돗자리 장사 유비의 전력(前歷)

유비(劉備), 촉한(蜀漢)의 소열제(昭烈帝)라고 하지만 사서(史書)에는 선주(先主)라고 한다. 촉한을 건립하였으며 자(字)는 현덕(玄德)이라 하고, 탁군의 탁현(오늘의 河北省)사람으로 동한(東漢)의 황족이기도 하다. 어려서 무지 가난했고 모친과 함께 돗자리를 짜고 짚신을 파는 것으로 업을 삼았다. 황건적(黃巾賊)의 난이 일어나자, 군사를 일으켜 진압에 참여하였다. 나라는 어지러워지고 군벌들의 혼전이 거듭되는 중 기회를 얻어 점차 두각을 나타내고, 일찍이 서주목(徐州牧)을 지냈다. 이후 예주, 좌장군 등에 제수되었지만, 세력이 약하고 힘이 없었다.

 

서기207년(단기2540년, 漢 헌제 건안12년, 신라 내해왕 11년, 고구려산상왕11년, 백제 초고왕 42년)드디어 제갈량이라는 재사(才士)를 얻고 다음해엔 손권과 연합하여 조조를 적벽에서 대파하고 요지인 형주(荊州)를 점거하여 아지트를 삼고 점점 역량을 키워 나갔다. 연후 오래지 않아 촉(蜀)땅으로 들어갔고 천하의 요지인 익주(益州)를 점거하여 다시 한중(漢中)을 탈취한 뒤 스스로 한중왕(漢中王)이라 칭하고 서기220년…결국 동한(東漢)이 망하자 그는 다음해에 칭제(稱帝)했고, 성도(成都)를 도읍으로 정하고 국호를 촉(蜀)이라하며 건국(建國)을 하였다.

 

박용진 “윤석열, 나와 1시간 토론하면 밑천 다 드러난다.”

https://www.chosun.com/politics/politics_general/2021/03/10/MPYOYYQ4PNFQVFARO23UWTTJTU/

 

정말 욕부터 한 바가지 뒤집어씌우고 싶다. 솔직히 아사리판 더듬이당 내의, 그나마 비교적 인간다운 자로 보아왔었다. 그런데 저 행태는 어디서 나온 가당치도 않은 만행(蠻行)적 자신감일까? 아니 오만(傲慢)함인가? 하긴 어디 이 자 뿐이겠는가? 하다못해 보수라고 자칭하는 시사 패널들도 윤석열의 약점을 검사 질밖에 모른다며 말장난을 한다.

 

잘 들어라!

 

유비라는 인물은 할 수 있는 게 돗자리 짜고 짚신 만들어 파는 것 외에 특출 나게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그러나 관우와 장비라는 인물과 의형제를 맺고 세상으로 나갔고 다시 제갈량이라는 재사(才士)를 얻고 세상을 경륜(經綸)하며 촉(蜀)나라를 건국했다.

 

멀리 갈 것도 없다. 반만 년을 초근목피(草根木皮)와 피죽으로 간신히 연명해 온 이 땅의 사람들에게 오늘의 대한민국으로 초석을 다진 박정희 대통령은 군인에 불과했다. 군인이란 어떤 존재인가? 수년 전 EBS의 인기강사 계집년 말을 빌리면 사람 죽이는 방법을 가르치는 집단이라고 하지 않던가? 맞다. 군인은 총 쏘고 싸움하고 사람 죽이는 집단이다. 그럼에도 그는 이 나라를 부국강병의 나라로 초석을 다졌다.

 

아무리 총을 잘 쏘고 사람을 잘 죽여도 혼자 세상을 다루지는 못한다. 그 분은 총 쏠 줄 밖에 모르는 대신 자신이 할 줄 모르는 분야의, 경제를 외교를 잘 다루는 뛰어난 인사를 유비가 제갈량을 삼고초려(三顧草廬)하듯 인재를 발굴하고 등용하여 오늘을 이루게 한 것이다. 아니한 말로 찾기로 한다면 인재는 길 바닥에 굴러다니는 돌멩이만큼 많다. 하다못해 영어 좀 씨부리고 통역만 잘해도 외교부장관이 되는 나라가 아니더냐? 남들보다 부동산 투기만 잘해도 장관이 되고 국회의원이 되는 나라가 아니던가. 그 정도로 인재가 넘치는 나라다.

 

그리고 다시 한 번 생각을 해 봐라! 전쟁이 일어나면 장군 그것도 4성 장군이 직접 총을 들고 싸우더냐? 물론 아주 드물게는 간혹 그런 경우가 있다. 그러나 그 부대는 전멸을 눈앞에 두고 옥쇄(玉碎)할 때다.

 

그래서 하는 얘기다. 도대체 저 시건방지고 오만한 박용진과 그 아류의 행태는 무엇인가? 차라리 윤석열이 정치를 못 할 것이라는 아가리를 놀리는 박용진과 그 아류들과 나를 한 시간만 붙여 주었으면 한다. 아주 저 따위 아갈머리를 놀리지 못하도록 호통을 쳐 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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