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골일기: 행복과 죽음

양쪽 어금니가 하나 씩 없다. 지금도 그런지 모르겠지만,,,논산훈련소 입소를 하며 정밀(?)신체검사를 하는데 양쪽어금니에 충치가 있다며 소위 봉을 해주며 보름을‘치과소대’에 편입을 시킨다.(보름 동안 다 나아서 정식군인이 되라는 의미다. 그 기간 동안은 복무로 안 친다. 또 그때는‘제대특명’이라는 게 있어서 군번 순대로 자르기 때문에 운이 좋으면 보름 또는 일주일 빨리 제대(36개월 기준으로)하지만 운이 나쁘면 그 반대로 그만큼 더 군인으로 남아 있어야 한다. 그래서 나는36개월이 아니라 36개월하고도 20여 일을 더 국방의 의무를 다 했지만 단 한 번도 불만을 가진 적이 없었다.)아이고! 어금니 얘기하다가…어금니가 영어로’molar(몰라)’라던데 참, 나도…왜 이러는 몰라!!-.-;;;

 

그런데 그 잘난 치과소대, 복무기간에 포함도 안 되는 치과소대의 이빨치료가 잘못 되었는지 군대 가기 전까지는 멀쩡하던(?)이빨이, 자대에 배치 된 이후로 쑤시고 붓고 한마디로 치통이 시작되는데 말을 안 해서 그렇지 좀 보태면 거의 사경을 헤매다시피 했던 것이다. 그렇다고 함부로 아프니 병원을 보내 달랄 수도 또 그러고 싶지도 않았다. 정말 아픈 날은 의무대에 가서‘APC(만병통치약)’몇 알 얻어먹고 참았다. 그런데 그놈도 내성이 생겼는지 한두 알이 대여섯 알로 심지어 열 알 이상을 먹어야 통증이 잠시 가라앉곤 했었다. 그렇게 참아가며 군문을 마쳤다. 그리고 얼마 뒤(제대하고…)또 치통이 시작되어 결국 그 말썽 많은 양쪽의 어금니 한 개씩을 뽑아 버린 후 여태까지 그냥 살아 온 것이다.

 

사실 발치(拔齒)라는 게 그렇다. 심하게 아플 땐 당장이라도 병원엘 가서 이빨을 뽑아버려야지,,,,하지만 그 통증을 안고 병원엘 가면 열이 있다고 열 내리면 오라며 응급처치를 해 주는 바람에 통증이 가라앉으면 지낼 만 하니 병원 가기를 주저하고. 그렇게 지금까지 지내오다 보니 양쪽어금니가 없는 것이다.

 

오징어 그것도 건오징어를 무척 좋아한다. 옛날엔 집 앞 구멍가게 오징어는 거의 내가 사다 먹는다고 보면 좋다. 물론 소주안주로 말이다. 거의 매일 한 마리 씩 먹었다. 그 어떤 진수성찬이나 고급안주보다 마른오징어가 좋았다. 장가가기 전 그 구멍가게 아주머니는 내게 그런 얘기까지 했다.“총각!(속초든가? 강릉이든가?)오징어 잡이 배 선장 딸이 있는데 그 쪽으로 장가가지 않을래?”내가 얼마나 오징어를 좋아하는지…오죽했으면….

 

종합검진을 받는 어느 해 치과검진에서 그런 얘기가 나왔다. 어금니가 없는 것 치고는 치아가 튼튼하다고. 튼튼한 치아를 유지하는 방법이 달리 있는 게 아니라, 애당초 충치가 생긴 것은 양치를 제대로 하지 않아 그랬다고 생각한 나머지, 난 지금도 양치질을 삼시세끼 그리고 잠자리 들기 전5분씩 혓바닥 잇몸 심지어 목젖가까이 닦아댄다. 그것도 한 번이 아니라 꼭 두 번씩. 그래서 나는 한 달에 칫솔이 최소한 두 개 이상필요하다. 이렇게까지 양치를 하는 것은, 이젠 내게 의식이고 굳어버린 생활습관이다.

 

그때 물었다 .내게 어금니가 없는 것 치고는 치아가 튼튼하다고 한 치아 담당선생에게“임플란트를 하는 게 좋지 않겠느냐?”그랬더니 그 선생 내 나이를 묻더니“웬만하면 그냥사세요.”란다. 꾸민 얘기가 아니라 얼마 전 김포사돈어른 블로그에 갔더니 그런 말 비슷하게 하는 의사가 있었다는 글을 보았다. 어찌하다보니 쓸데없는 썰을 잔뜩 풀었다. 이제 본론으로 들어가야겠다. 허~걱! 여태 장썰을 풀고 이제야 본론이라니….때론 어떤 사안이나 화제를 설명 하려면 서론이 더 길어지는 경우가 있다. 암튼…

 

당신은 행복하십니까? 글쎄다. 행복의 기준이 어딘지 모르겠지만, 며칠 전 마누라가 겉절이 김치를 만들었는데, 묵은 김치만 먹다가 겉절이를 먹으니 그 맛이 일품(네 입맛에…)이다. 그 걸 먹으며“자기야! 나 지금 행복해!”라는 말이 저절로 튀어나왔다. 뿐인가? 어제는 캐나다 몬트리얼의 쌍둥이와 또 밴쿠버의 큰손녀 은비와도 통화를 했다. 요즘은 공짜로 화상통화를 하곤 한다. 옆에 있는 것 같이 좋다. 단답형의 대화(?)를 나누며 눈물이 날 정도로 웃으며 행복한 순간을 보냈다. 그런 즉 누가 내게“당신은 행복하십니까?”라고 묻는다면 분명한 어조로“네, 그렇습니다.”라고 답 할 것이다.

 

사실 행복은 고사하고 죽음에 대한 공포와 함께 정말 두려웠던 적이 있었다. 행복해서 죽기 싫고 두려웠다는 것보다는…사업을 몽땅 말아먹고 정말 죽고 싶었지만 남겨진 가족들 생각에 그럴 수 없었다. 그리고 중국으로 갔고. 처음 한두 해 생각했던 만큼 정착이 되지 않았다. 그런데 늘 초조하고, 그래서 그랬던지 저녁만 되면 오른쪽 가슴에 동통이 오고 호흡이 곤란하다. 그런 고통 속에 생각하기를“지금 자다가 죽으면 어떡하지?”였다. 사업이 안정되지 않은 상태라 홀아비 생활이었다. 그런데 중국의 가옥구조가 도난방지를 위한 자물쇠 장치가 보통이 아니다. 현관문이 항상2중에 다 그 문 마다 다시 잠금장치가3-4개다. 또 아파트는 방범용 창이 삼엄하게 설치되었다. 이런 난공불락(?)의 철장 속에서 갑자기 죽으면 아무도 문을 따고 들어오지 못할 것이고 출근 않는 나를 두고 직원들은 갑자기 한국을 들어갔나? 그리고 며칠 뒤 아무래도 이상하여 경찰을 부르고 문을 따고 들어와 본즉 백골만 남았다는…그런 상상 때문에 살기위해 왼 주먹으로 가슴을 치고 가쁜 숨을 몰아쉬며 어찌 잠이 들어 아침에 깨어나면 또 거짓말처럼 말짱했다. 그러기를 몇 해….사업이 안정이 되고 그런 증세가 없어 진 것이다. 마음의 병이었던가? 어쨌든 20여 년 전의 증세였다.

 

그런데 그 증세가 수년 전부터 도지기 시작했다. 가끔씩 오른쪽 가슴에 동통이 오며 찌릿찌릿 전기도 오르고 무엇보다 들숨이 시원치 않고 가슴이 답답하다. 그렇게 며칠 하다가 또 바쁘게 살다보면 잊어버리고 증세를 못 느낀다. 병원을 가야지…하다가 증세를 못 느끼니 또 잊어버린다. 작년 초겨울 그런 증세가 좀 심했다. 제천의 某종합병원에 가서 이런저런 촬영을 하고…오른쪽 가슴에 나 자신도 모르게 결핵이 왔다가 사라진 흔적이 있고 약1cm의 종양이 있는데 암 같지는 않고…몇 개월 더 지켜보자며 4월에 보자는 것이다. 그런데 그냥 까맣게 잊고 있었다. 수시로 나타나는 증세가 있지만 그러다 말고 또 그러다 말고. 치과병원에 발치하러 갔을 때의 얘기가 그래서 나온 거다. 몸이 계속 불편하면 병원엘 갔겠지만 그러다 말고 하니 그냥 방치하게 되는 거다.

 

정확하게는 열흘 전부터 그 증세가 아주 심하게 나타난다. 금방이라도 숨이 막힐 것 같은 그런 증세. 마누라 보기가 미안하다. 겉은 멀쩡한데 숨이 자꾸 가쁘다니…이런 증세를 누군가에 얘기하면‘누구나 나이가 들면 그런 증세가 있다’며 남 얘기로 치부한다. 하긴 지 얘기가 아니니 그럴게다. 그제는 도저히 참을 수없어‘진이 엄마!나 엄살 아니야! 숨을 못 쉬겠어!’부랴사랴 서울대학병원에 특진을 예약하고 그 길로 서울 집에 며칠 묵었던 것이다.

 

 

폐, 식도, 후두, 코 등 기왕 하는 거 천식검사까지 해 두었다. 아무튼 아무 일 없어야 할 텐데…벌써 죽기는 싫다. 살만큼 살았으니…하는 거짓말 하고 싶지 않다. 생에 대한 애착이아니라 지금 행복하니까. 이 행복을 좀 더 향유하고 만끽하고 싶기 때문이다. 속으로 중얼거린“쌍둥이와 예솔이가 시집갈 때까지”살고 싶다. 1차 결과는13일 밝혀진다. 그 어떤 질환이라도 이겨 낼 것 같은 기분이다. 위암도 담낭암도 이겨냈는데 까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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