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골일기: 무모한 노익장.

고등학교 2년 때든가? 집에는 늘 월동용 연탄을 뒤꼍 처마 밑에 쌓았었는데 그해 늦가을은 겨울을 재촉하는 비가 참 많이도 내렸다. 여름장마 같이 강풍까지 몰고 와 내리든 어느 날 쌓아 둔 연탄 저장소 쪽으로 막힌 물길이 덮친 것이다. 한 겨울 쓰려던 연탄 1000여 장이 무너져 내리며 부서지고 깨지고 곤죽이 되고 말았다. 평생 앙상하셨던 아버지, 625때 대퇴부까지 잘려나간 형님, 유치원 생도인 막내 놈. 초저녁부터 다음날 아침 등교할 때까지 잠도 안자가며 분리하고 정리 했다. 그렇게 열심을 다 했지만 우리 아버지 내게 칭찬 한마디 없으셨다. 왜? 그게 당연하다고 생각하셨기 때문일 것이다. 그렇다고 섭섭했던 생각은 안 들었다.

지금은 IKEA라는 세계적인 가구업체가 우리나라에 진출해 있지만, 근 30년 전 이 업체 본사에 장식용 소품을 수출하고 있었다. 큰 금액은 아닐지라도 몇 년을 거래해 오던 중 부도를 내고 종업원은 모두 달아나고 계약한 제품은 미선적상태고(신용장을 담보로 무역금융을 쓴 상태)며칠만 더 해주면 선적이 가능한데….요오씨~!! 마누라와 딱 둘이서,…그러나 저녁이면 마누라는 아이들 때문에 집에 가야하고… 일주일을 집에도 가지 않고 토끼잠을 자 가며 그예 선적을 했었다. 몸을 망쳐가며 신용을 지킨 후에야 도산을 선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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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로 이놈이다. 원래 대장간에 식칼이 없다고들 한다. 한 때 이런 제품을 생산수출 했지만 그 그림자가 딱 이 넘 하나만 남았다. 현관문을 들어서며 그 때의 악몽(부도가 나고 파산이 되고..)을 잊지 않기 위해 기념 적으로 달아 두었다.(월왕 구천처럼…)

가회동을 포함한 소위 북촌마을은 수십 년간 한옥촌 보호라는 미명 아래 증개축을 할 수가 없어 재산권 행사에 막대한 지장을 받았었다. 김영삼정권 들어서며 해제가 되었는데 그때 너도나도 불편한 한옥을 지우고 다가구 또는 다세대 주택이 난립했었다. 아버지라고 그 기회를 일실하실까? 건축법에 따라 4층(지하포함) 다가구주택을 지었는데 용적률에 따른 화단이 없다며 건축허가가 나오지를 않았다. 그 때도 초저녁부터 밤을 꼬박 새우며(생전 해 보지도 않은 ….)화단의 형태를 만들고, 마침 도시가스 공사를 하기 위해 쌓아둔 흙을 채우며 그 일을 끝냈다. 나중의 일로 그랬기에 건축허가는 받았지만, 그 광경을 보신 아버지는 딱 한마디 하셨다. ‘미련한 놈’

뭐, 이 정도의 일은 생각이 나지 않아 그렇지 사례가 꽤 많을 것이다. 지난 5월초‘산골일기: 부부싸움’편도 그 일례일 것이다. 내 말이….나는 그 일이 무슨 일이든 살인, 강도, 사기, 도둑질….아무튼 나쁜 일 빼곤 어떤 일이든 두려워하지 않았다. 어찌 보면 무식의 소치이기도 하다. 농담이 아니라 무식하면 용감하다고 하지 않든가. 고등학교 중퇴생이나 다름없는 내가 용감하지 않고는 험한 세상을 살아나갈 방법이 없기 때문에 때론 무모할 정도로 무식했고 그것은 어쩌면 만용(蠻勇)일수도 있었다.

에구구~! 에구구~! 비명이 절로 나온다. ‘머리 어깨 무릎 발…’로 시작하는 아이들 동요가 있지만, 그기에 하나 더 보태‘허리’까지 온몸 구석구석 안 쑤시고 안 아픈 데가 없다. 시쳇말로 삭신이 쑤시는 것이다. 무모할 정도로 무식한 만용(蠻勇) 탓이다.

5월9일 이후로 의욕상실증에 걸렸었다. 일단 몸도 마음도 무기력했다. 아무것도 하기 싫었다. 입에 풀칠하고 목구멍에 거미줄 안 치려고 중국을 며칠 다녀오니 ‘오빠 회장님’께서 ‘재 너머 사래 긴 밭을 언제 갈려 하나니’라시며 호되게 야단치신다. 아차! 잠시 정신 줄을 놓은 게 부끄러웠다.

거짓말 아니다. 사실 금년 농사 포기할 생각이었다.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이민을 고려했고 이런저런 이민(하다못해 투자이민까지도…)에 대한 정보검색을 계속해 왔다. 그러나 어느 것도 당장 속 시원한 답은 없다. 그래서 기왕 이렇게 된 거 조금 지켜보기로 했다. 마음엔 안 들지만 어쩌겠나?

그런 끝에 회장님의 호통에 정신이 번쩍 들어 밭으로 나갔던 것이다. 남들은 시간을 두고 일주일 열흘 그것도 품(놉)을 사서 해야 할 일을 혼자 이틀 만에 대충 마무리 지었다. 나의 이런 모습을 옆집 최공은‘형님! 미치셨소?’하고 비아냥거리지만 그래도 만용의 뒤끝엔 성취감이라는 게 있다.

성취감 치곤 미련한 성취감 미련한 노익장이다. 마누라 앞에서 맹세를 했다. 내년부턴 절대 농사짓지 말고 둘이 손 꼭 잡고 주유천하(周遊天下) 하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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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년엔 고구마를 꽤 많이 심었다. 조금만 관리 해 주면 풍작을 이룰 것 같다. 약300평에 옥수수와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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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추밭만 약500평 2800여 포기를 미련하게 혼자(마누라의 도움 약간) 이틀을 심고 다시 하루 온 종일 말뚝과 줄을 매주었다. 우리 사돈 어르신 650포기를 심으셨다고 자랑하시지만(사부인 성격상 아니 도우실 리 없겠고…), 글쎄다. ㅋㅋㅋㅋ….. 그러나 사실 사돈어르신의 밭 정리는 예술의 경지다. 그에 비하면 내 고추밭은 많이 러프 하다. -.-;;; 그러나 뭐…고추만 많이 열리면 되지 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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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전옥답 300여 평엔 각종 채소들이 자라고 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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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까지 장모님께서 소일 하시던 뒤꼍의 30여 평엔 씸채소가 넉넉히 자라고, 요즘은 거의 매끼니 쌈밥을 주로 먹는다.

 

 

 

덧붙임,

위의 얘기는 대통령 선거 전후의 일입니다.

어찌 하다가 타이밍을 놓치고 이제 올립니다.

사돈끼리 서로 농사일 많이 한다며 자랑 하는 것도 아니고…

‘산골일기’다음 편 때문에 불가분 올리는 썰입니다.

12 Comments

  1. 김수남

    2017년 5월 24일 at 7:55 오전

    농사 일 힘드시지만 보람 있는 일이시고 건강에도 좋으시지만 정말 무리하시지는 마셔요.직접 농사지은 쌈 밥 드시니 올 농사도 지으실 힘이 잘 저장되시겠다싶습니다.이 사진에 올라온 고추랑 상추들,호박 ,쑥갓,깻잎이 이렇게 잘 자라기까지 애쓰신 노고를 충분히 잘
    알고도 남습니다.저희 부모님께서 늘 하시던 일이었기에요.선생님 덕분에 고향의 모습을 그려 볼 수 있음을 감사합니다.

    • ss8000

      2017년 5월 26일 at 4:12 오전

      늘 의욕만 앞 세울 뿐이지요.
      그래도 심어 놓은 작물들이 고물고물 자라는
      모습은 언제 보아도 신기하고 재미가 납니다.
      수확이나 소출은 그 다음입니다.

      이국의 하늘 아래서 저의 허접한 썰로
      고국 땅을 잠시라도 그려보셨다니 오히려 감사합니다.

  2. 데레사

    2017년 5월 24일 at 8:33 오전

    무모한 일은 하지 마세요.
    그냥 좀 쉬엄쉬엄 하세요. 그러다 병나면 안됩니다.

    어제 수갑찬 모습보면서 참담했습니다.
    정말 사람을 어떻게 그렇게 더럽게 만드는지….

    • ss8000

      2017년 5월 26일 at 4:13 오전

      네,이젠 정말 좀 줄여야 겠습니다.
      누님 앞에서 외람된 말씀이나
      정말 작년 다르고 올 다릅니다. ㅎㅎㅎ,,

  3. 비사벌

    2017년 5월 24일 at 11:18 오전

    오선생님. 한푼안받은사람은 감옥가고 재판받고 수백만불받고 쪽팔려서 자살한
    사람은 거대한 추모식하고… 이런게 정상처럼돌아가는 이나라가 미친건지
    내가 미친건지 모르겠어요.살만큼 살았고 이나라에 미련은 없습니다.

    • ss8000

      2017년 5월 26일 at 4:15 오전

      원장님!
      오늘날 같은 사회적 병리현상을 고치는
      의사 선생님은 안 계십니까?

      저 역시 이 나라에 미련도 희망도 없습니다.
      아이들에게 떠나라고 하고 있습니다.

  4. journeyman

    2017년 5월 24일 at 3:31 오후

    선생님 글을 읽고 있으면 저도 빨리 은퇴해서 귀농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게 되네요.
    샌님 스타일이라 안될 일인데 말이죠.

    • ss8000

      2017년 5월 26일 at 4:20 오전

      ㅎㅎㅎ…
      매니저님!
      은퇴 후 전원생활 하는 것은 왠만한 하국 남성들의 로망입니다.
      그러나 무엇보다 중요하고 선결 되야할 문제는…
      아내들의 동조나 내락입니다.

      남자 혼자 아무리 귀농이나 귀촌을 꿈꾸어도
      아내의 도의 없이는 개 꿈입니다. ㅎㅎㅎ….

      우리 매니저님 귀촌 한 걸 그려 봤습니다.
      그래선 안 됩니다. 너무 젠틀하면 산골 적응에 힘듭니다.
      때 되면 제게 자문을 구하십시오.

      그 때까지 살아 있을지는 의문이지만…ㅋㅋㅋ..

  5. 비사벌

    2017년 5월 25일 at 10:36 오전

    오선생님. 십원도 안받은 사람은 감옥가서 재판받고
    수백만불 받고 자살한 사람은 거대한 추모식하고
    이게 정상적인 사회입니까? 나라가 미쳐도 더럽게 미쳐가는군요.

    • ss8000

      2017년 5월 26일 at 4:26 오전

      제가 정치 썰을 안 풀려고 작정한 것은….
      박근혜 대통령의 처지가 억울하고 불쌍한 게 아닙니다.
      이유야 어쨌든 그녀가 감옥에 있다면
      그녀의 신원을 밝혀 주어야 함에도

      대선에 패배한 후에도 여전히 소위 친박들은
      저들 식으로 존재하려 드는데 질렸습니다.

      저들만이 박근혜를 구할 수 있다고 저 gr들 합니다마는
      비박들의 도움 또는 그들과 뭉치지 않으면
      이제 보수는 길을 잃고 방황하고 맙니다.

      친박은 그걸 모릅니다.
      그런 글을 좀 올리면 사방에서 돌팔매가 날아옵니다.
      제가 박근혜라면 그들을 멀리하겠습니다.
      그러나 박근혜 스스로 그런 걸 즐기는 것 같습니다.
      그게 아니더라도 그게 자신을 살리는 방법으로 오해를 하고 있습니다.
      저는 그게 더 안타깝습니다.

  6. 청해

    2017년 5월 25일 at 4:06 오후

    저도 의욕상실에
    뭐,이런 개떡같은 나라가 있나?#&*
    그 생각만 하느라
    발걸음이 어디로 향하는지도 모릅니다.
    다행히도^^미국엉뎅이에서 자리를 잡았으니 망정~

    도대체 저 개 돼지들
    어찌 해야 하는지..

    • ss8000

      2017년 5월 26일 at 4:30 오전

      여전히 여장부의 기개는 그대로 간직하고 계십니다.
      이제 저는 농사 일에만 전력을 다 하렵니다.
      그러다 기회 있으면

      이곳을 떠날 것입니다.
      나이 70에 고향을 떠나는 신세가 됐으니….

      그래도 청해님께선 선견지명이 계셔서
      이런 고국을 이역에서 바라보니 그나마 한 치 건너 두 치이십니다.
      정말 요즘은 지느니 한숨이요 솟느니 눈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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