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대통령과 蜀이 망한 이유.

유비의 촉나라는 서기221년 단기2554에 건국하여 서기263년 단기2596년 2대에 걸친, 어쩌면 한 인간의 평균수명보다 짧은 42년의 국호를 유지하다 역사에서 사라진 나라다. 더구나 유비는 소위 칭제(稱帝)를 하고 황제노릇을 한 것은 겨우 2년 간 뿐이다. 그렇다면 삼국정립(三國鼎立) 중 촉이 가장 먼저 망한 이유는 뭘까?

청와대가 자리한 뒤쪽에 해발은 그리 높지 않지만 뾰족한 산세를 유지한 북악산을 직선거리로 넘으면 종로구 부암동이 나오고 부암동 북서쪽에 오솔길이 나오는데 그 오솔길을 따라 들어가면 대한민국 수도 서울에 그런 원시림이 있을까 싶을 정도의 계곡이 나온다. 이른바‘백사실 계곡’이다.

원래 인근 주민들이나 그런 곳을 찾아다니는 사람들에게는 알려진 계곡이지만 이 계곡이 갑자기 각광을 받은 이유는 아이러니 하게도 노무현 전 대통령 덕분이다. 노통이 지금의 박통처럼 탄핵을 당하고 업무정지를 당하자 시간은 많은데 할 일은 없고… 아랫것들 데리고 북악산을 넘어 어찌 발끝이 닿은 곳이 바로 백사실 계곡이다. 그 계곡을 발견한 노통이 황홀하고 경이로운 나머지‘세상에~! 서울 하고도 종로 도심에 이런 무릉도원 같은 곳이…’하고 놀랐다고 그 다음 날 신문에 대문짝만한 기사가 나오고 부터다.

우리 집 자랑 좀 해야겠다. 백사실 계곡 세검정 방향입구에 신라 때부터 이어온 조그만 고찰이 있다. 그 고찰 뒤쪽의 언덕을 넘으면 바로 우리 집이다. 옛 주인 양반의 말씀을 빌리면 우리 집에서 바로 그 언덕을 넘어 백사실 계곡으로 산책을 다녔는데 내가 이사 오던 그 해 어떤 이가 주민들이 무시로 다니던 그곳의 땅을 사들여 지금은 철 대문으로 막아 놓아 백사실 계곡 산책을 하려면, 직선거리로 몇 백 미터도 안 되는 거리를 세검정까지 내려가 수km를… 고생해야 한다.

다시 정리를 하면 우리 집과 청와대는 북악산 넘어 조그만 계곡을 건너 언덕 하나만 넘으면 되는 거리이니 직선거리로는 1km반경에 해당될 정도로 가깝다. 지금이야 이곳 산골에 처박혀 한가하게 세월을 보내지만 이곳에 내려오기 전까진 매일 청와대 앞을 출퇴근 하며 지내왔던 것이다.

청와대 앞을 지나다니며 두 가지 생각을 했다. 첫째, 만약 전쟁이 일어나면 정은이 저 놈이 청와대를 가장 먼저 타격할 텐데….. 기왕 쏠 거면 정밀도가 정확한 거로… 그리고 오차가 나면 자칫 우리 집(동네)으로 폭탄이 떨어지면 어쩌나… 하는 걱정에 집을 내놓은 지 5년이 넘지만 팔리지 않고 있다. 뭐,,,덩어리가 좀 크기는 하지만 그렇다고 시세보다 훨씬 밑지고야 팔 수 없잖은가.(혹시 의사 있으신 분계시면 영락 바람. 좀 싸게..^^)

둘째, 사실 김신조 청와대 침공 사태가 일어나기 전까진 어릴 적 경무대(청와대)바로 옆 동네인 팔판동에 산 적이 있어 경복궁의 허물어진 담을 타고 넘어가 경회루에서 스케이트를 타고 놀기까지 했는데…. 그 사건 이후….어쨌든 문민정부 덕분에 해금이 되고 청와대 앞을 십 수 년 아침저녁으로 검문을 당해가며 겉은 신물이 나도록 구경했지만 과연 저 속은 어떨까? 하는 궁금증이 들었던 것이다.

지성이면 감천이라든가? 뭐, 기도까진 안 했지만 나의 그런 궁금증을 풀 기회가 두 번 있었다. 전 정권 때 모모한 단체의 초청으로 청와대에서 오찬을 할 수 있는 초청을 받았고, 또한 현 정권에서도 그런 초청을 받았던 것이다. 그러나 그 좋은 기회를 놓치고 말았다. 놓친 게 아니고 스스로 핑계를 대고 초청에 응하지 않았던 것이다.

어떤 이들은 나더러 박빠라고 또 이전엔 명빠라고들 했다. 그러나 나는 이런 얘기에 몹시 거부감을 가진다. 나는 누구의 누구 때문에 누구하나를 위한 썰을 풀지 않는다. 왜? 이 나라는 이명박 또는 박근혜 개인의 나라가 아니기 때문이다. 그리고 나는 빨. 갱. 이만 아니면 어떤 인물이 국정을 다스린다 해도 그를 지지해 왔고 할 것이다.

소금도 먹은 놈이 물켠다는 말이 있다. 그리 좋은, 평생 기회가 한 번 올까 말까한 청와대 구경(방문)을 두 번이나 마다한 것은 오찬이라도 한 끼 아니면 쓴 커피 한 잔이라도 마시고 나오면 대통령이나 그 정권이 잘못 했을 때 지적할 수 있는 썰을 못 풀 것 같은 기분이 들었기 때문이다. 뭐…그렇다고 지적을 위한 썰을 풀겠다는 것도 아니다.

유비의 촉한은, 가장 유능한 제갈량 같은 인재를 등용하고도 그를 제대로 활용 못한 채 제일 먼저 망국의 슬픔을 맞은 것은 백성의 나라가 아닌 형제의 나라를 표방했기 때문이다. 유비는 오나라 여몽에게 사로잡혀 죽은 큰 동생 관우의 죽음을 슬퍼하였고 그의 원수를 갚는다며 절치부심한 끝에 총동원령을 내렸고, 다시 둘째동생 장비 역시 둘째형 관우의 원수를 갚아야 한다는 강박관념에 사로잡혀 진중에서 술타령을 벌이고 과음한 나머지 행패를 부리다 부하장수에게 죽임을 당하는 결과를 빚었던 것이다.

한 날 한 시에 태어나지 않았지만 한 날 한 시에 죽기를 맹세한 도원결의가 유비를 상심케 했느니…. 제대로 된 지도자라면 두 동생의 죽음을 그런 식으로 대처하지 말았어야 했다. 백성들을 위한 국정이었다면 보다 냉철하고 합리적인 방법을 택해야 했다. 정에 넘쳐 동생 원수를 갚기 위해 군대 동원령을 내렸으니 이미 실수를 한 것이다.

내가 가끔 즐겨 인용하는 대목, 마키아벨리 군주론에 군주는 여우(교활)와 사자(용맹)의 기질을 모방해야 한다. 사자는 함정에 빠지기 쉽고 여우는 늑대를 물리칠 수 없기 때문이다. 함정을 알아채기 위해선 여우가 되고 늑대를 혼내주려면 사자가 되어야 한다고 역설한다. 그렇지 아니하고 지도자가 잔정이 많으면 국정 다스리는데 방해가 되는 것이다. 냉혹하고 참혹한 인간이 되라는 게 아니다. 현임 우리 대통령께서 너무 순진하고 잔정이 많은 탓에 오늘의 일을 그르치지 않았을까?

어쨌거나 헌재의 결과가 좋은 쪽으로 나와 심기일전 하여 남은 임기를 무사히 마쳤으면 하는 바람이 크다. 제발!! 그리 됐으면 정말 좋겠다. 진심이다.

2 Comments

  1. journeyman

    2016년 12월 16일 at 2:58 오후

    그나마 재갈량이라도 있었으니 42년이라도 촉이 국가로 유지될 수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재갈량이 없었더면 도원결의고 뭐고 위나라와 오나라 사이에서 진작에 망했겠지요.
    같은 이유로 신라가 아니라 고구려가 삼국을 통일했다면 지금쯤 만주의 절반은 먹었을 거라고 생각하는 견해도 타당치 않습니다.
    고구려는 이미 부패할 대로 부패해 있었기 때문에 망할 수밖에 없었던 상황이었거든요.

    • ss8000

      2016년 12월 16일 at 8:00 오후

      긍정? 부정? 요즘 젊은 사람들 심리 파악 안 됌.

      단 재갈량이 수두룩 했지만, 또 그런 사실을 취임 초 부터
      널리 알렸지만…. 우이독경… 박근혜 양의 가장 큰 결점.
      사람을 쓸 줄 모르는 당달봉사…. 오늘의 결과를 만들어 냄.

      덧붙인다면…박근혜 아닌 딴 놈이 18대 대통이 됐어도
      오늘과 같은 정국이 똑 같이 일어 났을 것.

      우리 정치권의 구조적 문제임.

      그러나 그게 탄핵 당할 죄는 아님.

      덧붙인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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