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형난제(難兄難弟)라는 고사성어의 출처는 세설신화 덕행편(世說新話 德行篇)에 나옵니다. 진원방난위기형(陳元方難爲其兄), 진계방난위기제(陳季方難爲其弟)에 나옵니다. 좋은 의미죠. 난형난제(難兄難弟)란 형제의 덕행이나 학문에 우열을 가리기 힘들 때 쓰이는 긍정적인 표현이었습니다. 굳이 우리 식으로 표현하자면‘도토리 키 재기’로 번역할 수 있겠지요.‘도토리 키 재기’하니까 좀 부정적인 의미가 되네요. 진원방과 진계방은 사촌 간이었습니다. 원방의 아버지(陳紀)와 계방의 아버지(陣諶)는 두 사람 다 학문이 뛰어났습니다. 어느 날인가 두 사촌은 자신의 아비들이 더 뛰어나다고 언쟁을 벌이다가 결국 할아버지인 진식(陳寔)에게 달려가 우열을 가려달라고 떼를 쓰자 답이 궁한 진식이 실토하기를 난형난제(難兄難弟)라고 한 것입니다.
진식(陳寔), 자를 중궁(仲弓)이라 하며 영천군 허현 사람이었습니다. 젊었을 때 허현의 말단 관리가 되었답니다. 청렴결백하고 온화하며 학문이 뛰어난 사람이었죠. 삼국지에 보면 진군(陳群)이라는 인물이 등장합니다. 조조의 아들 조비가 위나라를 세울 때 큰 공헌을 한 사람이죠. 물론 그 공로로 일인지하만인지상의 지위에 오른 인물인데 진식(陳寔)은 바로 진군(陳群)의 조부 되는 사람입니다.
이 양반이 또 다른 고사성어를 만든 양반입니다. 양상군자(上君子)라는 고사성어 말입니다. 내용은 잘들 아실 테니 언급을 않겠습니다. 다만 대들보에 매달려있는 도둑을 보고도 전혀 놀라지 않고 오히려 의관을 정제하고 아들 손자를 불러 훈계하기 가로되“불선지인미필본악습이성성수지어차양상군자시의(善之人未必本惡習以性成遂至於此梁上君子者是矣), 즉은,‘착하지 못한 짓을 하는 사람도 반드시 처음부터 악한 사람은 아니다. 평소의 잘못된 버릇이 성격으로 변하여 나쁜 일을 하게 되는 것이다. 저 들보 위(上)의 군자(君子)가 바로 그러한 사람이다.’”라고 하자….
진식의 말에 감동한 도둑이 대들보에서 뛰어내려 마루 바닥에 머리를 조아리고 사죄했다는 것까지는 잘 아실 겁니다. 진식도 진식이지만 도둑 또한 양심 있는 도둑이니 과연 도둑놈이라고 부르기 보다는 젊잖게 양상군자(梁上君子)라 불리 울만 하잖습니까? 요는 자신의 죄과를 반성한다는 의미에서 그를 높이 사야 합니다. 도둑은 도둑이되 군자(君子)에 비견할 수 있는 사람이라는 거죠. 진식은 그 후에 그 양상군자에게 조용히 타 이릅니다. 즉,“시군상모불사악인의심극기반선연차당유빈곤(視君狀貌似惡人宜深剋己反善然此當由貧困),너를 보아하니 악인은 아닌 것 같다. 오죽이나 어려웠으면 이런 짓을 했겠나.”였습니다. 뒤이어 이렇게 명을 내렸습니다.“진식영견견이필(陳寔令遺絹二匹),진식은 그에게 비단 두 필을 주다.”그러자 그 후로“자시일현무부도절(自是一縣無盜竊),이로부터 한 고을에서 다시 도둑질하는 일이 없었다.”랍니다.
뇌물을 처먹고 증거가 명백한데도 오리 발을 쭈~욱 내미는, 한때 아니 이 시각에도 먹다 남은 오리발이 도처에 흩어져 있습니다. 먹었으면 깨끗이 승복하고 죄과를 뉘우치면 법에도 눈물이 있다는데, 비록 양상군자처럼 비단 두 필은 얻지 못 할지라도 형량의 감면은 받을 것 아니겠습니까? 고래 힘줄처럼 끈질기게 끝까지 버티다 도둑질한 것 때문에 양심의 가책을 받고 부엉이 바위에서 안전장치도 없이 번지 점프 쑈를 하다가 돌아가신 양반이 있는가 하면 심지어 돌아가신 그 양반을 두고 어떤 대학교수는‘생계형 도둑’이라고 까지 했는데, 생계형 도둑 무덤까지 찾아가 대가리를 조아리거나 무릎을 꿇는 군상(群像)들의 저의를 모르겠습니다.
어디 그 뿐입니까? 결국 오리발이 빌미가 되어 더 큰 뇌물사건이 터질 것 같으니, 진작 이실직고 했으면 엉뚱한 놈까지 불똥이 튀지 않을 텐데, 참 여러 사람 잡습니다. 그러고 보면 확실히 도둑도 격이 있는가봅니다. 양상군자(上君子)와 좀생이 파렴치 도둑놈 말입니다.
왜 이 이야기가 이 새벽에 생각났는지 모르겠습니다. 이 시대의 파렴치하고 쪼잔한 도둑놈이 누굴까? 이 시간 이후 생각을 해 봐야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