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골일기: 용서와 화해 그리고 양보(9부)

내년부터는 내가 이장을 하련다.

 

마을엔 매년 12월 하순 동짓날을 좌우하여 대동계가 열린다. 그리고 그날 마을의 모든 가구에서 5만 원씩 마을회비를 거둔다. 거두어들인 회비의 용도가 참 아리송하다. 그렇게 거두어들인 회비를 마을 임원이라는 감투를 쓴 자들끼리 나누어 갖는 것이다.

 

처음 이곳에 이주를 하고 다음 해에 마누라는 부녀회장직을 3~4년 하며 연말에 배당(?)되는 마누라 몫의 배당금을 몽땅 부녀회에 이체하여 이빨 빠진 그릇 등 마을회관 살림살이 집기 교체에 나섰고 심지어 매년 나와 마누라는 마을에 이런저런 명목의 금액을 많게는 백여만 원 아무리 적어도 50만 원 이상 희사를 해 주었었다. 마을의 임원이면 최소한 마을에 단 돈 한 푼이라도 보탬이되 주고 봉사를 하는 게 정상 아닐까? 꼭 마을의 발전을 위한 게 아니라도 주민들의 친선 도모를 위해 힘써야 할 것이다.

 

그럼에도 오히려 감투는 쓰고 마을 회의라고 1년 간 얼굴 한 번 안 들이민 임원이 명색만의 감투 값으로 배당금을 타 간다는 게 우리 부부는 애초에 싫었던 것이다. 마을 주민으로부터 회비를 받았으면 마을을 위해 쓰여 져야 하지만 감투 값으로 지급이 된다는 게 말이나 되는가? 그래서 마누라는 처음부터 감투 값에 반대를 해 오던 터였다. 더구나 지방자치제 이후 면인지 시인지 모르지만 마을의 이장들에게 매월40~50만 원을 지급한다면 마을을 위해 힘을 써야 함에도 자신의 직권을 이용하여 어떤 놈은 수천만의 재물을 희생해가며 청정마을 만들기에 공을 들이고 어떤 놈은 술 몇 잔 삼결삽 몇 점에 염소 사육을 끌어들이고 허가해 주도록 방치했다니 정말 화가 났던 것이다.

 

염소 부부가 그런 난동을 부리고 철수한 다음 우리 부부가 준비한 회를 먹을 때 우연인지 내 옆자리에 이장이 앉아 있다. 마침 술도 한 잔 들어갔고 이장에게 선언을 했다“자네 올까지만 이장하고 그만 하게. 내년부터는 내가 하던지 우리 집사람을 시킬 것이니 그리 알게”, 이 말은 진심이었다. 생각해 보면 10년 가까이 이장직에 있으며 주민을 위해 무엇하나 해 놓은 게 없다. 마을을 위한 이런저런 시설이나 아니면 면이나 시에서 농민을 위한 어떤 행사 한 건 만들어 오지 않았다. 그런 것들은 오히려 전임 이장이자 현 노인회장이 따오고 성사시켰던 것이다.

 

아무튼 이장은 나의 얘기를 어떻게 받아들였는지 모르지만, 분명한 것은 무능한 이장은 반드시 교체하려고 굳게 마음먹고 있다. 물론 나 자신이 이래라 저래라 할 처지는 아니지만 주민들의 동의를 90%는 끌어낼 자신은 있다.

 

그날 그렇게 야단법석을 일어나고 며칠 기회를 주었다. 염소 부부가 사과해 오기를 기다렸던 것이다. 그러나 내 바람과는 달리 염소 부부가 오히려 더욱 완강한 태도를 보이며 염소를 새로지은 축사에 풀어 놓겠다며 한통속 주민에게 통보를 했다는 소문이 들린다.

 

나는 그래도 저희를 떠나보내지 않으려고 주민들을 설득을 했는데… 주민들의 중론은 얘기 나온김에 당장 몰아내야 한다고 떠들었지만 그래서는 안 된다고 설득시키고 기다렸는데…

 

‘아~! 더 이상은 말이 안 통하는 부부구나. 더 이상 타협점을 찾을 수 없는 망나니들이구나‘라고 생각하고 어쩔 수 없이 시청의 담당 주무관에게 전화를 했던 것이다. 그리고 당신들이 현장 답사도 않고 책상머리에 붙어 앉아 서류심사만 하고 허가를 내 준 결과가 청정마을 입구에 염소축사가 생겼으니 당장 해결책을 내 놓으라며 호통을 쳤던 것이다.

 

과연 그랬을까? 그 호통이 효과가 있었던 것일까? 다음 날 주무관은 현장 답사를 나가겠다며 전화가 왔다. 그리고 하루가 지났는가 그랬다. 이장 부인이 면회를 요청하며 우리 집으로 왔다. 어쩌면 무능하고 못난 남편 이장을 대신해서 사절로 온 것이다. 굳이 회피할 이유도 없고 하여 집안으로 들게 했더니 이 일을 어찌했으면 좋겠느냐는 것이다.

 

이장 부인에게 그랬다.“자네 잘 들으시게. 내가 많은 걸 원하지 않네. 먼저 행패 부렸던 두 분 노인 회장님들께 사죄를 드리라고 하시게”그리고 차마 내게도 사과하라고 말을 전하지 않았다. 더하여 새로 지은 축사 가운데 부분을 투명창으로 만들어 주민들이 오가며 그 속내를 들여다볼 수 있도록만 한다면 더 이상 문제 삼지 않을 것이라고 얘기해 주었다. 그 순간 신명이 난 표정의 이장 부인을 보았다. 아마도 사절로 와서 교섭을 성공시켰다는 안도의 표정이었을 것이다.

 

이장 부인이 돌아가고 난 다음 생각해 보았다. 도대체 이장이라는 놈은 제가 할 일을 마누라에게 대행을 시키고 낯짝도 보이지 않으니 그저 술 한잔 삼겹살 한 점 얻어 처 먹는데만 혈안이 되었으니 마을의 발전은커녕 도태되고 지난날로 회귀하고 있으니 한심한 놈이라고 욕이 절로 나왔다. 하긴 어디 이장 뿐이겠는가? 염소네 집에 이따금 모여있던 그렇고 그런 놈들이 모두가 한통속인 게 틀림없다. 그리고 또 하루 이틀이 지났던가? -계속-

 

 

Leave a Reply

이메일은 공개되지 않습니다. 필수 입력창은 * 로 표시되어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