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北)을 달래는 두 가지 방법

 

 

먼저 결론부터 내리고 썰을 풀자.

 

첫째,

나는 며칠 전 이곳 게시판에“통미봉남(通美封南)과 주북미군(駐北美軍)”이라는 썰을 풀었다. 미국과 북한이 남한의 간섭(干涉)없이 직접 소통케 하자는 것이다. 이 점이 통미봉남(通美封南)의 주목적이다. 그 목적을 이루기 위해서 북핵을 미국이 인정해 주라는 것이다. 다만 쌍방(미. 북)간에 불가침조약(可侵條約)과 군사조약(軍事條約)을 맺고 그 조건으로 미군의 북한주둔을 골자로 하는 것이다. 미군이 북쪽에 주둔하고 있는 한 625같은 동족상잔은 절대 일어나지 않는다. 이것이 남북한 평화유지의 근간이 되는 것이고, 미군이 북한에 주둔하는 한 남쪽이 그랬듯 자유민주주의가 싹트고 그야말로 명실상부한‘조선인민 민주주의 공화국’이 됨으로 남북통일의 초석(礎石)이 될 것이다.

 

둘째,

‘우리의 소원은 통일’이라는 노래를 절대 금지곡으로 하고 통일(統一)이라는 단어를 금기(禁忌)어로 해야 한다. 우리의 소원이 통일이라는 노래는 어느 한 쪽이 망하거나 항복해야만 이루어지는 것이다. 결국 쌍방이 서로 무너지기를 기도(祈禱)하거나 소원(所願)하는 것은 서로에게 먼저 죽거나 망하라는 것이다. 내 말은, 남북의 국민이나 인민에게 불요불급(不要不急)한 통일은 당분간 할 수도 해서도 안 되기 때문이다. 각설하고….

 

세상에는 땅덩이가 우리보다 수십 배 크고 자원이 풍부해도 제 앞가림 못하고 최대빈국으로 상존해야하는 미개국이 부지기수이다. 천혜(天惠)를 입어 자원이 풍부하지만 그 천혜의 자원을 활용하지 못하고 하루를 어렵게 연명하는 빈국들 또한 어렵잖게 볼 수 있다. 국토가 넓다고, 인구가 많다고, 풍부한 자원이 있다고 하여 부국이 되고 선진국이 되는 것은 아니다. 이러한 나라들의 면면을 한 마디로 표현하면 “지도자 부재”라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우리가 그네들 보다 천혜를 입은 자원이 있는가? 인구가 많은가? 그나마 개발 시킬 국토가 넓은가? 모든 조건이 그들과는 비교가 되지 않는 열악한 조건이다. 그런데 불행하게도 딱 한 가지 그들과 공통점이 있다면 “지도자 부재”라는 점이 있다.

 

또 지구상에는 남한인구의 몇 분의일 또는 몇 십분의 일 인구만 가지고도 선진국인 나라가 여럿 있다. 그들은 인구도, 국토도, 자원도 없지만 지혜로 극복하고 지도자와 합심하여 부를 일구고 선진국이 되어 삶의 질을 높이며 향유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통일이 되어 국토가 넓어지고 인구가 널어난다 해도 결국 손바닥만 한 한반도에 무슨 변화의 조짐이 있을 것이며 희망이 있겠는가? 더구나 요즘의 국제정세는 글로벌 시대라 하여 국경의 개념조차도 점진적으로 희미해져 가는 세태이다. 보따리 장사꾼도 맘만 먹으면 어디에든 갈 수 있고, 어느 곳이든 정착할 수 있는 것을 보면 희언(戲言)만은 아니다. 그만큼 거주이전의 자유가 주어지는 게 세계적인 추세이다.

 

나는 가끔씩 통일을 외치는 작자들을 보면 통일이 되면 뭐가 그리 좋은지 묻고 싶다. 한 민족끼리 알공달공 산다는 거? 그렇다면 저희들이 가서 살아야지, 원치 않는 사람까지 불량 이웃을 맞이하라는 건가? 난 어떤 동네에 이사를 가서 이웃이 불량하면 또 이사를 간다. 절이 중 못 떠나듯 동네가 이사를 갈 수 없기 때문이다. 가라! 그리고 마음에 맞는 놈들끼리 살라는 것이다. 이런 것도 있다. 설령 어찌어찌 통일이 된다 치고 계산기를 두드려 보니, 나나 내 가족에게 나아가 나의 후손에게 돌아올 득이 무엇인가? 여러 가지 고민에 빠져 보았지만 별로 크게 이득을 볼 것 같지가 않다. 이문은커녕 적자를 넘어 도산의 위기도 감수해야 한다는 게 나의 계산이다. 그래서 “나는 결단코 통일을 원치 않는다.”

 

좋다. 여기까지는 보따리 장사꾼의 이해득실(利害得失)로 바라본 단견(短見)이니 지나치게 욕하지 마시기 바란다. 불학무식한 보따리 장사꾼의 계산법이 잘못일 수도 있고, 계산기를 잘못 누를 수도 있다. 따라서 제대로 된 계산법과 조리 있는 계산으로 통일의 당위성을 가지고 나를 설득한다면 설득 당할 마음의 자세는 되어있다.

 

기사 일부를 전재한다. 더불어민주당 김경협 의원이 17일 “종전 선언은 평화 체제에서 필요한 게 아니라 전쟁상태에서 필요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북한이 전날 남북공동연락사무소를 폭파하고 이날은 문재인 대통령과 남한을 겨냥해 ‘말폭탄’을 쏟아냈는데도 여당 의원이 계속해 ‘종전 선언’을 주장하고 있는 것이다.

 

출처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20/06/17/2020061700885.html

 

솔직히 나는 저런 주장을 한 저 놈의 주장이 이념(理念)적 주장인지 소신(所信)발언인지를 먼저 알고 싶다. 만약 저런 주장을 한 놈이 내 주장과 부합한다면 나는 반대하지 않을 것이다.

 

생각을 해 보자. 종전선언과 체제보장이라는 단어를 깊이 생각할 것 없이 간단히 들여다보자. 종전과 동시 김가의 체제 보장은 한마디로 영구분단의 획책(劃策)이다. 김정은의 수명이 얼마가 될 진 아무도 모른다. 놈이 앞으로 1년을 아니면 2년 또 100살을 살지 예측할 수 없는 것이다. 놈의 수명이 붙어 있는 한 체제가 유지 된다면 통일이란 단어를 입에 올려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특히 평화통일이라는 말은 놈에게 빨리 고꾸라지라는 의미와 같은 것이다.

 

북쪽이 원하는 종전을 선언하고 체제도 보장 해 주자. 그리해야만 남북이 갈라지고 지금까지 그랬듯 긴장의 연속선에 이루어지는 평화는 유지될 것이다. 그러나 ‘우리의 소원은 통일’이라는 주둥이는 노래 하지지 말자. 적을 자극시켜 좋은 건 없다. 그러나 다시 한 번 강조하지만 그 모든 것은“통미봉남(通美封南)과 주북미군(駐北美軍)”이 우선 된 후의 일이다. 이것이 미쳐 날뛰는“북(北)을 달래는 두 가지 방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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