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골일기: 장모님 그 후(2부)

엄밀하게 내 입장으로 보면 그 분들은 사돈의 팔촌만큼 먼 친척이다. 즉 처고모는 아니다. 처가의 성씨는 백(白)씨이다. 과문한지 모르지만 백씨들은 손이 귀한 것으로 정평 나 있다. 손이 귀하다보니 파벌이(?) 심하지 않고 종파라곤 수원 백씨 하나뿐이라 백씨는 일가(一家)라고 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 그기에 더하여 처가의 장인께서는 3대독자로 계시다 아들 둘 소생을 봤기로 후대에 이르러 독자를 면했는데 그래도 친인척이 그리 많지는 않았다.

처가 식솔들이‘고모’라고 칭하는 두 양반들은 장인어른과는 이종사촌관계의 집안이다. 족보와 호칭을 따지자면, 아버지의 이종사촌지간이라면 ‘아저씨 아주머니(이당숙姨堂叔?이런 호칭이 있는지 모르지만…)’로 불리어야 마땅하지만 친척이 귀하다보니 편하게 고모라고 호칭하고 더구나 내 입장은 촌수를 따지기도 힘든 그런 관계였기에 이날까지 단 한 번도 찾지도 뵙지도 못한 분들이다. 그런데 처형이 그 중의 한 분인‘사직동 고모’를 월요일 모시고 내려온다는 것이었다. 그것도 이곳에서 열흘 정도 머물다 가겠는 일방적 통보를 해 왔다는 것이다.

생각을 해 보자. 정작 회담장소에는 낯짝을 내밀지 않겠다는 女니 나로선 생판 얼굴 한 번 보지 못한 또 다른 할망구를 모시고 와서 열흘씩이나 머물게 하겠다고? 장모님 하나 속 썩이는 것도 감당불감당 하는 판에 이곳이 무슨 양로원이나 노인 요양원도 아니고 더구나 제가(처형) 모시기는커녕 저는 바로 올라간다는 얘기를 들었을 때 나의 분노는 베스비오스나 얼마 전 터진 일본의 구마모토 화산폭발보다 더 강력한 분노가 터지고 말았고 더불어 있는 쌍욕 없는 쌍욕을 몽땅 털어 곁에 있지도 않은 처형에게 아낌없이 쏟아 부었던 것이다. 그러나 뭐…아내가 무슨 죄….그렇게 혼자 길길이 뛰다가 제 풀에 그쳤던 것이다.

그리고 과연 점심때가 가까워지며 큰처남과 작은처남이 부부동반(옵져버로 참석)으로 그리고 잠시 후 처제를 끝으로 처형이라는 여인을 뺀 5자회담이 열렸지만, 이미 예견 했듯 북핵 6자회담만큼이나 아무런 소득도 실효도 없이 끝났던 것이다. 굳이 지푸라기 같은 효과라도 있었다면 큰처남의 문경이나 작은 처남의 방화동 쪽으로는 어떠한 경우에라도 접근불가라는, 마치 가정법원의 판결 같은 통보 및 조치령(?)만 재확인 하고 다시 저들의 삶터로 돌아갔다는 것과 더 하여 나 역시 장모님이 이 집의 삽작 밖으로 보따리 따위를 들고 한 발작이라도 걸어 나가셨다간 그 삽작은 영원히 굳게 닫힐 것이라는 최후의 통보를 장모님 귀에 대고 고래고래 열댓 번은 더 강조했다. 즉 정말 이곳이 싫으면 요양원이나 그 비슷한 시설로 보낼 수밖에 없다는 잠정결론을 내렸던 것이다. 그리고 처가 식솔들에게는 이곳의 어떠한 위해성 음해성 소문이 떠돌아도 전혀 사실무근이라는 것을 인식해 달라는 나의 호소를 100% 받아들이기로 한 것은 하나의 성과로 매김하고 싶다.

물론 그 자리엔 참석도 않은 처형을 성토하기도 했지만 그딴 허공에 대고 주먹감자 날리기 식의 성토엔 눈 하나 깜짝 않는 처형이고 더구나 장본인이 자리도 하지 않았으니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쌍욕을 퍼 부은들 당사자의 입만 더러워질 뿐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아무튼 뿔뿔이 갈 사람들 가고 난 산골은 다음 날이면 얼굴도 또 성격(인품)도 모르는(아! 그러고 보니 고모란 분의 연세를 안 밝혔다. 고모님은 장모님과 동년배인 88세 라고 했다)또 다른 할망구와 처형에 대한 적개심으로‘처형이고 gr이고 눈에 뜨이기만 하면…이 개!#%&..’라며 전의를 불태우는 것 외에는 표면상 적막강산이다.

그런데 무슨 마음이었을까? 거실의 소파에 앉아 내일 써 먹을 처형에 대한 비토 성토 등등을 좌 뇌 속에 메모리 하고 있는데 갑자기 장모님 입장에 대한 생각이 전두엽 한쪽에서 고물거리며 피어오르기 시작하는 것이었다.

사실 당신의 성격상 이웃과 융화하지 못하고 심지어 자식들과도 갈등을 빚고 이곳에 내려와 계시지만, 나와 아내 그리고 전화기 외에는 대화를 나눌 사람도 대화를 할 수도 없는 어찌 보면 징역살이나 위리안치 같은 귀양살이나 다름 아닌 것이다. 그나마 당신의 분노나 역정을 분출시킬 유일한 대상인 딸(아내)마저 주말에만 이곳으로 내려오니 그 답답함 또는 무력감이 얼마나 깊을까? 정서적으로나 분위기상 장모님 입장에선 이곳이 귀양처요 그 중에도 가장 험지인 삼수갑산이 따로 있는 게 아닐 것이다.

Leave a Reply

이메일은 공개되지 않습니다. 필수 입력창은 * 로 표시되어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