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동주 주고, 공자 받고…

 

김치 주고, 베이찡코야 가져오고…

 

중국 바이두, 윤동주 시인을 ‘중국 국적 조선족’ 표기

https://www.chosun.com/politics/2021/02/16/XX2RPA2XI5BNVC77T3SN7M7FUQ/

 

참, 난리, 난리 이런 난리도 없다. 내가 겪은 625난리 다음으로 세상이 뒤집힌 이런 난리 없었다. 바야흐로 요즘 한국과 중국 간에 벌어진 문화 침범(탈)난리 말이다. 그런데 문제는 난리가 나면 어떤 방법이든 수습책을 마련해야 하는데 시쳇말로 방방 제자리 뛰기만 하는 놈, 추수철 살 오른 메뚜기처럼 뛰는 놈….ㅉㅉㅉㅉ…그렇게 뛴다고 해결 되나? 그래서 하는 말, 엽전들은 무슨 일이 벌어지면 양은냄비 끓듯 한다고 하는 거다.

 

자! 우리 긴 얘기 할 거 없이 수습책을 찾아보자.

 

첫째, 먹는 거부터 찾아볼까? 그래! 김치가 좋겠다. 중국 늠들이 김치가 저희 꺼 라면‘ok. call’연후“race!‘베이찡코야(all in)’”하자는 거다. 마지막 패 돌린다!!

 

“위지동이전(魏志東夷傳)에 보면, 연경(燕京)에 오리구이집이 여럿 되는데 그 향과 맛이 천상의 어떤 요리보다 낫다고 적혀있다. 특히 오리구이의 재료가 되는 오리는 야장(鴨江)의 오리를 사용한다. 뿐만 아니라 연경의 오리구이는 동이(東夷)로부터 전수 받아 오늘까지 전해 내려오는 것이다.”라고 적혀 있다.

 

자! 그렇다면 위지동이전을 해석해 보자. 연경(燕京)은 오늘날 북경(北京)의 옛 지명이다. 또한 위지(魏志)에서 일컫는 야장(鴨江)은 우리의 압록강(鴨綠江)을 두고 이르는 것이다. 즉 압(鴨)은‘오리’를 뜻한다. 예로부터 압록강엔 오리가 무수하게 많았단다.(아마도 오늘날의 철새도래지 같은 게 아닐까?) 그런 즉 연경의 오리구이는 동이(東夷)가 원산지이다.

 

서양 사람들은 연경 오리구이를‘페이킹 덕Peking Duck)’이라고 한다. 또 중국 사람들은‘북경고압北京烤鴨(베이찡코야)’라고 부른다. 세계적인 요리로 각광 받고 있는 것이 ‘북경고압北京烤鴨(베이찡코야)’인 것이다. 따라서 따지고 보면‘북경 오리구이’는 우리 한반도 것이 확실하다. 그래서 하는 얘긴데,,,,저놈들이 자꾸 김치가지고 시비를 걸면“김치(call), 베이찡코야(all in)”하면 될 것을 정신 산란하게 방방 뜨기만 해서 되겠능가???? 이 정도면 아무리 김치가 우리 것이라고 해도 국적(원산지)을 바꿔도 큰 손해 없을 것이다.

 

자! 둘째, 윤동주 시인을 ‘중국 국적 조선족’이라고 우긴다며???

우선 우리들 엽전님들께 물어 보자! 윤동주가 인지도가 높을까? 아니면 공자(孔子)가 지명도가 높을까? 내 개인적 생각은 공자가 그래도 지명도가 조금 더 높을 거 같다. 그래서 공자님을 우리 국적으로 만들어 보자.

 

중국 산동성엔 우리에게 널리 알려 진 태산(泰山)이 있다. 그곳에서 멀지 않은 곳에 취부(曲阜)라는 고을이 있는데 그곳에 가면 공자를 모신 사당이 있다. 그런데 생각보다는 그리 크지 않고 초라하다. 왜냐하면 공자의 조상은 원래 중국 사람이 아니라 한반도에서 납치 되어간 인물로 알려져 있다.

 

역시 위지동이전에 오환국(吾桓國)이 잠시 등장한다. 오환국은 원래 고구려의 속국으로 알려져 있다. 춘추전국시대를 통 털어 가장 뛰어난 다섯의 군주를 오패(五霸)라고 하며 그 중의 으뜸을 제환공(齊桓公)으로 친다. 제환공이 뛰어난 군주이긴 하지만 그에겐 보다 뛰어난 신하가 있었으니 그들이 바로 관중. 포숙. 습붕이다. 그런 제환공이 관중. 포숙. 습붕을 대동하고 오환국을 정벌하러 간 적이 있었다. 물론 당연히 오환국은 전쟁에 패하고 제나라에 복속이 되며 많은 백성이 전리품으로 끌려가게 되었는데 그 중의 한 사람이 공자의 6대조 할아버지라는 게 위지동이전에 적혀 있는 것이다.

 

서울 종로구에는 성균관대학교(成均館大學校)가 있다. 무엇보다 성균관대학교라는 교명이 어떻게 명명 되었는지 굳이 설명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캠퍼스에는 다시 대성전(大聖殿)이 있다. 그렇다면 성균관과 대성전에 대해서 쪼끔만 알아보자.

 

중국으로 끌려 간 공씨 즉 공자의 6대조 할아버지는 어찌어찌 하다가 노(魯)나라에 정착을 하는데, 그 노나라가 오늘의 산동성 취부(曲阜)도 관할하여 일단 노나라 백성이 되었고 공자의 할아버지 대에 이르러 유학(儒學) 즉 학자가 아닌 이름난 장수(將帥:미안하지만 이름을 잊어 먹었음)로 국방에 충실하며 서서히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했다고 한다.

 

그 후 공자 대에 이르러 공자의 학문적. 정치적 업적은 생략하기로 하고, 아무튼 공자 사후 고려시대 이르러 원나라에 잡혀갔던 충렬왕이 공자에 대한 기록과 사연을 접하고 귀국을 하며 공자의 족적을 기리기 위해 재위34년(1308년)에 성균감이라며 공자의 사당 비스무리한 유학(儒學)전수관을 만든 게 효시가 되어 조선조에 이르며 (조상으로서)공자를 제사하는 문묘와 유학을 강론하는 명륜당과 위패를 모시는 곳이 대성전(大聖殿)인 것이다. 즉 대성전은 공자묘(문묘)인 것이다. 따라서 공자의 조상은 분명히 한반도의 핏줄이고 따라서 공자 역시 한반도 인물이 분명하다.

 

조금 더 첨언(添言)한다면, 진시황 때 분서갱유(焚書坑儒)라는 인류 역사상 가장 악랄한 문화파괴가 있었다. 유(儒) 그 자체가 곧 공자다. 뿌리가 자신들 것이었다면 그런 식으로 파괴하고 말살 시키지 않았을 것이다. 그리고 수천 년 지난 뒤 다시 제2의 분서갱유가 있었으니 모택동 시절‘문화혁명’이라는 이름으로 다시 공자를 핍박한 적이 있었다. 정말 불쌍한 우리 공자님이시다. 그러나 우리는 오늘날까지 성균관과 대성전을 고이 계승발전(繼承發展)시켜 왔으며 후대에 그분의 빛나는 업적을 또한 전해 주어야 할 것이다.

 

워뗘? 윤동주 주고, 공자 받고…김치 주고, 베이찡코야 가져오고…OK?

 

덧붙임,

머..이 거 사실은 소설 좀 썼다. ㅋㅋㅋㅋ…그러나 방방 떨 게 아니라 좀 학문적 소양으로 소설도 써 가며 중국 늠들과 싸우자는 얘기다. 이 거 제대로 번역해서 바이두에 올려 봐라. 당장 윤동주 고향으로 돌아오고 김치 포기 할 껄? 껄껄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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