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골일기: 장모님(12부)

그렇게‘뒷방 늙은이(장모님의 매형에 대한 호칭이다.)’에게 정성(?)을 다 하고 사이가 좋은 것과는 별개로 정말 이해불가의 일이 벌어지고 있었다. 아래채를 두 쪽으로 나누어 양지바르고 전망이 좋은 전면은 장모님이 차지하고 좀은 어두운(칸막이를 해서 더욱더)뒤 쪽은 매형이 거주한 지 얼마가 지났을까?

드디어 장모님의 본심(?)이 드러나기 시작했다. 나와 아내의 얼굴만 보면‘뒷방 늙은이와 함께 살 수 없다’며 투정을 부리기 시작하는 것이었다. 혹시 두 양반이 다투기라도 했는가? 하고 동정을 살피거나 매형에게 직접 장모님과 무슨 일이 있었느냐고 물러보면‘그게 무슨 소리냐 또는 당치도 않은 얘기’라며 펄쩍 뛰기까지 한다. 그도 그럴 것이 특별한 음식이라거나 찌개라도 끓이는 날은 여전히 매형에게로 이런저런 그릇이 오가는 게 목격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여전히 원인이나 이유도 알 수 없는‘뒷방 늙은이 타령’을 해 대는 것이었다.

듣다듣다 도저히 더는 참을 수 없는 어느 날 매형이 있는 면전에서‘뒷방 늙은이와 함께 살 수 없는 이유가 뭡니까?’라고 소리쳤던 것이다. 아무리 내 장모님이지만 정말 그 때는 미웠다. 그런데 이 할망구(이제 말도 제대로 안 나온다)‘아니!? 내가 언제 그랬어!?’란다. 시간이 지나고 지금이야 이렇게 털어 놓을 수 있지만, 당시는 치매를 넘어 정신 이상인 것 같기도 흉악한 마귀할멈 같기도 하여 동네가 떠나가도록‘저나 진이에미(아내) 볼 때마다 안 그러셨어요!? 제가 꾸민 얘깁니까?’라고 소리소리 질렀다. 매형이 돌아간 뒤 장모님‘우리끼리만 하고 말 얘기를 뭣하러 하느냐?’오히려 나와 아내를 나무란다.

그리고 며칠 흘렀다. 장모님이 또 나와 아내를 보잖다. 그날은 유독 기분이 좋았고 만면에 웃음이 가득한 얼굴로“어제 말이야…뒷방 사돈이 서울로 이사 간데…”그 말씀에 우리 부부는 서로 얼굴만 처다 볼 뿐이었다. 갈 곳 없는 매형이 오죽했으면…. 한동안 얄밉고 어쩌고를 떠나 연민의 정이 들며 가슴이 찡하다.

생각해 보면 매일 보채는 장모님을 달래기도 지쳤고 그래도 어쨌거나 두 사람 중 하나를 모셔야(?)한다면 매형은 한 치 건너 두 치쯤 되는 존재였다. 그럴지라도 무슨 어린애 장난도 아니고 매형에게 재차 방을 빼라는 말을 할 수는 없었다. 보채는 장모님을 망신을 주거나 달랠 참으로 매형 면전에서 천등산이 떠나가도록 소리를 질렀던 게 오히려 독화살이 되어 매형 폐부에 꽂혔던 모양이다. 그러나 달리 수습할 묘책이 없다.

그러고 다시 며칠 뒤 매형이 나를 보잔다. 그 때까지 장모님으로부터 전해들은‘.뒷방 사돈이 서울로 이사 간데…’라는 얘기는 꺼내지도 말하지도 않았는데, 매형이 먼저 그 얘기를 꺼내는 것이었다. 그 때서야 사실 며칠 전 장모님으로부터 그 얘기 전해 들었다며 이실직고(?)를 하자, 성남 모처에 보증금 백만 원에 월세30만 원짜리 방이 있다는 얘기며 이사비용이 얼마라는 얘기를 꺼내는 것이었다. 아무리 성남이라고 하지만 보증금 백만 원짜리 방이 오죽하겠는가? 얄밉던 매형이 처연하고 불쌍한 생각이 든다. 매형이 그렇게 나오는 대는 긴 얘기 할 필요가 없다. 나도 아내도 장모님의 전횡, 장모님의 까탈에서 벗어나는 길은 매형을 떠나보낼 수밖에 없었기에‘매형! 경비는 걱정 마십시오’그렇게 합의를 봤고 떠나보냈던 게 지난8월 중순이었다.

그렇게 이곳을 떠난 매형에게서 사흘 만에 전화가 왔는데 누나가 직장(某빌딩 청소원)에서 피를 토하고 쓰러져 수술에 들어갔다는 전갈이다. 그 때만하더라도 심각하게 받아들이지도 않았고 오히려 전화상으로‘것 봐요! 매형이 올라가시기를 잘 했지요. 매형 올라 올 때까지 누나가 기다린 건가 봅니다’라며 반농반진 얘기를 나누었는데 열흘이 지나고 보름이 지나도 퇴원을 시켜주지 않기에 아무리 큰 수술이라도 일주일 열흘이면 퇴원 시키는데 이상하다고 하던 날 매형으로부터‘자네 누이 갔어…’라는 전화를 받은 게 지난 9월 19일이며 누나를 그렇게 떠나 보냈다는 얘기는 이미 밝혔다.

 

Leave a Reply

이메일은 공개되지 않습니다. 필수 입력창은 * 로 표시되어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