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사꾼과 창녀와 뚜쟁이.

나름 멋진 노후를 보내겠다고 산골로 들어온 게 어언 10년이 되 간다. 뭐 그런대로 견딜 만 하다. 문제는 가끔씩 찾아오는 외로움이다. 다 늙어 주말부부처럼 주말에 왔다가 서울 집으로 올라가는 마누라를 산골마당에서 전송하고 나면 외로움은 더 진해진다. 차라리 오지를 말지….그럴 때마다 이런 게시판에서 썰 푸는 것과 노래방 기기에 의존해 목청을 힘껏 돋우는 게 없었다면 아마도 산골 살이를 이어 나가지 못했을 것이다.(그러나 막상 이따금 서울 집에 올라가면 답답해 못 견디고 하루 밤 또는 당일로 내려오고 만다.)

 

어쩌다 가끔 친구들이나 지인들과 만나 한 잔 걸치고 노래방엘 가면 나는 주로 60-70년대 유행했던 팝송을 부른다. 특히 Tom Jones의‘고향의 푸른 잔디’ 또는 ‘Delilah’ 그리고 잉글버트 험퍼딩크의‘ Am I that easy to forget’이나 ‘Wonderland by night’은 18번 애창곡이다. 그런데 솔직히 하는 얘기지만 지금도 가사의 의미를 잘 모른다. 사실 이런 노래들을 나름 유창(?)하게 불러 재낄 수 있는 것은 중. 고딩 때 포타블 전축을 다락방에서 틀어 놓고 원어를 우리말로 적어서 수백 번 따라 불러가며 익힌 것이기에 친구들이나 지인들은 나의 노래가 끝나면 뭣도 모르고 멋있다며 엄지 척하며 환호한다.

 

비단 위에 나열한 노래 뿐 아니고, 그 밖의 꽤 여러 팝송이 내 입에서 튀어 나오는 게 많다. 엘비스 프레슬리의‘Anything that’s part of you(차중락의 낙엽 따라 가버린 사랑의 원곡)’블룩 벤튼의‘Think twice’, CCR의‘Proud mary’ 또는 다니엘 분의‘Beautiful sunday’라든가…기타 여러 장르의 팝송을 따라 부르며 익혀 두었기에 70이 넘은 지금도 노래방 기기에서 흐르는 가사를 보지 않고도 부를 수 있는 것이다.

 

이밖에 좀 특이한 노래가 있다. 로이 오비슨의‘Oh, pretty woman’이다. 이 노래의 전주곡은 드럼과 베이스 기타로 시작되는 아주 경쾌한 스윙(swing) 풍(맞나 모르겠다.)의 노래다. 그 시작이 워낙 경쾌해 한 번 배워 볼만하다고 역시 며칠 다락방에서 고생(?)한 기억이 있다. 그런데 그 고생과는 달리 시간이 지날수록 가사의 의미나 리듬이 내가 빠져들 장르는 아니었기에 얼마간 흥얼거리다 까맣게 잊었는데…..아! 글쎄! 20여 년이 훌쩍 넘은 어느 날 동네 비디오 방에 진열된 테잎 가운데‘Pretty woman’이라는 영화가 있기에(주연이 낯익은 리처드기어였기에…)문득 중. 고딩 때 익혔던‘Oh, pretty woman’이라는 팝송이 생각나 골라잡은 뒤 영화를 감상하는 가운데 놀랍게도 영화의 제목과‘OST’가 딱 들어맞는 것이었다. 나로선 영화의 내용보다는 주제가를 만나 게 더 신기했기에 아직도 이 영화의 줄거리를 기억하고 있는 것이다.

 

주인공은 독신 남에 사업가다. 비즈니스를 마치고 어떤 파티에 참석한 뒤 묵을 호텔로 가려하지만 그 지방의 길을 전혀 모른다. 당황하는 가운데 그 지방의 창녀를 만나 약간의 도움을 받는 과정에서 비록 창녀이지만 순진무구한 행동을 보이는 그녀에게 신선함을 느끼고 피차 목적달성을 위해 화대(花代)를 정하고 그녀와 하룻밤을 같이 지냈고, 아예 일주일 간 고용을 하며 애정행각(?)을 벌이다 진짜 정이 들고 사랑을 하게 되는, 우리네의 신파조 같은 영화다. 영화의 내용을 끝까지 음미해 보면 많이 거칠(?)기는 하지만‘신데렐라’를 모티브 한 영화라는 평이다. 길거리 창녀에서 잘 나가는 사업가와 결혼하고 행복하게 살아가는(추측이지만…) 스토리가 신데렐라를 연상케 하는 것이다.

 

이 영화가 또 언제 적 영화인가? 근 30년 전의 영화 아니던가. 그런데 쌩뚱 맞게 이 아침 이 영화의 줄거리가 떠오르는 것은 오늘날 세상 돌아가는 모습이 영화의 줄거리와 비슷해서다. 길거리 창녀 보다 더 천박한 북쪽의 똥 돼지가 어느 날 부동산 장사꾼 트럼프를 만나 완전히 신분세탁을 하고 지구촌의 가장 유망한 인물로 거듭나는 모습이 신데렐라나 다름 아닌 것이다. 더욱이 길거리 창녀보다 더 천박했던 북쪽의 똥돼지를 향해‘혁신하는 지도자’ 또는 ‘백성을 사랑하는 지도자’라며 칭송을 아끼지 않는 남쪽의 개돼지 또는 개子息들을 생각하면 북쪽의 똥 돼지는 하루 밤에 신데렐라가 된 게 틀림없다. 그러고 보면 부동산 사업가와 창녀만도 못한 놈과 다리를 놔 준 뚜쟁이 뭉가가 더욱 얄미워지는 아침이다.

 

 

 

 

 

 

덧붙임,

김정은 혁신? 백성 중시? 대화국면 도 넘는 목소리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8/07/20/2018072001643.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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