빗나간 애국과 도둑질 트라우마.

 

문익점(文益漸)은 계품사(啓稟使)로 원(元) 나라로 파견된 좌시중(左侍中) 이공수(李公遂)의 서장관(書狀官)으로 중국을 방문했었다. 귀국 길에 목화 씨앗 세 개를 붓 뚜껑에 숨겨서 몰래 반입했다. 그리고 고향인 진주(晉州)로 내려가 장인인 정천익(鄭天益)과 씨앗을 나누어 목면나무의 재배를 시험했는데 그가 심은 것은 모두 재배에 실패했지만, 정천익이 심은 씨앗 가운데 하나에서 꽃이 피어 100여개의 씨앗을 얻었다. 해마다 재배 량을 늘려서 몇 년 뒤 향리(鄕里) 사람들에게 씨앗을 나누어주며 심어 기르도록 권장하였다. 이런 사실이 조정에 알려지면서 문익점은 고려 우왕 때 전의주부(典儀注簿)로 등용되었으며, 얼마 뒤 중서문하성의 간관(諫官)인 정4품 좌사의대부(左司儀大夫)가 되었다. 남의 나라 1차 산업 농산물을 도둑질해 온 문익점은 도둑놈이 확실하다. 요즘으로 치면 산업스파이가 되시겠다. 더구나 도둑질을 한 공으로 미관말직 9급에서 국가공무원 국장급으로 승승장구 했으니 말해 무엇 하겠는가.

 

약간 깨름직한 기사가 하나 있어 발췌해 본다. “매일 먹는 양파, 일본 종자였다···한국 종자로 바꾸니 가격 뚝..”

[출처: 중앙일보]

https://news.joins.com/article/23816641?cloc=joongang-home-newslistleft

 

(기사 일부 전재)

한국인이 즐겨 먹는 채소 10개 품목 중 절반은 외래 종자인 것으로 나타났다. 이마트가 2일 매출이 가장 높은 채소 10개 품목의 종자 현황을 조사한 결과다. 국내 종자 시장을 외국계가 점령하고 있는 셈이다. 농촌진흥청과 농림식품기술기획평가원 등에 따르면, 거의 모든 요리에 빠지지 않는 양파는 80%가 일본산이다. 이 중에서도 저장해서 연중 먹는 만생종 양파는 90%가 일본 종자다. 마늘 역시 80%가 중국이나 스페인 등 외래에서 온 것이다. 고구마는 연간 국내에서 생산되는 40t 중 95%가 일본산 종자이고, 파프리카와 단호박도 주로 네덜란드, 일본에서 각각 종자를 들여온다. 종자에도 ‘재산권’이 있어 해외 종자를 사용하려면 해당 국가에 로열티를 지불해야 한다. 미니 파프리카의 경우 현재 기준 종자 한 알당 1200원(한 알에선 여러개의 파프리카가 열림)으로 한 봉지(1000알)에 12만원이다. 이를 금 한 돈(3.75g) 무게로 환산하면 약 32만원으로 최근 금 시세와 비슷하다. 외래종 씨마늘(마늘종자) 연간 수입량은 5837t(약 100억원)에 이른다.(하략)

먼저 기사대로 양파를 예 들어 보자. 양파(onion)를 언제부터 양파라고 불렀는지 확실히 모른다. 70을 넘긴 내 기억 속에는 양파라는 단어가 없었고, 다마네기(たまねぎ)라는 단어로 통했다. 썰을 이어가기 전 하나만 더 일례를 들어보자, 오뎅(おでん)이라는 단어 역시 마찬가지다. 다마네기든 오뎅이든 원래 다마네기였고 오뎅이었다. 그런 걸 이 땅의 별난 애국자들이 일본어는 안 된다며 양파와 어묵으로 개칭(改稱)한 것이다. 이를테면 스파게티나 피자 또는 파인애플이나 망고도 원어대로 불리 운다. 굳이 다마네기로 하기 싫다면 오니언(onion)으로 표기 했어야 했다.

 

원래 양파는 서아시아 또는 지중해 연안이 원산지라고 추측되지만, 양파로 개칭되기 이전까지 다마네기라는 일본어로 불렸으니 일본을 거쳐 도래한 식용 식물이 아닐까? 어묵이라 불리어지는 오뎅 역시 일본어로 계속 불리어지다 우리말로 고쳐 불렀으니 일본이 원산지는 아닐지라도 우리 보다는 먼저 받아들이고 만들었다고 유추할 수 있다.

 

기사에도 밝혔지만 양파는 80%가 일본산이라고 하니 양파의 원산지가 일본은 아니더라도 그 씨앗을 발전 계승시킨 것을 이 땅으로 가져왔으니 오히려 일본에 감사까지는 않더라도 저런 식의 반일감정이 잔뜩 한 투의 기사는 문제가 있는 것이다. 로열티라는 게 다른 게 아니잖아? 배움과 학습에 대한 학비 아닐까? 그들도 그런 작물(산업)을 만들기 위해 부단한 노력을 했을 것이고 그것에 대한 보답을 얻는 것뿐이다.

 

고구마 역시 마찬가지다. 한반도에 고구마가 들어온 때는 조선시대 후기로, 감자가 들어온 시기와 비슷한 무렵이다. 조선 영조 때에 조선 통신사 조엄(趙曮)이 일본 대마도에서 들여와 제주도와 부산 영도에서 이를 길렀다는 설이 정설이다. 통신사들이 사신으로서 일본으로 길을 향하던 가운데 군고구마(야끼모)가게를 보았다는 기록이 남아 있다. 이를 보고받은 영조가 “그럼 그 종자를 가져와서 심어보라.”며 심었다는 게 시초였다고 한다. 결국 우리 보다는 일본이 원조다.

 

기사는 그 밖에 매출이 가장 높은 채소 10개 품목의 종자 현황을 조사한 결과 국내 종자 시장을 외국계가 점령하고 있는 셈이라고 장탄식을 하지만, 개 중에는 그 종자를 받아들여 우리 식으로 개량한 작물들이 세계 농산물시장을 지배하는 품목이 여럿 있는 것으로 안다.

 

어디 농산물뿐이겠는가? 산업전반에 걸쳐 우리가 가진 기초실력이 그들에 비해 형편없었으나 그런 것들을 들여와 피나는 노력 끝에 얻은 결과물을 가지고 마치 일본 것이고 일본 때문에 가격이 높았다는 식으로 애국적(?)기사를 낸다는 게 과연 옳은 일일까? 일본 입장에선 정당하게 가격을 매기고 기술을 이전하거나 전수한 사실밖에 없는데 그것이 마치 국내의 가격까지 영향을 미친 것처럼 떠든다면 얼마나 억울하겠는가? 정이 억울하면 일본산 종자를 심지 않으면 되는 것이다. 기사를 읽는 내내 왠지 모를 울화 같은 게 치밀어 올랐다. 생각해 보면 삽살개의 반일 프레임이 이젠 소위 메이저 언론까지 파고들었다는 생각이드는 것이다. 한마디로 망국적…

 

서두에 산업스파이 문익점을 얘기한 것은, 위 기사의 주장 대로면 만약 중국이 지금이라도 문익점을 예로 들어 목화씨를 훔쳐 간 씨 도둑놈이라고 한다 해도 할 말이 있을까? 더욱이 씨 도둑놈을 미관말직에서 중앙부처 국장급으로 승진을 시켰다면, 오늘날 원전폐쇄로 최고급 기술력이 중국으로 또 삼성의 최고급 정보(기술)를 가진 사람을 정식으로 중국이 스카웃 한다하여 그들을 매국노라고 폄하할 수 있을까? 한일협상 이전까지 우리의 산업전반 모든 기술은 일본이 아니었으면 배울 데가 없었다. 그들이 우리에게 우월감을 가지는 가장 큰 이유다. 인정할 것은 인정해야 한다.

 

실컷 배우고 따라잡고 아니한 말로 청출어람(靑出於藍)의 경지에 왔다고 월사금 아깝다는 식으로 스승에게‘그것 돌려주시오’하는 도둑놈 심보와 무엇이 다를까? 이런 것까지 고주왈메주왈 해 가며 반일감정을 선동하는 근저에는 2등 콤플렉스 같은 것이다. 이런 콤플렉스로는 절대 극일을 할 수 없다. 스승의 은혜를 이 따위로 폄훼 하는 것은 야만인이나 할 짓이다. 오늘날 김대중이“와다시와 도요다 데쓰”라고 외친 덕분에 존경을 받는 것이다. 스승의 은혜를 아는 지식인이기 때문이다.

 

더하여 어떤 가문에 빨갱이가 유독 많은 것 또한 산업스파이 즉 목화씨도둑 후예로서의 자격지심 내지는 트라우마 같은 것이라고 아니할 수 없다. 그들 또한 그 자격지심이나 트라우마를 극복 못하면 가문 전체가 빨갱이 집안으로 전락하게 될 것이 몹시 저어되어 해 보는 소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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