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못 된 농정(農政)과 양곡법 반대에 대한 소고(小考)

어제저녁 식사 때이다. 직접 재배한 빛이 날 정도로 신선한 푸성귀로 쌈밥을 먹으며 아내와 이곳 생활에 대해(늘 그러하지만 대개는 긍정적인 것들…아마도 우리 집 비닐하우스 안의 작물들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을 때이다)도란도란 대화를 나누다가 어느 부분에 이르러 불쾌하다 못해 화가 치미는 얘기를 아내로부터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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낮에 어떤 방송인가를 잠시 시청했는데, 며칠 전 장마 같지 않은 그것도 장마라고 그 정도의 장맛비에 어떤 농가의 비닐하우스 재배 수박이 침수를 당하는 피해를 입은 모양이다. 얘긴 즉 수확(출하)을 며칠 앞두고 그런 피해를 당했으니 오죽이나 가슴 아프고 억장이 무너져 내리겠는가. 역지사지로 만약 내가 그런 경우를 당했다면 나 역시 그 농가의 심정이 됐거나 아니면 더 속상하고 억장이 무너져 내렸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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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문제는 아내가 전해 주는 그 농가의 호소(?)가 나로 하여 불쾌하고 울화가 치미는 것이었다. 수박 수확을 하면 대충2천만 원의 수익을 올린다는 것이다. 그 중반인 천만 원은 농약 및 인건비 등으로 지출되고, 남은 천만 원으로1년의 생계를 꾸려간다는 것이었다. 그런데 며칠 전 그 장맛비로1년 농사를 망쳤고 그 피해를 지방정부에 호소를 했더니 예산이 없으니 중앙정부에 호소하라는 것이었다. 어쨌든 그래서 그랬던지 어떤TV방송국(지방지국이 아니었을까?)이 친절하게 그 농가와 인터뷰하는 장면을 내 보냈던 모양이고 아내가 그 장면을 시청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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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사(農事)또는 농업(農業),이 또한 분명 개인의 사업(事業)이다. 이젠 농업도 단순한(?)농업이 아니라 경영시대 즉 영농인(營農人)이라며 전문직 호칭을 붙이는 세상이다. 그런데 세상 어느 나라가 개인 사업이 천재지변으로 망했다고 피해보상을 하는가. 가령 누군가가 영세업체 또는 가내수공업을 어떤 도시에서 꾸려나가다가 장맛비로 몽땅 쓸려 가고 침수피해를 입었다며 정부(중앙, 지방을 망라한…)에다 대고 당당히 피해보상을 요구하거나 호소할 수 있단 말인가? 그런데 근간에 이런 말도 안 되는 호소가 농촌에서는 빈번하며 그게 또 통하는 모양이다. 심지어 항간에‘나랏돈은 눈 먼 돈이고 먼저 채가는 놈이 임자’라는 식의 자조적 풍문이 나돌고 있는 세상이다. 이런 사회적 병리현상 때문에 지방재정은 피폐하고 결국 중앙정부에 까지 그 영향이 미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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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부터인가 농촌에 사는 것은 선(善)이고 도시에 사는 사람은 무슨 죄라도 진 듯 한 느낌을 주는 사회로 변모한 것이다. 도시의 영세사업자는 장마피해를 입어도 어디 호소할 데도 없는데 영농(營農)사업자는 1년 사업을 망쳤다며 당당히 피해보상을 요구할 수 있는 근거는 어디에서 나온 것일까? 이거 한마디로 정말 잘못 된 농가행정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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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업 경영체’라는 게 있다.(본인도 불과 며칠 전 신청을 하고 인증을 받았다)이 제도가 생긴 게 언제부터인지는 모르겠다. 다만 최근에야 알았다. 일정 부분의 농토를 가지고 있고, 그 곳에서 농사를 짓는 것만 확인(농정당국에서 실사를 나온다)이 되면‘농업경영체’라는 인증 즉 영농(營農)인증을 받게 된다. 일종의 개인사업자등록과 유사한 제도이며 그 혜택이 보통이 아니다. 모든 농자재 또는 화학비료, 전기 영농에 필요한 기름, 의약보험 등 등등…모두 반 값 이하로 공급 받을 수 있다. 심지어 부가세 까지 환급이 된다. 물론 이 제도를 알기 전까지도 명의를 가진(영농조합원)사람 이름으로 반 값 혜택을 받아 오긴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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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촌 3년, 주위를 둘러보니 마음먹고 영농을 하겠다는 결심만 선다면 농촌은 천국이다. 단 땀 흘림을 두려워 말고 몸 고달픔을 괴로워 않겠다는 스스로의 다짐에 충실할 수만 있다면 말이다. 지난 날 도농(都農)의 차이나 괴리는 한마디로 빈부라는 극명한 단어로 구분이 되었다. 잘사는 도시 못사는 농촌, 잘 살려면 무조건 도시로 가야하고 그마저도 할 수 없는 사람들은 농촌에 남아 보릿고개를 힘들게 넘으며 살아왔던 것은 맞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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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이젠 세상이 변했다. 변한 세상만큼 농정(農政)도 바뀌어야 할 것이다. 도시인, 도시의 사업자가 죄인이 아니라면 영농인 만의 특혜도 줄이는 정책이 수립되어야 할 것이다. 개개인의 삶이나 사업을 언제까지 지방정부나 나라에 의존할 것이며 또 그런 호소를 언제까지 들어 줄 것인가. 도대체 왜 그래야 하는가? 정말 알다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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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망국적 제도는 단언컨대 위정자들의 얄팍한 票심 때문일 것이다. 선거철만 되면 농가부채탕감에 이런저런 시혜의 공약들이 쏟아진다. 국고가 마르고 국가의 채무가 늘어나는 표심을 의식한 선심성 농가행정을 이제라도 지양해야 할 것이다. 아무리 부국이라도 농가 개개인의 천재지변까지 책임질 수는 없다. 천재지변으로 꼭 도움이 필요하고 그렇게 해야 한다면 이웃끼리 십시일반 하는 도움의 손길을 호소하는 정책을 지방 스스로 수립하여 피해농가가 자립 갱생할 수 있도록 하는 방법도 있을 것이다. 잘못된 농정(農政)바로 잡을 때 됐다. 농촌사람들 들으면 성질낼 소리지만 아닌 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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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S8000 ON 6. 26, 2013(산골일기: 잘못 된 농정(農政)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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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의 이야기가 벌써 10년 전의 이야기다. 10년이 넘었지만 아직도 이 나라의 농정은 조금도 변한 게 없다 아니 오히려 그 놈의 형편무인지경의 농정을 빌미삼아 票퓰리즘떼거지를 쓰고 있다. 이런 떼거지는 모든 빨갱이 정권의 票퓰리즘이 그 원인이다. 이 나라 최초의 농정 票퓰리즘은 토요타 윤대중이 2001년 초 농가부채특별법을 제정하여 농심에게 票퓰리즘을 생색낸 것이 그 효시였고 특히 빨갱이 정권이 들어설 때마다 마치 전가의 보도처럼 아니면 조자룡 헌칼 쓰듯 해 온 빨갱이들의 전유물이 되었다. 즉 오늘날 빨갱이들이 발안한‘양곡관리법’의 모태요 전신이 바로 토요타가 제갈대중이 창안한‘농가부채특별법’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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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진지하게 생각해 보자. 이 땅의 쌀농사는 어디가 가장 많이 생산 될까? “만경평야”를 아시는가? 만경평야는 만경강 유역인 전라북도 김제시·군산시·익산시·완주군에 걸쳐 펼쳐진 평야이다. 만경평야와 동진강 유역의 김제평야를 합쳐 호남평야라고 부르기도 한다. 호남평야는 우리나라에서 유일하게 지평선을 볼 수 있는 대평원이다. 막힘없이 시원하게 펼쳐진 평원은 초여름에는 초록빛 가득한 대초원이 되고, 가을이면 거대한 황금물결이 출렁이는 장관을 연출한다. 이른바 한반도 최대의 평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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尹 “양곡법은 포퓰리즘”…野 “이재명 1호 법안이라 반대하나”

https://www.joongang.co.kr/article/25152692

 

맞다. 정확한 표현으로“양곡법은 포퓰리즘”법이다. 위 글에서도 적시했지만 한반도에서 가장 너른 호남평야에서 남아도는 쌀 생산이 반 이상(조사해 본 바는 없지만..)60~70% 이상 될 것이다. 결국 호남인을 위한 법이 아닐 수 없다. 이번 대통령의 양곡법 반대를 빌미하여 대가리 깎은 년놈들이 전라도 국회의원은 아닌지 의심스럽다. 그래서 나는 某일간지의 기사에 댓글 달기를….

 

대통령님! 정말 잘 하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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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위’양곡법’은 절라도(쌀)에 절라도(쌀)의 절라도(쌀)를 위한 절라도(쌀) 票심 법입니다.

오늘날은 쌀이 남아도는데도 졸라도 곡창지대(특히 만경평야)에서는 쌀 생산만 고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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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냐 빨갱이들이“절라도(쌀)에 절라도(쌀)의 졸라도(쌀)를 위한 절라도(쌀)법”으로

절라도에 票퓰리즘을 펼치기 때문입니다.(하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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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왜 절라도 사람들 특히 호남평야 농군들이 쌀농사를 고집하는 것일까? 농사를 모르는 사람들은 농사가 천한 직업인 줄 알지만 오늘날의 농사는 과거와 같이 몸이 부셔져라 짓는 농사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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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날 농사기법(쌀)은 과학에 기반 되어 심지어 첨단기술까지 접목이 된 농법으로 변했다. 특히 쌀농사는 인간의 힘보다는 기계화 되어 모를 심는 것부터 수확까지 100% 인간(농부)의 힘으로 짓든 농사를 90% 기계가 대신해 준다. 그만큼 힘이 안 드는 것이다. 또 문제는 있다. 더구나 그 기계들이 벼농사 짓기에 알맞게 개선이 되고 발달이 되어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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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갑자기 다른 농작물을 생산하고 싶어도 이런저런 농법과 기계 또는 장비사용법이 두려울 수도 있을 것이다. 그기에 아무리 과잉생산이 되어도 빨갱이들은 전량수매를 해 준다며 票퓰리즘 작전을 고수하니 절라도 농가는 반대할 이유가 없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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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라도 농사꾼이나 절라도 票이를 의식한 국개색히들이나 이런 억지를 못 부리게 하려면 농지(畓)를 밭(田)으로 바꿀 수 있도록 제도적 장치를 만들어야 할 것이다. 물론 파격적(남아도는 쌀을 보관하기 위해 들어가는 경비를…)으로 지원해야 할 것이다. 한 때 농지변경을 위한 여러 방안들이 있었다. 보다 세밀한 계획을 세우고 절라도 쌀농사꾼들을 회유하는 방법을 모색해야 할 것이다. 그래야 빨갱이 색히들도 절라도 농사꾼들도 더 이상 생떼를 못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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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색히들!! 성질이나 욕이 절로 나오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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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호남평야 전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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