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골일기: 봄봄 그리고 화해

머이래? 이거? 봄이 왜 이러냐 이거다. 춘래불사춘(春來不似春)이라더만, 남녘에는 봄이 흐드러지다 못해 거의 삭아가는 모양이고 이곳 천등산자락보다 위도 상 훨씬 윗동네인 서울도 벚꽃 축제가 시작 될 모양인데….이곳은 아직 감감무소식이다. 작년 이맘쯤에는 일주일 내내 강풍이 불고 마치 초겨울만큼이나 을씨년스런 날씨의 연속이었다. 하긴 매년 이맘쯤 이곳은 봄이 아직 멀다.

 

 

얼마 전엔 약간의 강풍이 동반했지만 개울건너 이PD와 바깥에서 막걸리 한 잔 할 정도로 따사로웠는데,,,,잠결 속 눈앞에 큰불덩이가 번쩍이며 천등산이 쪼개지며 무너지는 소리에 잠을 깼다. 번개를 동반한 천둥소리가 어찌나 큰지 그 강렬한 빛과 소리에 잠을 깼다. 아무리 어두운 밤이라도 이런저런 전자기기의 희미한 불빛 때문에 명암 구분할 정도는 되는데 말 그대로 암흑이다. 전기가 나갔나? 아! 아까 벼락 치는 소리가?? 음, 집히는 데가 있다. 심봉사 눈뜨기 전 딸내미 얼굴 더듬듯 벽을 더듬고 어찌어찌 현관으로 가서 자동으로 떨어진 스위치를 올리고야 얼마간의 빛을 구경한다. 그런데 시방 이 시각 봄비 치고는 억수 같은 비가 지랄 맞게도 쏟아진다.

 

억수 같은 봄비 소리를 들으며 오랜 만에 써 보는‘산골일기’의 부제를‘봄봄’으로 한 것은 김유정의 단편소설‘봄봄’이 생각나서다. 지금 이곳이 그렇다. 점순이가 크면 혼례를 시켜준다는 예비 장인의 말만 믿고 노동착취를 당해도 꾹꾹 눌러 참으며 점순이(키)자라기만 바라는 주인공의 심정이 되어 봄을 기다려보지만 봄이 왜 이다지 느려터지기만 한지….

 

몇 년 전 이맘때든가? 글벗님들과 누추한 이곳에서 모임을 가졌을 때, 그 밤 개울건너이PD의 구성진 섹스폰 연주에 맞추어 그의 아내(전직 진짜 유명가수)가 열창하던 노래 가사 중에“왜~에!? 이다지…안 오시는지..?”하는 대목에서‘xx님’의“올 때 대먼 오겄제!?”하는 대거리는 아직도 나와 아내에게는 유쾌한 농담으로 주고받는 명대사다. 그래! 아무리 날씨가 지랄 맞아도 봄이 올 때 되면 오것제? 그라네라???

 

그날 이PD와 막걸리를 하면서 한 가지 숙제를 풀었다. 사실‘이 반장 형님’과‘이PD네’가 몇 푼 안 되는 거름 값 때문에 설왕설래 하다가 소원해진 것은 지난2월 초였다. 나야 누구 편을 들지 못하고 엉거주춤하는 시간에 두어 달 지났다. 서로 자기들 주장이 강하니 어쩌겠는가. 이PD와 막걸리를 마시는 가운데 강풍이 몰아치며 거름포대 한 덩어리가 굴러 개울에 떨어지는 게 목격된다. 뒤이어‘이 반장 형님’이 개울로 내려가 그놈을 집어 들고 올라오는 모습이 보인다.‘옳거니..!’이PD의 의사를 물어보고 말고도 없다. 냉큼 달려가‘이 반장’의 손목을 잡아끌었다. “형님! 이리로 오쇼!”그러나 완강하게 버티며“아 !놔! 싫어!”,“아따! 왜 이러쇼!? 이러지 말고 두 분 화해하쇼!”저만큼에서 파리 잡아먹은 두꺼비처럼 눈만 껌뻑이는‘이PD’에게도“아따! 그렇게 서 있지만 말고 이리로 오셔!”아무튼 뭐, 그렇게 해서 두 사람 손을 맞잡게 했다. 누구 말을 들어야 할지 전전긍긍했는데 잘 됐다. 코로나 제약도 풀렸고 오늘 저녁엔 삼겹살이라도 몇 근 사다가 우리 집에서 저녁을 먹을 계획이다. 며칠 전 화해를 했다고는 하지만 눈치가 둘 사이는 아직도 서먹한 것 같다. 봄이 무르익기 전 둘 사이를 원만하게 해 두어야 나도 마음이 편할 것 같다.

 

그런데 그저께는 정말 큰 일 날 뻔 했다. 거실에 앉아있는데 천지가 무너지는 소리가 들린다. 집이 무너지는 줄 알았다. 그러나 집은 아무 이상이 없다. 그런데 뭘까? 도대체 왜 천지가 무너지는 소리가 들렸을까? 어!? 2층 쪽을 바라보니 하늘이 훤하게 보인다. 이런! 이런! 2층 발코니의 지붕이 날아간 것이다. 집 뒤 남의 밭으로…집이 안 날라 간 게 다행이다. 헐!^.^;;;

 

천등산자락에 화해무드가 조성되듯 이긴 쪽이나 진 쪽이나 서로 좋은 게 좋다고 화해(?)를 했으면 좋겠다. 누가 이기고 지고 간에 이젠 정말 지겹고 짜증난다.‘봄봄’의 나(주인공)는 또 한 번 장인의 말을 믿어 보기로 하고 노동착취의 현장(요즘 농사꺼리가 잔뜩 하다. 장인 대신 마누라가 빡세게 돌린다.)으로 간다. 그래! 그런 심정으로 한 번 더 속아보자. 머잖아 봄날이 오듯 이 나라 정가에도 봄이 올 때 되면 오것제????

 

바람이 불거나 말거나 발코니의 지붕이 날아 갔거나말거나 화단에는 지난번’xx님’께서 보내주신’복수초’가 함초롬이 피었다. 진정 머잖아 천등산 자락에도 봄은 오것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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