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골일기: 호칭(呼稱).

숙영아!!, 진이야!!! 선이야!!! 현섭아!!!

위 호명 순서대로 며느리, 큰딸, 작은딸, 아들이다. 큰딸은 40이 넘었고 큰딸을 중심으로 두세 살 터울이니 나머지도 30대 후반이다. 뿐만 아니라 사위들도 처음 몇 년 간은 홍구야!! 종관아!!!로 불리었으나 시간과 세월이 갈수록 그 아이들 본연(?) 호칭인‘X서방’으로 돌아갔다. 그런 걸 보면 확실히 사위는 아무래도 백년손님이라는 말이 맞는 모양이다.

아버지는 내 나이 쉰둘에 돌아가셨다. 돌아가시기 전까지 평생을 두고 아버지가 나를 호칭할 때는‘병규야~!!’였다. 아버지가 아들을 부를 때 그것도 손수 작명(설령 작명가에게 부탁한 것일지라도…)한 이름 부르는 게 당연한 것이겠지만, 대가리가 굵어가고 성년이 되어 장가를 가서 아이 셋을 낳고 기르고 그 아이들이 혼령기가 되 감에도 아버지의 호칭은‘병규야!’였다.

그것도 단둘이 있을 때 다정한 목소리로‘병규야~!’하고 부르면 정감이라도 들 텐데 마누라나 아이들 그리고 다중 또는 대중의 객(客)앞에서 그런 호칭을 하면, 괜히 돌쇠나 마당쇠 취급을 당하는 것 같아 늘 불만이 쌓여 갔고, 그러던 어느 날 급기야“아버지! 제발! 애 엄마나 애들 앞에서 그 이름 좀 부르지 마세요~ㅅ!!”간절히 비는 부탁이나 청탁이 아니라 반항아적 고함을 지르고 말았다.

그런 나의 급습(?)에 허를 찔리셨는지 아니면 정신 줄이 달아나셨는지 한동안 아무말씀도 없다가, 어떤 답이 나올까 조마조마한 나에게 아까 내가 지른 나의 고함 m2(제곱)는 더 큰“저런! 미친x이 있나…야! 이 놈아! 애비가 자식 이름 부르는 게 뭐가 잘못 됐다는 게야!!”아버지의 그런 호통을 듣고 나는“아범아!! 아니면 애들 이름 앞에 누구누구 아범아! 하시면 좋잖아요~!!”라고하자“저런! 빌어 처먹을 놈! 방구석에 있는 텔레비전을 몽땅 부셔버려야 해!(말씀인즉 tv연속극을 너무 많이 봐서….그래서 그런지 난 그 후인지 그 전 부터인지 기억이 나지 않지만 tv연속극을 정말 좋아 하지 않는다)”하시기에 “아이고! 참! 새 끼가 빌어 처먹으면 좋겠습니다”호칭 때문에 양식 빌어먹는 거지꼴이 된 채 그 자리를 쫓겨 나온 적이 있었다.(우리 아버지 남에게는 선비인연 하시지만 내게만은 정말 사정(私情) 없는 조폭이나 진배 없으셨다. 그 자리에서 더 버텼다간 뭣이 날라 올지 모르기 때문에 어떤 물리력이나 강제에 의해 쫓겨나는 거 보다는 피하는 게 상책이다) 물론 그런 일이 있었다고 해서 내 호칭이 바뀔 리는 없었고 여전히 나는 당신에게는‘최 진사네 셋째 딸’노래에 나오는 먹쇠나 칠복이 처럼 천박한 취급을 당했던 것이다.

농번기에 돌입했다. 농사꾼이 반공일이 어디 있고 온공일이 어디 있겠는가? 모처럼 내려온 마누라와 함께 구슬땀을 흘리고 있는데 전화벨이 숨 넘어 간다. 화면을 바라보니 며느리‘숙영이(전화부상 호칭)’다. 그런데 가끔 숙영이는 손녀 예솔이를 앞세워 전화하는 경우가 있다. 며느리 숙영인 줄 알고 받으면‘할아버지! 안녕하세요! 보고 싶어요!’하며 예솔이의 목소리가 먼저 들릴 때가 있다(하기는 전화번호부에 숙영이란 이름과 함께 예솔이 사진이 올라있다)그래서 무조건‘오~! 예솔이 안녕~!’하는데 ‘아버님! 저 숙영이예요!’한다. 손녀가 됐든 며느리가 됐든 슬픈 소식이 아니면 반갑다. 아래층에 사는 쌍둥이까지 모두 할아버지 보고 싶다면 전화를 해 온 것이다.

반갑고 살가운 전화를 끊고 가만히 생각해 보니, 지난날 아버지로부터 마당쇠나 돌쇠 취급을 당했던 그 이름을 아무 거리낌 없이 이젠 며느리에게 향단이나 곱단이 등 몸종 취급을 하며 불러대는 것이 미안한 생각이 들지만 그렇다고 이제와‘애미야! 며눌 아기야!’뭐 이러는 것도 닭살 돋는다. 결혼하고 3년 차에 손녀 예솔이가 고고지성을 질렀으니 그 3년 동안 불렀던 며느리의 이름‘숙영이’가 몸으로 입으로 밴 탓일 게다. 언제 숙영이에게 허심탄회하게 물어 봐야 겠다.‘숙영아!’ 부르는 게 기분 많이 나쁘냐고..??? 솔직하게 얘기 하라고.

 

덧붙임,

그런데 나이 70 먹도록 아니 결혼42년 차에 아직도 못 해본 호칭이 있다. ‘여보! 당신!’이라는 호칭. 이 호칭은 지금도 못하겠다. 그런데 언젠가는 꼭 한 번은 할 수 있을 것 같다. 나와 마누라가 도원결의 하듯 한 날 한 시에 태어나지 않았지만, 한 날 한 시에 가자는 약속이나 각서를 쓰지 않았기에 가는 날은 다를 것이다. 그 때는 아마도‘여보! 당신 만나서 행복 했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다.(사실 암 것도 아닌 일로 어제도 한 바탕 했으면서…도.)

8 Comments

  1. 데레사

    2017년 4월 16일 at 7:03 오전

    ㅎㅎ
    호칭 너무 신경쓰지 마세요.
    요새는 사위나 며느리도 이름 부르는 경우가
    많더라구요.
    저도 큰 사위는 황서방 하고 부르지만
    둘째는 이름 부릅니다.

    • ss8000

      2017년 4월 18일 at 3:44 오전

      네, 아무래도 평생을 이름 그대로 부를 것입니다.
      옛날 우리 아버지 제게 하신 것처럼 ‘이름’이 어때서?
      ㅎㅎㅎ..

  2. 김 수남

    2017년 4월 16일 at 1:57 오후

    선생님 성함 너무 좋으세요.아버님께서 늘 불러 주시던 그 때가 그리우시겠습니다.며느님도 시아버님께서 이름 불러 주시면 너무 좋아할 것 같아요.따님처럼 이름을 불러 주시는 것 저는 너무 찬성이고 뵙기 좋은데 정말 본인은 어떨지 여쭤보심도 괜찮으시겠어요.

    사모님께는 지금 용기 내셔서 호칭을
    “여보!라고 불로 보시길 강력히 추천합니다.

    저는 첫 아이를 낳고 부터 남편한테 “여보!”라고 하기 시작했습니다.
    처음이 어렵지 할 수록 좋은 호칭이에요.
    저는 처음 만났을 땐 “형제님!
    그리고 결혼 하고는 “마마!(상감마마라고 생각하고요-하나님이 저에게 주신 가장 귀한
    선물이라는 감사의 고백을 하니까 저 스스로 그렇게 부르고 싶었습니다.)
    저희 시어머님께서 너무 좋아하셨어요.당신 아드님을 “마마!”라고 부르는 소리 듣길 좋아하셨어요.
    남편도 출장을 가거나 편지를 보내면 저에게 “중전!”이라고 또 편지를 보냈으니 저희 둘 정말 알콩달콩이었습니다.

    그런데 아이를 낳자 저가 호칭을 잘 해야겠다 싶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이에게 교육적으로도 그렇고 저가 남편에 대한 호칭부터 잘 해야겠다는 생각이었어요.
    처음 며칠이 어색했는데 금방 익숙해졌습니다.

    선생님! 사모님께 한번 시도해 보셔요.
    부부 간에
    “여보1,당신!”처럼 아름다운 호칭도 없으니까요.

    아이들이 컸는데도 여전히 남편한테 “오빠!”라고 부르는 집사님도 계시는데 저는 그 호칭 바꾸어 부르시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나중에 하실 그 말씀 지금 하시면 너무 좋겠습니다.
    아내들은 남편 말씀 한 마디에 모든 피로가 다 풀리거든요.
    선생님께서 여성의 심리를 간파하셔서 사모님께 이번 주 중에 꼭 한 번 해 보세요.
    종종 들려 주시면 더욱 좋으시고요.

    직접 말씀 하시기 어색하시면
    글도 잘 쓰시는데 예쁜 편지지에 써서 봄편지로 띄워 보시던지요
    아니면 식탁위에라도 써서 두어 보셔요.

    “여보! 당신 만나서 너무 행복하오~~~!”

    이 말씀 한마디가 아마 그 어떤 보약보다도 사모님을 기쁘고 건강하게
    행복하게 잘 지내시게 할 것 같습니다.

    미뤄 두시지 마시고 꼬옥~~~한번 직접 말씀해 보세요.
    친정어머니 떠나 보내시고 많이 허전하실 사모님이신데 선생님의 말씀 한마디가 큰 힘과 행복을 느끼시게 되실 것 같습니다.

    오늘 하시면 더더욱 좋으시고요.
    청년처럼 젊은 생각을 가지고 사시는
    선생님 댁에 늘 건강과 행복이 가득하시길 기도합니다.

    • ss8000

      2017년 4월 18일 at 3:54 오전

      이 댓글을 읽고 주방에서 분주히 움직이는 아내에게
      “여보!”라고 크게 외쳤습니다.

      생전 제 앞에서 깔깔 거리는 법이 없는 여자였는데,
      요샛 말로 그만 빵 터졌습니다.
      그 웃음의 의미가 뭔지 모르지만,
      이러이러 해서 이런 댓글을 주신 분이 계신다고 했습니다.
      글쎄요? 얼굴에 화색(?)이 도는 것 같기도?
      기분 좋아 하는 것 같기도???

      암튼 나쁘지 않았습니다.
      분명히 장난끼 였는데…그러나 단순한 장난으로 받아 들이는
      것은 아닌 듯 했습니다.

      다음 주에 내려오면 다시 한 번 더 시도해 보렵니다.
      그러다 제꺼로 만들어 보겠습니다.

      조언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ㅎㅎㅎ…

  3. 김 수남

    2017년 4월 18일 at 5:11 오전

    어머,선생님! 너무 잘 하셨습니다.장난끼시지만 일단 행동 하신 것 너무 훌륭하세요.박수를 보내 드립니다.사모님께서 ‘빵!’ 터지셨다니 더욱 잘 하셨습니다.
    네,선생님!
    꼬옥 그렇게 해 보셔요.
    뵐 때마다 호칭 하나라도 변화하시면 숨겨져 있던
    기쁨과 즐거움과 행복까지도 신나서 쑥쑥 튀어 나올거에요.
    올려 주신 말씀에 저도 너무 반갑고 기쁨니다.
    다시 더 시도해 보시고 사모님을 부르실 때 더욱 익숙하신 호칭이 되시면 좋겠습니다.

    ‘여보!”
    아무나 부를 수 없는 오직 부부 사이에만 부를 수 있는 이 아름다운 호칭을
    그동안 사용하시지 않은 것까지 많이많이 사랑담아 사용하시길 기도합니다.

    삼성 전자의 옛 광고 문구 중
    “남편은 아내하기 나름이에요!”란 것 참 공감이 됩니다.
    마찬가지로
    아내들도 남편들 하기 나름이시랍니다.

    처음엔 용기가 필요하신 “여보!”라는 호칭을 사모님께
    큰 소리로 말씀 하신 것을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사모님과 더욱 건강하셔서 행복하게 사시는 모습 많이 담아 주시길 기대합니다.
    두 따님과 아드님 가정도 부모님 모습보며 행복하게 잘 살아가게 되고, 이웃 분들도 두분을 통해 삶을 더욱 아름답게 살아 가시는 모습 닮아 가시게 되시길 축복하며 기도합니다.

    • ss8000

      2017년 4월 18일 at 6:58 오전

      ㅎㅎㅎ…
      여전히 감사드립니다.
      반드시 해 보겠습니다.
      삼인행필유아사(三人行必有我師)라는 말이 있습니다.
      굳이 세 사람이 아니더라도 인생항로에 나이 불문하고
      스승은 있게 마련입니다. 스승님! ㅎㅎㅎ…

      우연치 않게 이곳에서 수남님을 알고
      조언을 받고 이런 행운이 또 있겠습니까.

      만약 조언 하신대로 ‘여보 당신’호칭이 입에 익고 귀에 익으면
      남은 여생이 더욱 해피해 질거라는 확신이 듭니다.

      시간 계산을 해 보니 섬머타임을 적용하면 저녁 6시? 또는 7시?
      남은 시간 즐거운 시간 되십시오.
      거듭 감사드립니다.

  4. journeyman

    2017년 4월 20일 at 5:32 오후

    저는 두 살 연상의 아내와 연애할 때 자기야~로 불렀던 게 입에 벴습니다.
    여보라고 시도해 보려해도 잘 되지 않네요.
    손주 본 다음에도 여보 소리가 안 나올 거 같기도 하고요.

    • ss8000

      2017년 4월 20일 at 6:35 오후

      ㅋㅋㅋ….
      어쩐대요? ㅋㅋㅋ..
      제가 아직도 마누라 호칭이 자기야~! 입니다.

      누군가는 이런 저의 호칭을 두고,
      다 늙어 가지고’자기야~’가 뭐냐고 야지를 합니;다마는
      저 역시 연애 시절부터 써 온 호칭이라 버리기 힘듭니다.

      다만…아래 캐나다 수남스승님의 조언대로 여보! 라는 호칭을
      감히 써 먹어 보려고 합니다. ㅎㅎㅎ…
      매니저님도 그렇게 해 보세요.
      늦기전에 후회 하지 마시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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