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서 중국이 부럽다.

중국은 인권국가다.

도대체 중국은 어떻게 생겨먹은 나라일까? 오래 전부터 중국과 중국인에 대한 단면을 자주 피력한 적이 있었다. 가령 묶고 있는 호텔에서 아침을 먹기 위해 호텔 식당으로 내려가는데 승강기 입구 앞 카펫에 덜 꺼진 담배가 타고 있는 것이었다. 중국은 그때나 지금이나 승강기 입구에 재떨이가 준비되어 있음에도 피우다만 담배꽁초를 카펫 바닥에 집어 던지고 승강기를 탄 것이다. 그런 모습을 그 때 처음 본 게 아니었다. 그럴 때마다 얼마나 황당하고 약이 오르는지 알아듣지 못하건만 중국 개xx들..어쩌고 욕을 해 댄다. 중국은 지금도 승강기에 깍두기 같이 생긴 놈 두 놈 이상이면 그 중 한 놈 손엔 꼭 타들어가는 담배가 쥐어져 있다. 개인적으로 중국인들 개개인을 보면 아직은 촌스럽고 착하지만 둘 이상 모이면 시끄럽고 개차반이 된다. 대체적으로 못난 우중(愚衆)의 나라 미개하고 무식한 3류 국가가 그러하다. 그런데 정말 웃기게도 그들이 부르짖는 게 인권(人權)이라는 사실이다. 즉, 타고 있는 담배를 카펫에 버리든 승강기내 흡연을 하던 개인의 권리이기에 그런 것들을 상관 않는다. 즉 개인의 소양이나 인격문제지 그런 개인의 자유(?)를 이웃도 대중도 심지어 공권력도 방관하는 것이다. 일종의 표퓰리즘이다. 자칫 다중이나 대중이 큰 피해를 입을 수 있는 사고가 일어날 수 있지만 개인의 인권이라는 미명으로 포장된 표퓰리즘 말이다. 솔직 하자면 이런 점은 우리라고 자유스럽지 못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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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리베이트에 담배꽁초 버리는 건 여사고 다반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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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래침은 애교다. (이상은 이번 출장길에 찍은 따끈한 것이다.)

 

이 땅의 표퓰리즘

좀 엄한 얘기지만, 김대중 때의 일 일거다. 우리와는 아무런 연고도 없는’아르헨티나여~날 위해 울지 말아요.’라는 노래와’에비타’라는 영화가 이 땅에서 공전의 히트를 친 적이 있었다. 당시 그 영화와 노래가 어째서 이 땅 사람들의 심금을 울려야 했는지 이해를 못했다. 그런데 문제는 그 때부터 이 땅에 소위 표퓰리즘의 서막이 열린 것이다. 지금도 아르헨티나 하면 페론, 에비타, 페로니즘과 포퓰리즘 등의 부정적인(?) 단어들이 연상 되지 않는가? 근간의 스페인이나 그리스 그리고 베네수엘라를 비롯한 몇몇 남미제국 등 잘 나가던 나라가 일순3-4류 국가로 전락했을 때 우리는 표퓰리즘을 떠 올린다. 모든 나라 공히 표퓰리즘의 망령을 떨치지 못해 그 지경이 되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가만히 따져보면 표퓰리즘을 주도하는 자들은 사회적 약자에 대한 온정적 접근을 추구하는 것처럼 들리지만 실제로는’국민’을 빙자하거나 사칭한 엉터리 이념일 뿐이다. 언필칭 개혁 또는 진보를 내세우지만 그것은 말만 일 뿐 실제로는 공허하기 이를 데 없고, 대중의 정치적 지지를 얻고 권력을 획득하면 소수의 지지자들과 자신들의 이득과 논공행상만 몰두하며 이미 대중과 유리되는 정치적 편의주의와 기회주의가 표퓰리즘의 본색이기 때문이다. 얼마간 지켜 본 결과 불과 얼마 전 출범한 문재인 호가 그 놈의 표퓰리즘의 전형을 그대로 답습하고 있는 것이다.

 

완벽한 문재인 식 표퓰리즘

그랬던 표퓰리즘이 김대중 정권에서 서막이 열렸다면 노무현 정권 들어 클라이막스로 농익었고 이제 지나치게 익어 물러 터지며 막장으로 치닫는 문재인 정권이 열린 것이다. 사회 곳곳에서 문재인식 표퓰리즘이 환영 받는 것도 모자라 문비어천가로 칭송을 받고 있다. 돈도 없고, 일자리도 없는 백수들은 하루하루 생계가 걱정이다. 이런 한계적 상황에 내 몰린 처지에서 길게 볼 여유가 없다. 사회를 합리적으로 개혁하는 일보다는 즉각적으로 실리를 추구하는 것이 더 급하다. 이런 조급한 마음속에 표퓰리즘의 마수는 뻗쳐오고 기회주의자들이 내민 잣대와 개혁이라는 명분으로 물량공세가 시작된다. 가난하고 힘없는 사람을 돕겠다는데 누가 탓 하겠는가. 정규직으로 전환시키고, 저소득 계층의 임금을 올려주고, 복지를 늘리는 각종 정책을 봇물처럼 쏟아내지만 실제 민중들에게 실익은 없고 화려한 언어의 성찬(盛饌)에 정신상태만 느슨해지고 마는 것이다.

 

표퓰리즘과 인권은 일란성쌍둥이.

우리 지난날을 반추해 보자. 잃어버린 10년…표퓰리즘으로 무장된 좌파정권은 개혁이라는 미명을 뒤집어씌우고 모든 것을 마구잡이로 갈아엎어 버렸다. 이미 포퓰리즘의 달콤한 맛에 취해 정신상태가 몽롱하고 해이된 우중(愚衆) 앞에 가장먼저 파고든 인권주의라는 것이다. 그놈의 인권주의는 좌파정권을 매도하지 않는 한, 그 어떤 범법자도 인권이라는 이름으로 포장되고 방어막을 친다. 참, 웃긴다. 잃어버린10년 좌파정권이 태동하기 전에 이 땅엔 인권이라는 게 없었던가? 인권이 어디 숨었다가 좌파정권이 들어서자 가쁜 숨 몰아쉬며 그때야 튀어 나왔는지 참으로 신기하다. 그 후로 이 나라 이 땅에는 그놈의 인권이 넘쳐흘러 주체를 못하고 있건만 정작 한반도 한 민족이라며 자나 깨나 걱정하는 북녘 사람들의 인권은 어찌되든 내 알바 아니지만, 웃기지도 않는 인권주의와 인권을 주둥이에 달고 주창하는 자들이 표퓰리즘의 가장 큰 수혜자이니 더 웃기고 환장하는 것이다. 그러기에 표퓰리즘이라는 것과 인권이라는 것은 일란성쌍둥이라고 하는 것이다.

 

그래서 중국이 부럽다.

내가 너무 흥분했나 보다. 아무튼 이번 중국 출장길에 묵고 있는 호텔의 티브이를 켜보니 생겨먹기부터 범죄자처럼 생긴 자가 수갑을 차고 인터뷰를 한다. 나는 그가 무슨 양심범(?)인 줄 알았다. 하긴 중국의 양심범이라야 반체제 인사밖에 더 있겠는가. 그 사이 모르는 제2의 천안문사태라도 있었는가? 하고 자세히 보니 환경파괴범이었다. 무슨 공장을 하는 모양인대 오폐수 처리를 함부로 하였다는 고발 시사 프로그램이었다. 수갑을 찬 채로 심지어 범인의 가족까지도 인터뷰한 화면을 내 보낸다. 중국은 늘 그러하다. 우리로 치면 경범죄에 해당해도 범인들의 얼굴을 수갑을 찬 채로 조금의 가감도 없이 그대로 화면상에 노출 시킨다. 더럽고 지저분하고 무례한 중국이지만 확신 범에 대하여 조금의 아량도 없다. 최소한 범인에 관한 얼어 죽을 인권이니 초상권 따위는 없다. 나는 그게 부러운 것이다. 어떤 이는 별걸 다 부러워한다고 하겠지만, 죄지은 놈들을 제대로 다룬다는 의미에서 중국의 단호함이 부럽다는 것이다. 법집행을 바르게 단호하게 하는 나라일수록 선진국이기 때문이다. 그런 면으론 중국은 이미 선진국 대열에 들어선 것이다. 그래서 중국이 부러운 것이다.

 

덧붙임,

며칠 전 문재인 정부가 “이전 정부의 인권 경시 태도와 결별하여 국가의 인권 경시 및 침해의 잘못을 적극적으로 바로 잡고…”라며 국가인권위원회의 위상 강화 방안을 내 놓았다기에 해 본 소리다. 도대체 무엇을 위하고 목적으로 한 방안일까? 혹시‘통진당과 이석기’를 방면하기 위한 수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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