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골일기: 검은 머리 짐승과의 물싸움(끝)

이번 산골일기를 써 내려가는 동안 개인적으로 약간의 불상사가 있었다. 지금 이 순간에도 마음이 몹시 아프다. 살아 있을 때 좀 더 잘 해 줄걸….휑하니 빈 집을 볼 때마다 가슴이 미어진다. 도대체 어쩌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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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제 밤부터 어제 하루 종일 무서울 정도로 비가 내렸다. 재작년 전국적으로 수해를 입었을 때 이곳 제천도 가장 크고 많은 수해를 입어 특별재난지역 1호로 선포 받았던 곳이다. 우리 집도 위채는 산사태로 토사가 밀려와 25t 덤프로 20여 차 걷어 냈고 아래채는 침수가 되어 헐어버리려 하다가 작년 가을에야 보수를 하여 세를 주고 있다. 그 때 정부로부터 200만원의 수해의연금을 받기까지 했다. 이와 관련된 얘기는 다음 기회가 있을 때 하기로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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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튼 그제 밤새 내리던 소나기 때문에 잠을 제대로 이룰 수 없었다. 혹시 2년 전의 그 악몽이 되살아나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그도 그럴 것이 저녁 열 시쯤 작은 딸아이로부터 전화가 왔다.(캐나다 몬트리얼에 사는 딸아이와 쌍둥이 손녀는 방학 2달 동안 이곳에서 보내기로 하고 귀국해 있다.)‘지금 종로 특히 평창동 일대에 폭우가 쏟아지고 있다는 뉴스와 함께 베란다에서 물이 새 들어온다는 급보(?)를 전해 온 것과 관리실에 연락해서 조치를 하라고 전언한 것 그리고 두어 시간 후 괜찮아 졌다는 전갈. 2년 만에 귀국하여 좀 쉬려고 했더니 고생만 시킨 거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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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쨌든 불상사만 있었던 건 아니다. 과유불급이기는 하지만 비가 충분히 내려주어 당분간 물 때문에 문쌤과 싸울 일은 없기 때문이다.(사실 이번 비로 옥수수 3분의1은 넘어갔다.)아이고! 이런! 일기를 쓰다가 엄한 얘기만 잔뜩 했다. 어쨌든 각설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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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래방 반주기에 대한민국 최고의 섹소폰 연주자인 이PD의 연주도 곁들인 친목회 겸 연주회도 가졌는데…..술이 두어 순배 돌았을까? 주위를 둘러보니 문쌤이 안 보이는 것이다. 그 순간 아차! 싶었다. 술이 덜 취했기 망정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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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그 일이 있고 난 후 시간여 뒤 문쌤 사모가 날 찾아 왔었다.“큰형님(그 중 내가 가장 연장자에다가 문쌤 입장에서 가장 연소한 관계로 나를 지칭할 땐‘큰형님’이러고 칭한다)과 그러고 난 후 아무 일도 않고 점심도 안 먹고 방에만 들어 앉아 있어요.”,“뭐요!? 뭘 잘했다고 밥도 안 먹고 지가 왜 뿔을 낸대요? 도대체 저리 소심해서 학생들은 어째 가르친 답니까?”, “그러게 말예요. 애 아빠가 마음이 여리긴 여려요.”,“가셔서 전하세요! 난 이미 다 잊어먹었다고. 사내들끼리 큰 소리 칠 수도 있는 거지…뭐 그런 걸 가지고..ㅉㅉㅉ..”그리고 이어서 말했다“오늘 저녁 6시에 삼겹살 파티가 있으니 두 분 손잡고 꼭 오세요. 약속한 겁니다.”라며 일방적으로 밀어 붙이자 문쌤(난 계수씨라고 하지만..)사모는“네에~!”라며 마치 열여섯 수줍은 아가씨처럼 기어드는 목소리로 대답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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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랬던 문쌤이 보이질 않으니,.. 물론 첨엔 서로 모르는 이웃끼리 얼굴 소개도 하고 서로 악수하며 수인사를 나누는 소란 통에 문쌤을 의식하지 못하고 술이 몇 순배 돈 것이다. 그런 연후에야 문쌤이 생각나 전화를 했지만 여리 디 여린 문쌤은 대답만 하고 오질 않는다. 한 30분이 지나도 놈이 나타나지 않기에 은근짜로 성질이 오른다. ‘큰형님이 오라면 못 이기는 채 오면 될 것을 그것도 체면이라고 버틴다고?’문쌤 집으로 갔다. 역시 생각대로 풀이 죽어 있다. 그를 보자마자“이 사람이…다신 나 안 볼래? 낮에 일은 낮에 일이고..내가 풀자고 초청을 했으면 못 이기는 채 와야지 요따우로 버티면 체면 올라가냐? 글고 교직생활 40년을 자랑하는 친구가 이런 식으로 학생들 지도했냐? 제자 놈들 한심한 선생한테 배웠으니 안 봐도 비됴다 비됴…빨리 안 나와!? 씨팔!”그런 난동(?)을 부리는 문쌤 사모는 안절부절 못하기에“계수씨도 빨리 나오씨욧!”라며 개구스럽게 불어내어 함께 삼겹살 파티 장소로 데리고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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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그날 낮에 있었던 소란한 일을 아는 이는 명연주자 이PD 내외뿐이었다. 다시 나는 새로 이주해 오는 이들에게 문쌤 내외를 소개하고 그날 저녁은 그렇게 무사히 즐거운 파티를 가졌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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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날 일요일 오후 문쌤이 올라가며 전화를 했다“형님! 물 마음대로 쓰세요. 물이 제법 잘 나옵니다. 그리고 형님이 물을 안 쓰시면 제 마음이 불편합니다. 용서하시고 꼭…”라고 말했지만 호스를 연결시키지는 않았다. 그렇게 한 주를 보냈고 그 사이 물싸움을 한 내용을 잘 아는 이PD가 200여m 고압호스(도로상에 차가 다녀도 괜찮은…)로 자신의 지하수를 공급해 주었던 관계로 오히려 물 공급이 더 원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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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해 보면 누구의 잘못도 아니다. 농사꾼은 세상에서 제일 행복할 때가 제 논에 물들어 가는 것과 자식들 입에 밥 들어 갈 때라고 하지 않든가. 역지사지라고 너와 문쌤의 입장이 바뀌었다면 나라고 그러지 않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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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누라와 그랬다. 관개시설을 따로 하고, 과부하가 걸리고, 모터가 타고, 지하수가 잘 안 나오고…누구의 잘못이 아니다. 봄 가뭄 때문이라고 결론을 내렸다. 그런 사이 가뭄을 해갈하는 장맛비가 내렸으니 지하수도 많이 고였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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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토요일, 아니 아! 오늘이다. 이 썰을 풀며 문쌤 쪽을 바라보니 아직 안 내려왔다.(내 서재에서 바라보면 문쌤 마당과 주차한 모습이 보인다.)좀 있다 문쌤이 내려오면“야! 문쌤! 나 이제 물 좀 써도 되냐?”그리고 보는 앞에서 호스를 연결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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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필로그:

 

1)

이번 일기 다 쓰고 나니 제목이 크게 잘못 됐다. 얼마나 오만한 제목인가. 무슨 큰 덕을 주고 입혔다고“검은 머리 짐승”씩이나….그러나 처음 이 썰을 풀 당시의 심정은 졸라 화가나 있었음을 솔직히 고백한다. 이 점 독자 제위께서 해량해 주시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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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한 달 가까이 지하수 공급 수도 가에 안 갔더니 방초만 푸르고, 잘려진 호스는 그 아래 널브러져 있다. 오늘 일부러라도 꼭 연결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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