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골일기: 장인과 사위.

면소재지엔 이발관이 네 군데나 있다. 처음 이곳에 정착하며, 그 네 군데를 돌아가며 섭렵(?)해 보았다. 네 군데의 이발관 중 세 군데는 70대가 넘은 양반들이고 나머지 한 곳이 60대 초반인데 이 양반이 나의 단골 이발관이다. 이런 양반들을 보고 가끔은 그런 생각을 해 보았다. 이발사라는 직업도 괜찮을 것 같다는 그런 생각.,,, 70이 넘어서도 은퇴하지 않고 당당히 자신들의 직업에 만족하는 분야가 과연 얼마나 될까?

하긴 고래로 우리는 천시 받던 직종이 오늘날 더 각광을 받고 장수하는 것 같다. 이발사. 미용사. 노가다. 기계공. 보따리장사 하다못해 딴따라라고 천시 받던 연예인 등등은 자신의 체력이 감당할 수 있다면 죽을 때까지도 할 수 있는 직업이 아니던가? 내가 시방 또 엄한 소리 하고 있다…..

나의 단골 이발관 J이발관은 그래도 60대의 젊은 양반이라 그런지 내 맘에 쏙 드는 스타일로 조발(調髮)을 해 주는 관계로 7년째 단골로 삼고 있다. 독실한 개신교 신자인 모양이다. 아무튼 이발관엔 종교잡지. 신문. 교회발행 회보 등등이 비치되 있지만, 내게 단 한 번도 교회 다니라거나 오라거나 즉, 포교활동은 전혀 않기에 더욱 마음에 든다. 그동안 그를 지켜본 바로는 참 성실하게 살았다는 생각이 미친다. 말하는 모양새도 조근 조근 어쩌다 피차 농담을 주고받으면 씨~익 함박웃음을 웃을 뿐 깔깔거리며 대소(大笑)하는 걸 못 봤다. 비록(?)이발사지만 내공이 깊은 사람 같다.

내 성질이 gr맞긴 맞다. 난 차례를 못 기다리는 성격이다. 그렇다고 새치기를 하는 게 아니라…가령 어디 맛 나는 음식이나 요리가 있다면 수십k 또는 몇 시간을 가서라도 그 집 앞에 줄이 길게 널어서 있으면 차라리 안 먹고 말지 장시간 기다려서는 절대 안 먹는다. 맛이 덜 하더라도 줄 없는 곳을 찾아 나서기 때문에 이 일로 마누라와 자주 다투기도 한다.(나는 선천적으로 줄 대는 걸 싫어하기 때문에 구설에 오르지 않았나 보다)

이발소도 마찬가지다. 이발 하러 갔는데 다른 손님이 하나라도 대기하면 그날 이발 포기하고 집으로 돌아온다. 그렇게 몇 차례 시행착오를 벌인 끝에 나름 방법을 찾은 게 첫 번째 손님으로 가는 것이다.

약 반년 전부터 하루 만보 걷기 운동을 하며 웬만한(무게에 부담이 안가는 반찬 따위….)물품은 그 옛날 할아버지 5일장 가셔서 고등어 한두 손 사 오실 때처럼 걸어서 사오고 있다.

집에서 이발소까지는 약 1시간 정도고 거리는 약5k된다. 어느 날인가(작년 가을 쯤..)십여 리를 걸어 이발관에 갔는데 그날이 면소재지 5일장인지 모르고 갔다가 아침 손님이 많아 되돌아 온 적도 있다.(어차피 다음 날도 걸어야 하니까 서둘 필요 없다)

그제도 마찬가지다. 기온이 올랐다고 하지만 산골의 칼바람은 여전하다. 이발소는 보통 7시 반에 연다. 첫손님으로 가려면 가로등도 졸고 있는 사위가 어둑한 길을 나서야 한다. 하얀 입김을 내 뿜으며 한 시간 가량 걸어 드디어 이발소에 도착했다.

옴마! 근데 벌써 누군가가 이발을 하고 있다. “아이고! 일찍 온다고 왔는데 손님이 계시네…에에이~! 내일 다시 와야겠네요”라며 열었던 이발소문을 막 다시 닫고 돌아서려는 순간“아요! 아요~! 잠깐만요! 잠깐만요! 다 끝났어요! 들어오세요!”라며 다급하게 외친다. 이 양반이 내 성격을 잘 알기 때문이다.

과연 훤칠한 젊은이가 이발의자에서 튕기듯 일어나며 나를 향해 목례를 한다. 얼떨결에 인사를 나누고 젊은이는 자연스럽게 세면대로 가더니 자가 세발 및 세수를 한다. 그리곤 수건 한 장을 들더니 거침없이 머리를 툴툴 털고‘안녕히 계세요!’라며 나간다.

생판 모르는 내게 목례를 하는 것도 이발 뒤의 뒤처리도 눈에 익은 장면이 아니라“누구? 혹시 아드님!?”, “아~! 예에~! 큰 사윕니다.”그리고는 “저 친구가 언젠가 바쁘다며 이발을 부탁하기에 한 번 해 주었더니 때만 되면 딸아이랑 친정방문을 핑계 삼아 이발을 합니다. 말은 다른 데서는 이제 이발을 하네 못 하네 합니다. 허. 허. 허..”

조금 전 사위의 머리를 성의껏 다듬는 과정을 목도했었다. 장인 이발사의 얘기를 듣고 그 장면을 상기해 보면, 인자한 아버지가 아들의 머리를 손질하는 그런 모습이었던 것이다. 얼마나 정겹고 행복한 모습이었던 것인가. 대저 고부간의 얘기는 많이들 하지만 장서(丈壻)간의 얘기는 많지 않다.

내게도 사위 둘이 있다. 술잔을 몇 차례 기우려 보긴 했지만 과연 노 이발사만큼 사위들에게 다정다감했었는지? 자신이 없다. 사위 놈들 다음에 만나면 보다 살갑게 대해 주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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