날아는사람들은자연히내동생
까지와도친해질수밖에없는것이워낙나랑동생이랑은꼭붙여다녔기에.ㅎ)그래서우리
셋은곧잘뭉쳐함께시간을보낸적이꽤있었다.그러다가경아는결혼을했고,아이를낳았
고,어느누구도예상하지못한아주훌륭한모성을지닌여인으로변모(?)했는데거기에우리
둘을비롯자신까지도많이놀래게되었고말이다.

어제도잠시강의가없는틈을타서집으로가아이를데리고나와우리들을만났다.우리도
애들이라면사족을못쓰는편이라좋아라했는데나는경아와대화를나누느라좀덜했지만
내동생은유치원교사가되어열심히아이와놀아주었다.그래서결국나는뽀뽀한번얻어
받지못했고,내동생은뽀뽀를받았다.이궁!규민에게책을사준건나였는데절대뽀뽀는
안해준단다.야속한노므같으니라구!~

경아가잠깐수업한시간을하러가야했기에규민이를우리에게맡기고살짝도망을갔는데
아빠도아랑곳않고엄마만찾는다는규민이가그래도우리둘과함께얌전히있는게참신
기하고너무이뻤다.내가책방을둘러보는동안동생이규민이와놀아주었고,책도읽어주었
는데경아가돌아오는동안규민이는아주얌전하게엄마를기다렸다.

수업을마친경아가마침내돌아왔고,학원앞주차장으로가서우리는경아의남편을만났다.
인사를나누고우리모두함께저녁을먹으러갔다.내가즐겨찾던사직동의’북촌칼국수’로
가칼국수,수육,모듬전을시켜놓고산사춘까지곁들여배부르게먹으며대화를이어갔다.
경아도캐나다로이민을결정해캐나다에서의생활이나아이들교육문제등을주로얘기했는
데결정하고나서도여전히갈등이남아있어보이는듯했다.충분히이해가갔다.

아쉽게또자리를털고일어나같은방향이라고집앞까지우리들을데려다주는데새로운만
남에는설레임이있지만,오래된만남은곰삭은뭉근함과함께편안함이있음을여실히느꼈다.
서로진솔할수있고,낯설음과가식을벗어던진있는그대로의모습을드러낼수있어참좋다
는느낌.물론사람의성격탓도있겠지만오랜세월에서얻어진익숙함과편안함이사람과사
람의관계를더단단히이어준다는느낌.아마이건그냥친구관계뿐만이아니고가족간에도
이런곰삭음이우리를지탱시키고있는원천이아닐까싶어졌다.그렇게배와마음이함께부
른밤이점점깊어가고있었다.

귀여운규민이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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