좌표(座標) 마지막

하나 둘, 하나 둘, 하나 둘 셋 넷…거북이 진달래 낙동강 오리 알…. (다시 반복)하나 둘, 하나 둘, 하나 둘 셋 넷…거북이 진달래 낙동강 오리 알….삽살개 나와라! 여기는 풍산개, 하나 둘, 하나 둘, 하나 둘 셋 넷…거북이 진달래 낙동강 오리 알…. 삽살개 나와라! 여기는 풍산개. (반복)삽살개 나와라! 여기는 풍산개. 삽살개 감 잡았으면 응답하라! 이상!

 

하나 둘, 하나 둘, 하나 둘 셋 넷…거북이 진달래 낙동강 오리 알. 숫자를 세고 다시 여러 단어를 마구 날리는 것은 요즘으로 치면 아무 말이나 하기식이다. 뭐 꼭 거북이 진달래나 낙동강 오리알이 아니어도 좋다. 무전병의 취향대로 마구 지껄이고 무전의 수신 상태를 점검하기 위한 요식행위다. 그러면 상대(삽살개)가 감(수신)상태가 좋으면 “여기는 삽살개! 여기는 삽살개! 감 잡았다. 이상!”

 

군대를 다녀 온 후 사회생활 할 때 느낀 것이다. 남성 중 군대를 다녀온(당시는 정규군이 아닌 방위병도 많았으니…)사람들 중 그 사람이 포병출신인지 아닌지 알 수 있는 방법이 있다.(100% 그렇다는 건 아니고…) 나는 지금도 그 알량한 포병(같지 않은 포병)출신이라고 그런 버릇(?)이 남아 있다. 가령 온라인 쇼핑을 하거나 내 전화번호를 타인에게 구두로 알려줄 때(010-7105-****), 보통은‘공일공-칠일공오****’라고 표현 하지만 포병출신들은‘공하나공-일곱 하나 공 다섯****’ 나는 144측지 병으로, 역시 일사사로 발음하지 않고 하나 넷 넷이라고 발음한다. 또 엄한 얘기가 길었다. ㅋㅋㅋ….

 

군장을 차리고 배낭과 따불 백을 지고 나가면 당연히 있어야 할 찦차는 안 보이고 육군 중위 한 사람이 서 있다. 그리곤“오병규?”하며 확인을 한다. “넷! 병장 오병규” 그리고 수인사를 하자마자 그는“가자!”라며 앞장을 서는 것이었다. 이 얘기에서 그다지 중요한 인물은 아니지만 그래도….그는‘최 중위’였다. ROTC로서 그 역시 제대를 얼마 남기지 않았다고 했다.

 

그가 앞장서서 오르기 시작한 것은 천m가 넘는 고봉의 백암산OP였다. 내 기억으로는 OP엔 보병들이 경계를 서고, 포병4분의1(병졸4명과 장교1명‘관측장교’라고 했다)이 보병들의 사주경계 보호 속에 근무를 했었다. 그런데 문제는 4명의 관측병 속에‘하나 넷 넷(측지병)’은 OP에 갈 수 없는 병과였다. 그럼에도 이리저리 마구잡이로 뺑뺑이를 돌린 뒤 갈 수도 없는 백암산 꼭대기 OP로 나는 던져졌던 것이다.

 

사실 솔직히 얘기하면 OP생활이라는 사령관 당번병 보다 더 한량(한가)했다. 보병들은 죽어라 참호를 파거나 보수하며 경계와 불침번도 섰지만 포병(4/1)은 낮으로 관측망원경으로 적진의 OP를 살피고 놈들의 행동을 관측한 후 이상 동향이 있으면 대대로 보고하고 하는 정도였고 남는 시간은 볼 줄도 모르는 산삼을 찾거나 아름드리 피나무를 벌목하여 바둑판 만들기를 하는 등 신선놀음이었다. 물론 경계와 불침번은 열외였다.

 

미리 밝히지만 제대를 한 후 전임 사령관(그 분은 육본 인사처로 가셨다가 전역을 하셨다)댁에(제대 후에도 그 분과는 소통을 했었는데 언제부터인지 연이 끊어졌다.)인사드리러 가서 안 사실이지만, 사령관이 나를 숙소에서 몰아내고 최전방OP까지 올려 보낸 것은 탈영할 게 염려스러워 그랬다는 것이다.(지금은 어떤지 모르지만 당시는 탈영병이 생기면 부대의 최고책임자도 연대책임을 졌었다)

 

내 왼쪽 정강이는 지금도 상처가 남아있다. 정강이가 함몰된 적이 있었기 때문이다.(지금 막 정강이를 살펴보니 그 상처가 아직도 선명히 남아 있다.ㅠㅠㅠ…)그렇게 신선놀음을 하며 제대를 향해 하루하루를 까먹던 어느 날 그예 대형사건이 터지고 말았다.

 

처음OP를 올라갔을 때 나의 임무는 포사격을 유도하는 무전병(지금은 잊어먹었지만…)이었다. 그러나 독자 제위께서 아시다시피 나는‘하나 공 다섯(105) 박격포 사수’에서 다시‘하나 넷 넷144측지: 대포를 쏘기 전 대포의 자리를 잡아주는 작업)’으로 병과가 바뀌었고 이제 팔자에도 없는 관측병이 되어OP 근무라니…..

 

사실 OP에 올라오자마자 이틀 정도 최 중위로부터 무선 송수신 및 적진에 105m 곡사포의 화점(좌표)을 산 아래의 포병들과 교신하는 교육을 받긴 받았다. 625사변 때 신병(특히 학도병)들에게 하룬가 이틀 방아쇠 당기는 법만 교육시키고 전선으로 내 보냈다지만…턱도 없는 소리. 나 자신 워낙 둔재(鈍才)인데다 단 이틀 교육으로 그런 업무를 맡을 깜냥이 되지 못했지만, 그러나 당장 전시도 아니고 또 제대 날짜만 기다리는 육군병장 오병규이기에 어영부영 시간만 죽이고 있었다.

 

어느 날 한 밤 중에 관측소에 비상이 걸렸다. 그날 비상은 적과 가상전투를 벌이는 날이었다.(요즘으로 치면 씨물레이션?)그런데 나 보단 하급이지만 원래 무전병이 휴가를 가고 없었다. 가상전투의 포사격 유도를 내가 했어야 했다. 하늘이 캄캄해 왔지만 어쩌겠는가. 무전기를 잡고 지도를 놓고 각도기(?)를 잡고 요래조래 화점(좌표)을 잡아가며 산 아래와 교신을 하며 포사격을 유도 해 나갔다.

 

아~~~~~~!!! 지금 이 시각에도 진땀이 다 난다. 그 놈의 포사격을,,, 제대만 꼬박 꼬박 기다릴 게 아니라 제대로 배웠어야 하는 건데….아~~~~!!!! 이 노릇을 어쩌란 말인가? 그날 내가 유도한 포사격은 몽땅 아군진지로 떨어지고 말았던 것이다. 아~~~~!!! 난 이 시간에도 쪽이 팔린다. 50년 전의 일이… 물론 그날의 비상 작전은 중단이 되었고….

 

다음 날 대대장은 얼마나 성질이 났으면, 천m가 넘는 그 고지를 단 걸음(지금은 도로가 있는지 모르겠지만 당시는 도보로 기어 오르내렸다.)에 뛰어올라왔고, “오병규 개새끼! 일루와!” 대대장 앞에 부동자세를 취한 후 나는 정신을 잃고 말았던 것이다. 면상으로 주먹이 날아오기 전 그 무식한 워커발로 쪼인트를 까였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그 상처가 지금도 남아 있는 것이다. 내가 정신을 차린 것은 대대장은 있는 성질 없는 성질 다 부리고 하산을 한 다음이었고 의무병이 국방색 손수건으로 팅팅 부어오른 얼굴을 닦아 줄 때였다.

 

그래도 대대장님께 감사한 것은 영창은커녕 현장 사살을 안 하신 것으로(이건 이적행위가 아니라 여적행위에 가까운 죄)도 감지덕지(당시는 군대의 군기가 그렇게 바짝 들어 있을 때 였다)할 수밖에 없었다.

 

그 뒤의 얘기는, 얼마 남지 않은 군 생활을 하며 정말 힘들고 고단한 과정이 있었지만, 그래도 그런 군대가 있었기에 나 자신 많은 것을 배우고 특히 힘들고 어떤 고통이라도 견딜 수 있는 사나이로 거듭났다고 자부한다.

 

그런데 하필이면 이런 얘기를….. 내가 이 썰을 풀기로 마음먹은 것은 며칠 전 보도 되었던 아래 기사 때문이다.

 

“한국, 한미워킹그룹 우회해 남북직통 K터널 뚫을 수도”

출처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20/07/07/2020070700123.html

 

미쳐도 단단히 미친놈들이다. 이젠 하다하다 정말 북쪽 똥돼지와 함께 참수되려고 환장을 하지 않고서야….

 

나는 이 기사를 보고 즉시 트럼프 대통령과 교신을 하려 했다.

하나 둘, 하나 둘, 하나 둘 셋 넷…거북이 진달래 낙동강 오리 알…. 하나 둘, 하나 둘, 하나 둘 셋 넷…거북이 진달래 낙동강 오리 알….여기는 서울 오병규…여기는 서울 오병규 트느님! 나오시오! 트느님! 감 잡았으면 응답 하시오!

 

그리고 청와대 좌표(동경126도 북위37도) 즉시 한 방 날려 주시오!!!! 이러고 싶더라니까. 설령 좌표가 화점이 잘못 돼 청와대 뒷동네 우리 집으로 떨어지더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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