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15일 놈들을 박살(撲殺)냅시다.

 

 

오기(吳起) 라는 인물이 있습니다. 좀 생소한 인물일는지 모르겠습니다마는, 손오병법(孫吳兵法)이라는 게 있습니다. 손(孫)은 당연히 병법의 대가 손자(손무)를 얘기하는 것이고, 오(吳)가 바로 오기(吳起)를 칭하는 것입니다. 일반적으로 손자는 병법의 대가로 현금 까지 세인의 입에 오르내리지만, 중국 후한 삼국시대 촉한의 제갈 무후가 살아생전 자신과 비유 되는 인물로 세 사람을 꼽으니, 다름 아닌 ‘관중, 악의(樂毅: 제 나라 72개성을 공격하여 항복받은 연 나라의 장수) 그리고 바로 오기인 것입니다. 제갈량이 오기를 손자보다 위로 추겨 올리는 것은 손자는 병법가 이기는 하나 실전에 별로 참여를 하지 않았다는 이론가 이고, 오기는 자신이 고안한 병법을 전장에서 실전에 도입하여(제갈공명 역시도…)실용하는 장수이기 때문입니다.

 

본시 오기는 위(衛)나라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조국을 떠나 노(魯)나라를 찾습니다. 당시 노나라의 임금은 노목공 이었습니다. 노목공은 오기와 삼일삼야(三日三夜)를 두고 병법에 관한토론을 한 뒤 장관급에 해당하는 대부(大夫)의 벼슬을 줍니다. 중간 여러 사정이 있긴 합니다마는 오기는 노나라를 위해 전력을 다 합니다. 그러한 활약으로 노나라는 모든 실지(失地) 회복에 성공했고, 오기의 명성은 삽시간에 천하를 진동시켰습니다. 그러나 호사다마(好事多魔)라고, 그의 공이 클수록 악질적인 중상과 모략과 참언(讒言)에 휩싸였고, 결국 노목공은 소인배들의 중상모략에 현혹돼 오기를 불신하고 냉대했습니다. 이러한 상황을 직시한 오기는 노나라에 더 머물 필요가 없다고 판단하고는 탈출을 결심했습니다. 그가 탈출한 곳은 위(魏)나라였습니다.

 

위(魏)나라로 탈출한 오기는 크게 환영을 받으며 특별대우를 받습니다. 당연히 모든 병권을 쥐고 흔드는 위치가 되며, 임명식 거행에 앞서 성대한 환영 연회를 마련했는데, 위나라 왕비가 직접 술을 따라 오기에게 바치기도 했던 것입니다. 물론 오기는 감격에 겨워 위나라를 위해 최선을 다하고 무한충성을 바쳤습니다. 특히 그는 저소득층이나 아래 사람들에게 절대적 인기를 얻었습니다. 그는 매사에 몸소 실천하는 모범을 통해 장교와 하사관에게 ‘부하 사랑’을 교육하기도 했습니다. 오기에 관한 다음과 같은 일화가 전해집니다.

 

어느 날 한 병사가 종기로 고통을 겪는 안타까운 광경을 발견했습니다. 오기는 주저하지 않고 다가가 입으로 고름을 빨아냈습니다. 병사의 어머니는 그 소식을 듣고 통곡을 하는 것이었습니다. 의아한 이웃들이 통곡하는 여인에게 물었습니다. “당신 아들은 병사에 불과하지만, 오 장군께서 친절하게 고름까지 빨아내 주셨는데, 감사 대신 통곡이 웬일이오?” 병사의 모친이 말했습니다. “그렇지 않아요. 이전에 오 장군이 그 애 아비의 고름을 빨아낸 일이 있었지요. 그러자 감격해서 오 장군을 위해 생명을 바친다고, 전선에 나가서는 형세가 불리해도 후퇴하지 않고 싸우다 전사했어요. 이번에는 아들까지 그렇게 되겠으니 슬퍼 우는 거요.” 이상의 고사(古事)를 연저지인(吮疽之仁)이라고 합니다.

 

세상사 새옹지마라던가요? 오기에게 또 다른 호사다마가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오기를 등용하고 신임하던 명군 위문후가 세상을 떴습니다. 후계자는 위무후(魏武侯)였는데, 오기는 무후의 경험 부족을 고려해 간언과 건의를 많이 해야겠다고 생각했는데, 위무후는 그런 것들이 모두 잔소리로 들리고 귀찮아했습니다. 위무후가 오기를 보는 눈은 점차 부정적으로 변했으며, 처음엔 경원하다 싫어하게 되고, 이어서 불신으로 또 다음은 경계심과 적개심으로 변질 되어 갔습니다. 결국 오기는 새로운 왕을 모시고 일을 하고 개혁을 하고 싶어도 할 수 없고 신변에 위협마저 느끼게 되자, 위나라 탈출의 길을 모색하기 시작했습니다.

 

이런저런 정보를 수집해보니 그 대상 국가는 남쪽의 초(楚)나라였습니다. 때마침 초나라에서는 인재를 갈망하던 초도왕(楚悼王)이 집권하고 있었습니다. 그는 약 100년에 걸쳐 쇠약해진 국운을 다시 일으켜 세우려면 개혁이 필요하며, 개혁이 성공하려면 이를 구상하고 추진할 탁월한 인재가 필요하다고 확신했습니다. 오기와 초도왕의 궁합이 맞아 떨어진 거지요. 망설임 한 번 없이 오기는 초나라로 향합니다.

 

초도왕은 오기가 입국했다는 보고를 접하자 벌떡 일어서면서 좋아했고, 하늘의 도움이라 생각하며 오기를 상빈(上賓)의 예의를 갖춰 환영하고 극진히 대접했습니다. 일차적으로 초나라 최대 전략적 요충지의 태수로 임명하여 그곳에서 초나라의 실정을 연구케 하고, 1년 후에는 수도로 불러들여 초나라의 최고 군정장관 격인 영윤(令尹)으로 임명했습니다. 개혁을 주도하라는 의미였던 것입니다. 오기는 초도왕의 의도대로 개혁 작업에 몰두했습니다. 쓸데없는 정부 부처와 자문기관을 폐지했고 무능한 관리를 파면했으며 절감된 예산은 복지와 군비에 돌렸습니다. 청탁 금지와 부패 퇴치에도 엄격했고, 군비 확장을 하며 군인 보호와 병행하며 특히 기득권층을 철저히 배척해나갔습니다.(하략)

 

BY ss8000 ON 5. 24, 2014(어떤 무책임한 죽음에서…)

 

김종인, 오늘 통합당표 ‘코로나 비상경제 대책’ 발표

출처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20/03/28/2020032801038.html

 

우리 오가(吳哥) 조상이라서 하는 얘기가 아닙니다. 오기(吳起)를 얘기 하려면 한도 끝도 없습니다. 아무리 조상이지만 분명히 해야겠지요? 전부라고 말하지는 않겠습니다. 우리 오가들은 뭘 꾸미고 거짓말을 제대로 못하는 경향이 다분합니다. 그래서 솔직히 얘기하면 선(善)과 악(惡)을 오가는 2중인격의 소유자이기도 합니다. 그렇지만 오늘은 좋은 쪽만 얘기를 하는 겁니다.(기회 있으면 언제라도 나쁜 쪽 얘기도 해 드리겠습니다. 우리 오가는 거짓말 못합니다.)

 

그나저나 제가 조상을 팔아가며 왜 이러겠습니까? 위 기사가 나오자 아직도 입을 비죽거리는 분들이 많더군요. 도대체 그 분들은 왜 그러는지 모르겠습니다. 지금은 바꾸려 해도 아니 자르려 해도 자를 수도 없는 위치입니다. 이젠 죽으나 사나 그냥 전진만 해야 합니다. 이러는 저도 그 양반이 정말 싫었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죽느냐 사느냐 치열한 전장(戰場)입니다. 그는 이 전쟁을 지휘하는 통수권(統帥權)자이자 전진과 후퇴를 명할 수 있는 장수입니다. 그의 명령에 일사불란(一絲不亂)하게 따라야 하는 것입니다. 그의 공과(功過)는 전쟁이 끝나고 따질 일입니다.

 

오기(吳起)는 살아생전 수십만의 군사를 끌고 참전하는 전쟁만 70여 전을 치루고 단 두 번의 무승부만 있을 뿐 100% 승리를 이룬 명장입니다. 우리는 김종인 선대위원장의 능력을 믿어야만 합니다.

 

그래서 “우리 보수는 김 선대위원장님의 뜻에 무조건 따르겠습니다. 단, 삽살개를 된장 바를 수 있는 방법이라면 무조건…. 파이팅! 하십시오.”라는 댓글을 위 기사에 달았답니다. 아침에 깨어 보니“찬성127 반대2” 우군이 많았습니다. 이런 현상이라면 4월15일 100% 승리 장담할 수 있습니다. 4월15일 놈들을 박살(撲殺)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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