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o: Ms. Young Kim

제목: 위안부만 사람입니까?

 

대소가 되는 형수가 70년대 안국동에서 하숙집을 했었다. 그 집이 한 때 유명했던 배우 남정임씨의 집이었는데 그녀가 인기가 오르자 어디론가 이사를 하며 그 집을 사서 하숙을 치게 된 것이다. 정방형의 꽤 너른 한옥이었는데 학생 한둘을 제하면 일반 직장인들이었고, 방 두 개는 임자가 따로 있었다.

 

하나는 당시 한창 유행(?)처럼 번졌던 일본인 현지처라는 아가씨가 그 주인공이고 다른 하나는 중년의 부부가 고등학생 딸(내 여동생의 급우라 이름도 기억했었는데…)아이 하나를 데리고 살림을 했었다. 그 부인이 곱상하고 참 조신한 느낌을 가졌었는데 나중 듣고 보니 일본 여자라는 것과 남편 되는 양반이 일본에 징용으로 끌려갔다가 그곳서 만나 부부의 연을 맺고 해방이 되자 함께 건너온 것이라고 했다.

 

당시의 분위기가 좀 특이 했던 것은 일본인 현지처라는 아가씨는 외화 벌이를 해서 그런지 당당하게 행동하며 돈 많은 일본인을 물었는지 가끔 선심도 쓰고 그랬던 기억이 있고, 그 일본 아주머니(나는 그렇게 호칭 했다) 다소 곳 함을 넘어 무슨 죄인인양 항상 사람들을 정시하지 못함을 느꼈다. 남편 되는 양반은 일식당 요리사로 알고 있었는데, 그 후 군대를 다녀와 놀러 갔더니 그 사이 아주머니가 이혼을 하고 혼자 산다는 소식을 끝으로 후의 일은 내 기억에서 사라졌다.

 

부용회(芙蓉會)라는 게 있는 모양이다. 부용회는 한국 남자와 결혼했다가 해방 뒤 버림받고 내쳐진 일본인 아내들의 모임이란다. 부용회가 생긴 내력이 그렇단다. 일본으로 유학, 징용, 징병을 온 한국 남자들과 눈 맞아 살다가 해방이 되자 한국 남자를 따라 들어왔지만 막상 한국에 도착해보니 남아 있는 일본인들도 맞아 죽을 판인 그런 사회 분위기를 전혀 몰랐었고 게다가 사랑했던 남자는 이미 한국에 가정이 있거나, 안 그런 경우에도 시집의 구박과 학대가 심해 쫓겨나고, 결국 파혼(破婚)과 냉대, 멸시를 겪어야만 했던 것이다. 뭔가 잘못 됐다고 생각한 그녀들이 일본으로 귀국을 시도 했지만 한일국교가 단절된 상태라 귀국선마저 끊겨 오도가도 못 하게 된 처지의 여성들은 의도치 않게 타국의 6·25도 겪으며 죽고 살아남은 여성은 남의 집 식모를 하거나 술집에서 몸을 팔아가며 치욕의 삶을 살아온 여성이 4000명이 훨씬 넘었고 이제 대부분 저 세상 사람이 됐다는 것이다.

 

정신대라는 이름으로 강제 동원 된 우리의 할머니가 몇 분인지 모르겠다. 물론 숫자가 중요한 것은 아니다. 그러나 기록에 의한 한국 남성으로부터 버림을 받은 일본 할머니가 4000명을 훨씬 넘었다는 것은 간과할 일은 아닌 것이다. 순정을 바쳐 몸과 마음으로 사랑한 낭군님을 따라왔다가 이국땅에서 버림받은 것이나 강제 동원에 의해 이국땅에서 능욕을 당했던 우리네 할머니나 여성으로 겪어야 할 그 수모와 수치 나아가 영육의 공황과 피해는 어느 것이 더 하고 덜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정말 아이러니 한 것은 강제로 끌려간 위안부는 세상에 들어내고 큰소리치며 보상을 받아내고 받기도 했지만, 서방님 따라 이국까지 온 부용회 할머니들은 시집의 나라나 친정인 일본에 절대 구차한 소리를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다만 일본 정부에서 이런 사실을 오래 전 알고 대대적으로 르포형 기사로 취급한 후 사회적 문제로 부각시켜 일본 호적을 가진 할머니에 대해 긴급구호 형식으로 개인당 얼마씩 지급 해 주는 금액이 오늘날 부용회를 지탱하고 있다는 것이다.

 

따지고 보면 위안부 할머니나 부용회 할머니나 동시대를 살아온 같은 여성이라는 사실이다. 일본이 불행에 빠진 자국 여성들을 대 놓고 돕지 못하는 것은 능력이 없어서가 아닐 것이다. 저들이 저지른 죄업에 대한 미안함 일 것이다.

 

어젠가 그제 몇 분 남지 않은 위안부 할머니 한 분이 돌아가신 모양이다. 전국적으로 50여 명 남은 부용회 할머니들도 평균 연세가 90세라는 기사를 보았다. 누가 더 불행했던가는 따질 수 없다. 우리네 할머니이니까 더 동정심을 가져야 하고 일본 여성이니까 오불관언해야 한다면 예도 아닐뿐더러 국제사회의 일원이기를 포기 내지 방기(放棄)하는 것이다.

 

위안부 문제와 소녀상은 한일관계의 가장 큰 핵심이고 뜨거운 감자다. 100% 우리가 저지르고 우리가 주장하는 민족감정이다. 두 나라의 관계가 원만하게 돌아가려면 꼭 이 문제가 발목을 잡는다. 혹자는 박근혜 정권의 위안부협상을 두고 원천무효를 주장하지만, 내면을 따지고 보면 꼭 그런 것만은 아니다.

 

불과 며칠 전 동아일보<심규선 칼럼>에는 이렇게 썼다. 현 시국이 어느 누구도 감히 위안부 문제를 건드리기 불편해 할 때 그는 참 기자의 용기를 가지고 칼럼을 쓴 것이다. 그 기사 일부를 발췌해 보자.“이런 주장을 하면 비난을 각오해야 한다. 분명히 말하지만 일본 정부와 정치인들의 잘못된 주장, 위안부 합의 과정에서 부족했던 점에 대한 비판 등에는 기자도 동의한다. 국민 정서도 존중한다. 기자가 주목하는 것은 한국 언론이 보도한 것들이 아니라 보도하지 않는 것들에 관한 것이다. 일본 관련 보도에서도 언론은 ‘감정적인 선수’가 아니라 ‘냉정한 심판’이 돼야 국내외적으로 신뢰를 얻고, 궁극적으로 국익에 도움이 된다고 믿기 때문이다.

 

이런 문제는 어떤가. 위안부 합의 당시 생존 위안부 할머니는 46명이었다. 그중 34명이 ‘화해·치유재단’이 배상금 성격으로 지급하는 1억 원을 받겠다고 신청했고, 이 중 31명은 두 번에 나눠 이미 전액을 지급받았다. 예상보다 많은 숫자로 의미가 있다. 그런데 이 보도자료는 푸대접을 받았다. 국민 정서에 맞지 않아 쓰기 싫다는 기자도 있었다. 합의를 거부하는 할머니들이나 단체의 의견도 중요하지만, 고민 끝에 다른 결정을 내린 할머니들의 선택도 존중받아 마땅한 것 아닌가.”

 

46명 중 34명이 배상을 끝으로 더 이상 이 문제를 거론 하지 말자는 뜻이다. 나머지 10여 명의 할머니를 앞세워 소동을 피우는 것이다. 단 한 명이 남을 때까지 정치적으로 악용하려는 세력 아니면 사회운동을 빌미 삼아 그 문제로 빌붙어 빌어먹는 세력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어째서 무엇 때문에 이토록 과거사에 천착하고 함몰이 되어 양국 간의 관계를 저해 하는지 이젠 우리가 그 해답을 내 놓아야 할 때가 아닐까?

 

친척 형수네 방 한간을 빌려 살림을 살다가 어디론가 사라진 그 아주머니가 이 땅에 살아 계신지 또한 내 동생의 급우였던 그 딸아이는??? 부용회에 계실까? 아직도 이 땅엔 위안부 할머니만큼 불쌍하고 버림받은 부용회 할머니들이 50여 명 살아가고 있단다.

 

 

 

영 김 美 하원의원, ‘위안부 논문’ 하버드대 교수에 “역겨운 주장…사과 촉구”

https://biz.chosun.com/site/data/html_dir/2021/02/12/2021021200169.html

 

To: Ms. Young Kim

이러지 맙시다. 다른 건 다 관두고라도 그 교수 양반의 논문이 민족 입장에서 역겨울 수는 있겠지만, 최소한 가짜이거나 표절은 아니잖아요? 그렇다면 그 논문은 학자적 양심으로 자신이 연구하고 개발(?)한 논지(論旨)를 그대로 표현한 것입니다.

 

솔직히 이 나라엔 그러한 양심적 논문을 쓰는 학자가 없습니다. 오로지 정권의 눈치를 살피거나 정권의 주구가 되어 연구는커녕 다른 이가 연구 발표한 논문을 거의 베껴 쓰거나 표절한 것으로 학위를 받고 그것으로 국회의원도 되고 장관도 되는 자들이 어제 그제도 나왔습니다.

 

뿐이겠습니까? 오히려 그 하버드대 교수님처럼 자신의 소신을 굽히지 않은 연구결과를 발표했다가 이념과 사상이 다른 개돼지나 정적으로부터 비난은 물론 테러까지 당하는 경우가 왕왕 있답니다.

 

이역만리 타관에서 민족 아니 모국을 위한 행동이나 표현은 감사한 일이지만 다른 이를 비난하거나 공박(攻駁)할 때는 역사적 진실을 보다 소상히 파악한 후에 하심이 좋을 듯합니다. 현하(現下)한일관계는 재외동포들의 설익은 애국론으로 해결될 일이 아닙니다.

 

한일관계의 해결은 이 땅의 누구이든 票퓰리즘에 물들지 않은, 개돼지를 선동하여 정권을 유지해 왔던 더하여 일본인을 모두 죽여야 한다며‘죽창가’를 부르는 자들이 살아 있는 한 결단코 해결점을 찾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오늘도 보십시오. 이 땅의 최고 지도자라는 자가 새해 인사를 중국어, 베트남어, 영어로 적어 올렸다는 것입니다. 새해 인사를 다국어로 하며 일본어 메시지는 따로 올리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아래 이렇게 변명을 합니다.“음력설을 쇠는 나라의 언어와 세계 공용어인 영어로 인사를 전한 것이고 일본은 음력설을 쇠지 않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답니다.

 

“말 한마디에 천 냥 빚을 갚는 다”라는 모국의 속담은 기억하시겠지요? 이것은 한마디로 시정의 잡배도 하지 않는 행동입니다. “개(하긴 북쪽 사람들은 이 사람을 두고‘삽살개’라고 합니다)만도 못한 개xx입니다.” 이런 식으로 한일관계를 점점 나락으로 떨어트리며 개돼지들에게 선동질을 하며 정권을 유지해 나가고 있는 것입니다. 일본은‘음력설’을 쇠지 않는다면 영어를 쓰는 어느 나라가‘음력설’을 쇠는 나라가 있습니까? 오히려 미국에 묻고 싶습니다.

 

어떤 경우가 되었든 한국과 일본은 지구촌 어떤 국가보다 선린관계를 유지해야 하고 그렇게 되도록 노력을 해야 함에도 반일(反日)을 정치적 목적의 매개체(媒介體)로 이용하는 악랄(惡辣)한 짓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Ms. Young Kim!!!

당신의 나라는 이제 미국입니다. 미국을 위해 열심히 일 하십시오. 어쭙잖은 민족이라는 이름의 향수에 젖어 이런 일을 하신다면, 이는 민족에도 한일관계 개선에 조금도 도움은커녕 분란만 일으키는 행위입니다.

 

어쨌든 정말 감사합니다. 그러나 모쪼록 민족을 위해 굳건히 일어났지만 더 이상은 당신의 도움이나 일본을 향한 분노는 마셨으면 합니다. 진정 민족을 위하는 길이라면 시정잡배도 않은 소모적인 일을 저지르는 자들을 타이르는 게 먼저입니다. 끝까지 읽어 주셔서 또한 감사합니다.

Leave a Reply

이메일은 공개되지 않습니다. 필수 입력창은 * 로 표시되어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