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회는 단 한 번 뿐.

80년 대 인천 남동공단에서 조그만 제조 수출업을 하고 있었다. 사업이 팡팡 잘 돌아가고 많은 돈을 버는 것은 아니었지만 그런대로. 당시론 좀 특수한 아이템이라 주문량이 꽤 몰렸다. 더 하여 조금씩 공장 키우는 재미로 안 살림은 K전무에게 몽땅 맡겼다. 바이어 상담, 오더 수주, 자금조달 등은 오너인 내가 은행대출(물론 담보는 내 개인)을 포함한 금융, 입출금, 세무(관세 포함) 등 일반회계는 K전무.

 

아! K전무 나와는 일 점의 혈육이나 친인척 관계도 몇 십 년 사귄 친구도 아닌, 어떤 지인의 소개로 죽이 맞아 함께 일을 하게 된 사람이다. 크게 유능한 사람은 아니지만 내 판단으론 많이 박식하고 양심적이고 고분고분한 사람이었다. 워낙 믿었기에 최종 결재권인 회사 인감(개인)까지 그에게 맡기고 함께 일을 했다.

 

미리 밝혔지만 그런대로… 7-8 년은 아무 문제없이 굴러 갔다. 그런데 해가 갈수록 시나브로 공장운영이 쪼그라든다. 때론 임금체불 사태도 벌어지고, 수출상품의 원부자재 결재도 밀리고….그러다 1차 부도를 내고 친인척 친지들의 돈을 빌려 메꾸는 것도 한계에 부닥치고 두어 해를 못 넘기고 결국 완전부도를 내고 도산을 하며, 하필이면 노태우 대통령의‘범죄와의 전쟁 선포’와 맞물려 부정수표단속위반 혐의로 쫓기고,,,,(어휴! 징 해 뒷담화는 생략.)

 

지금이나 그때나 K전무가 장난을 쳤거나 자금을 빼돌렸다고 생각하진 않는다. 그럴 위인도 못 되고. 다만 내가 어째서 그런 인물에게 인감도장을 맡길 정도로 신뢰 했는지 지금도 의아스럽지만 그를 원망하지 않았다. 다만 뼈저리게 후회하고 느낀 것은, 주인(오너)는 절대 장소를 비워서는 안 된다는 철칙 같은 것을 배웠다. 즉 아무리 유능하고 뛰어난 그리고 양심적인 대리인이라도‘주인만큼의 주인의식은 없다.’ 라는 진리를 터득했던 것이다.

 

천하 귀재 제갈공명이 열과 성을 다 해 유비를 보필하고 함께 촉나라를 건국했지만 결국 유비 유고 후 나라는 급격히 기울기 시작하다가 자신마저 죽고 난 뒤 그예 나라는 망하고 만다. 아래 얘기는 유비가 삼고초려(三顧草廬)하기 전의 얘기다.

 

서주자사 도겸을 돕기 위해 서주로 달려간다. 명재경각(命在頃刻)에 있는 도겸은 유비에게 서주(下邳城)를 맡아 다스려 달라고 청을 하지만 유비는 도리를 앞세워 거절하는 대신 위성 도시인 소패(小沛)에 주둔하며 도겸을 돕는다. 그러나 얼마지 않아 도겸이 노환으로 숨지자 그를 대신하여 서주를 맡아 다스린다.

 

얼마 후 조조와의 싸움에 패한 여포가 도망쳐와 유비에게 도움을 청한다. 처남 되는 미축(麋竺)을 포함한 비서와 보좌진이 극구 반대함에도 불구하고 여포를 이전 자신이 머물던 서주의 위성도시 소패에 주둔케 한다.

 

그런 가운데 조조의 계략으로 황제로부터 원술을 정벌하라는 친서를 받는다. 아래 보좌진들이 계략이 숨어 있다며 또한 반대를 하지만, 다른 이도 아닌 황제의 친서이니 명을 아니 받을 수 없어 하비성을 비우고 원술 정벌의 길을 떠나 원술과 싸우는 가운데 여포는 자신의 사위 되는 조표(曺豹)와 공모하여 쿠데타를 일으켜 하비성을 점령한다. 그해가 서기 196년 단기 2529년(중국 漢헌제 건안 원녀, 고구려 고국천왕18년, 신라 내해왕 원년, 백제 초고왕31년)이다. 주위에서 그렇게 말렸지만 자리를 비운 탓이다.

 

이런 아류의 역사(歷史)나 전사(戰史)는 고전을 조금만 들여다보면 비일비재(非一非再)하다. 특히 춘추전국시대엔 그 시대 자체가 소위 다양한 쿠데타의 세계다. 군신(君臣)간, 신신(臣臣) 간 , 형제 간 심지어 부자(父子)간의 암투로 쿠데타가 벌어져 죽고 죽이는 무자비한 세계였다. 오죽했으면 훗날 삼강오륜(三綱五倫)이라는 인륜(人倫)지침이 공포(公布)가 되기도 했지만 모든 사람이 그 지침을 배우고 익히고 지키는 것은 아니었다.

 

재미난 기사 한 자락. “평양 비워도 괜찮을까… 김정은의 ‘마지막 고민’

출처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8/05/31/2018053100174.html

6·12 싱가포르 미·북 정상회담을 앞둔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평양을 비우는 것에 대해 상당한 부담을 느끼는 것으로 알려졌다. (하략, 독자 제위께서 기사 직접 검색요망)

 

아비 때부터 극동을 벗어나 본 적이 없다. 그래도 아비 김정일은 군림하는 동안 두어 차례 중국 대륙 깊숙이 남방까지 내려가 봤지만 똥돼지 본인은 얼마 전 겨우 국경근처에서 노닥거리다 급히 귀국하는 모양새를 취했다. 왜 그랬을까?

 

개인 회사는 혼자 군림(君臨)하는 특혜(?)를 입는 대신 모든 책임을 100% 개인이 져야 한다. 망하고 난 뒤 다른 사람에게 단1%의 법적인 책임을 물을 수 없다. 그러나 법인은 다르다. 일부분 공동의 책임을 분담한다.

 

시나브로 회사가 쪼그라들 때 혼신을 다해 살려보려고 무던 애(자금 빌리러…)를 썼지만, K전무와 직원들이 내 마음 같지는 않았을 것이다. 소위 도산 될 무렵엔 출근만 하고 때론 출근도 않고 자금 만들러 공장을 비웠으니…그들이 쿠데타는 아니지만 결국 애 쓴 보람도 없이….

 

똥돼지는 지금 주식회사가 아닌 개인회사의 오너다. 그것도 요즘 이래저래 세간의 눈총을 받고 있는 갑질 재벌 같은 오너다. 놈은 그냥 갑질도 아닌 욕지거리 구타 해고 정도는 비유가 안 되는 생사여탈(生死與奪)권을 조물주 이상으로 행사하고 있는 그런 조폭 오너. 그런 자가 이제 자리를 비우려 하고 있다. 아니 과연 그 자리를 비우고 회담에 나 설까?

 

어쨌든 놈이 비행기에 몸을 싣는 날, 자리를 비우고 평양을 떠나는 날…… 북한 인민들에게 두 번의 기회는 오지 않을 것이다. “기회는 단 한 번 뿐” 기대해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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