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골일기:장모님(11부)

이미 밝혔지만 아래채 반을 나누어 매형과 함께 거주 하신다. 비록 한 지붕이지만 서로 간 별도의 생활을 할 수 있도록 구분이 되어있다. 아내의 아이디어로 구원(?)을 받은 매형은 장모님에게 정말 잘 대했다. 매형도 8순에 가깝지만 누님 대하듯 아침저녁으로 문안도 드리고 툇마루에 다정히 앉아 대화도 나누고 그런 모습들이 정말 보기 좋아 두 양반에게‘혹시 이러다 정분나는 거 아닙니까?’라며 농담도 하고, 어떨 땐 매형더러‘장인어른!’, 장모님에게‘누님!’ 그런 식의 농담도 하고 깔깔거리며 평온을 유지할 때도 있기는 했다.

 

우리 장모님 젊은 시절부터 낭비벽이 심했다는 것 이전부터 들어왔다. 어쩌다 자식들이 용돈이라도 주면 며칠이 가지를 못한다. 심지어 노인네들 상대로 피라미드판매라든가 또는 수십만 원은 고사하고 기백만원짜리 고가의 의료장비(?)를 덥석 사들이곤 자식(특히 작은처남)들에 부담을 지우기를 얼마이며 장인어른 돌아가시고 가끔 찾아뵈면 현관에서부터 거실까지 없는 게 없는 따지고 보면 하나도 쓸 데 없는 것들이 산더미처럼 쌓인 걸 목격한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그런데 장모님의 낭비벽은 어떤 생활용품에 그런데 국한 된 게 아니다. 음식이나 식비에도 낭비벽이 심 했다. 우리가 먹는 쌀을 사다드리면‘쌀을 뭐 이런 걸 사왔냐?’시며 타박을 하면 이천이나 여주의 최고급으로 바꿔 드려야하고, 한 끼니라도 생선이나 고기 없인 식사를 못하신다.

 

잠시 썰의 가닥을 달리해야겠다. 지금 장모님은 엄밀하게 나와 아내가 모시는 건 아니다. 왜냐하면 거주는 한마당에 함께 하지만 장모님이 직접 끓여 잡숫기 때문이다. 그게 또 이유가 있다.

 

젊은 시절 처가에 들리면 나는 밥을 먹었는지 그 식사가 코로 들어갔는지 입으로 들어갔는지 모를 지경으로 장모님이 차려주는 식사에 불만이 많았다. 한마디로 내 식성에 맞지 않았다. 김치라곤 젓갈을 전혀 먹을 줄 모름에도 밥상의 김치 앞에 앉으면 구역질이 날 정도로 젓갈범벅 생선은 또…. 사위 왔다고 암탉 잡아낸다지만 즐기지 않는 육류도 텁텁하고…무엇보다 간이 몹시 짰다. 처가 집에서 식사를 하고 나오는 날 아내는 나의 짜증과 불평을 고스란히 장모님 대신 들어야 했다. 그래서 그랬던지 장모님이 손수 해 주신 장모님표 밥상을 받아 본 게 30년은 훨씬 넘는 거 같다. 그 사이 장모님을 방문한 기회가 있으면 식사를 하고 가거나 모시고 나와 외식으로 때웠기 때문이다.

 

내가 장모님을 이곳으로 모시고 오자고 할 때는 아래채라는 공간이 있기도 했지만 아내에게 특별히 요구했던 것은 식사는 절대 함께 못한다는 단서를 달았다. 그것은 일종의 장모님표 밥상에 대한 트라우마 같은 것이기 때문이다. 다행히도 나의 이런 기우와는 달리 스스로 당신 입맛에 맞는 끼니를 손수 해 잡수신다.

 

그런데 문제가 다른 곳에서 불거져 나온 것이다. 생선이나 육류 없인 식사를 못하시는 걸 알고 적당히 타이밍을 맞춰 육류며 생선을 공급해 드리지만 얼굴만 보면 인사가‘찍어 먹을 게 없다.’라든가‘며칠 째 밥을 한 술도 못 먹었다’라고 하는 것이다. 가령 저녁에 닭 한 마리를 푹 삶아 혼자 드시는 걸 봤는데 아침에 한 술도 못 떴다니… 그리고 병원 의사 앞에서도 그런 식으로 말씀을 하시는 거다. 하긴 마리 앙뜨와네뜨 처럼 빵과 고기(또는 케잌)를 혼동하듯 밥은 안 드시고 고기로 채웠으니 밥 한 술 못 드셨다는 것도 얘기가 될는지 모르지만…..

 

그런데 정말 못 말리는 것은 닭을 삶거나 탕을 끓이거나 뒷집의 매형에게 한 냄비씩 꼭 보내고 고기를 구워서 한 접시씩 보내는 것이다. 이런 사실은 직접 목격하기도 했지만 매형의 실토로도 알게 된 것이다. 뿐만 아니다. 잔뜩 해 놓고 다 드시지 못하면 냉동실이나 냉장실에 보관하셨다 드시면 될 것을 집에서 기르는 개 두 마리에게, 김대중이나 노무현이 북괴에게 무조건 퍼주 듯 그런 식으로 개밥으로 전환시키는 것이다. 좀 엄한 얘기지만 지금 우리 집 개는 사료는 제대로 안 먹고 장모님을 기다린 지가 오래 되어 곰인지 돼지인지 구분이 안 갈 정도로 살이 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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