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골일기: 장모님(14부)

어쨌든 예초기를 빌리러 온 아랫마을 말 많은 양반이 돌아간 후 장모님이 나를 앉히고 ‘자네 요즘 왜 그렇게 소리를 지르고 땍땍거리나?’라는 말씀은 내 머릿속을 어지럽히며 땍때굴 굴러다니기 시작했다. 결국 내가 우려했던 사태가 벌어지고 만 것이다. 타인이 있거나 말거나 그런 말씀을 하셨는데 처가식솔 누군가에도 이미 저런 식의 표현을 했을 것이라는 생각이 지배적이었다.

차라리 곁에 아내가 있었더라면 이런 억울한 사정을 알아주고 방패막이가 됐을 텐데… 아내도 매형도 없이 나와 단 둘이 있을 때 벌어진 사태라 그 억울함이 배가 되 왔다. 가급적 이곳에 벌어지는 사태를 아내에게 얘기 않으려 했지만 할 수 없이 그 사실을 아내에게 보고했다. 그러자 아내는 처제로부터 이미 들었다는 것이다. 결론은, 이제 하는 얘기지만 자식들 간 이간질 시켜 싸움 나게 하는 특기를 가진 우리 장모님의 특기가 발휘 된 것이다. 그래도 사위에게는 그 정도로 까진….했던 것인데…..그 말을 듣자 은근히 부아가 치민다. “그걸 왜 얘길 안 해?”따지듯 묻자“엄마 성격 내가 더 잘 아는데 그 얘기 하면 기분 좋겠어?”라며 반문을 한다. 그렇지만 처가식솔들은 아내 생각 같지만 않을 것이라는 느낌이 든다.

노인네 갖다 버릴 수도 없고, 면전에서 싸움을 걸 수도 없고 그리하여‘나도 더 이상은 못 참는다.’다짐을 하고 다짜고짜 두 처남들에게 따로 전화를 했다. ‘이만저만 여차여차 하고 이젠 나 더러 소리 지르고 땍땍거린다고 하시니 분통 터지고 억울하니 두 사람 중 누가 모셔 가시오.’라며 최후통첩 비슷한 것을 했다.

난리가 났다. 그것만큼은 절대 아니 될 말이다. 차라리 요양원이든 양노원이든 보내자는 식으로 나온다. 그러나 그것도 생각만큼 쉬운 게 아니라며 결론도 없는 얘기만 주고받다가 추석차례나 지내고 이곳으로 함께 오겠다는 것이다. 얼마나 장모님께 정신적으로 닦달을 받았으면 두 처남은 거의 피해망상증에 걸린 듯 손사래를 치며 형제가 이곳으로 달려오겠다는 것이었다.

좋다! 그러면 형님들만 이곳으로 올 게 아니라 처형도 처제도 모두 동원령을 내려 추석날 이곳에 모여 가족 총회를 열자는 약속을 했던 것이다. 그리고 과연 처가 5남매와 내가(큰 동서는 없고 막내 동서라는 놈은 바쁜 일 있다고 빠지고…)추석날 이곳에서 자리를 같이 한 것이다.

그날의 식순(?)은 먼저 나의 억울함을 만방에 선포하는 것으로 시작하여 자식들의 장모님에 대한 성토로 그날의 모임을 성황리로 몰고 갔으나 결국은 어느 누구도 장모님을 모시겠다고 나오는 자식이 없다.

다만 그냥 조용히 사시면‘세상에 오 서방 같은 사위가 어디 있느냐?’는 것과 단언을 하건데‘이곳 말고는 양노원이나 요양원(병원)에 갈 수밖에 없다.’는 결론을 장모님 앞에서 선언을 한 것이다. 그리고 어쨌든 나로서는 향후 장모님의 음해로부터 벗어 날 수 있는 구실을 만든 것이고 혹시라도 마을에서의 구설수는 나 하기에 따라 그것이 사실이 아니라는 걸 증명 하는 날이 올 것이다.

그날 나는 장모님의 손을 꼭 잡고“어머니 제발 저랑 조용히 이곳에서 삽시다. 어머니도 여기가 좋지요?” 나의 이런 제안에 우리 장모님“그려! 나도 여기가 좋지. 내가 살면 얼마나 산다고….”그리고 우리 둘은 손가락 걸고 복사하고 도장 까지 찍으며 흐뭇하게 처가식솔을 배웅했고 그렇게 이 산골엔 평화가 깃들었는데……딱 사흘이 지났던가?

 

1 Comment

  1. 데레사

    2016년 10월 10일 at 8:36 오전

    천성 고치는 약 없다고 하잖아요?
    장모님의 그 욕설도 아마 돌아가셔서 없어질거에요.
    그래도 어쩝니까? 하는 위로의 말도 드릴수 없군요.

    고추는 다 땄어요?
    너무 힘들게 하지 마시고 몸도 돌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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