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디어 용서와 화해를 하다.
이장 부인이 그렇게 돌아가고 난 이틀 뒤 저녁 어스름할 때쯤 나는 거실에서‘넷플릭스’영화 한 편을 골라 보고 있는데, 밖에서 집안 정리를 하던 마누라가 다급히 뛰어 들어오며 손님이 오셨다며 나와 보라는 것이다. 보던 영화를 멈춤으로 해 놓고 현관 쪽으로 나가보니 염소 부부가“형님! 뵈러 왔습니다”라며 무조건 들이닥치는 것이었다.
생각하고 말고 경황(驚惶) 중이라‘어서 오시라’는 답도 하기 전 부부는 이미 거실로 무단 입실을 한 상태에서“형님! 저희가 잘못 했습니다. 저희가 생각이 짧았습니다.”라며 석고대죄라도 할 태세다.
애당초 그들이 내게 개인적으로 지은 죄도 아니고 또 어찌 보면 생존에 관한 일이었기에 문제가 이렇게 심각하게 확대되리라고는 생각도 못 하고 안 했던 것이다. 사실 그 이전에 그런 얘기는 들렸다. 어차피 염소 사육을 제대로 하려면 이런 좁은 공간에서 할 수도 없고 또 아무리 여자가 부지런하고 흥남 부두의 금순이 같이 굳세어도 혼자서는 그런 사업을 할 수 없어 남편이 트럭 사업을 그만두면 보다 깊은 골짜기에 장소를 마련하려고 땅을 알아보고 있다는 소문은 있었다.
그러나 그 땅을 매입하고 말고 하기 전 어느 날부터인가 정력 좋은 카사노바 수놈 염소가 모든 암컷들에게 자신의 씨앗을 사정없이 뿌려대는 바람에 기하급수적으로 늘어 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이 부분은 어디까지나 나의 유추다.)
그럴지라도 문제는 마을 주민들의 반향이었다. 남편이 아직 60 초반으로 젊디젊은데 은퇴의 그날이 언제이며 그런 계획이 있었다면 그 땅을 먼저 매입했어야 하는 것, 그리고 무엇보다 그런 혐오시설을 반입하며 주민들 의사를 들어봤어야 함에도 몇몇 사람이 작당하여 저질러진 일이라고 항변했던 것이었다.
이미 밝혔지만 처음 몇 마리에서 20마리 그리고 40마리 그리고 80마리로 널어나며 이전의 좁은 막사에서는 도저히 수용 불가. 따라서 이전 막사보다 큰 대형막사가 급조되는 것에 나와 주민들은 그동안 참고 참았던 분통이 활화산 되어 폭발되고 만 것이었다. 물론 염소 부부는 대형막사에는 절대 단 한 마리도 보내지 않겠다는 약속을 이장과 노인회장을 통해 내게 통보해 왔지만 내 주장이 또 달랐던 것은, 염소 사육을 주민 몰래 시작했고 그것으로 끝난다고 했지만 20마리 다시 40마리 이어서 80마리 빼도 박도 못할 4차례의 명백한 거짓 증거가 있음에 그 어떤 변명도 더 이상은 해서도 할 수 없음에도 무엇을 믿고 그런 난동을 부렸는지에 대한 모욕감과 분노였던 것이다.
거실로 진입한 두 사람은 무릎이라도 꿇을 태세다. 참.. 사람이 이토록 간사할 수가? 아니 나 자신이 말이다. 두 사람의 그런 태도에 그동안 꽁꽁 조이고 얼려 두었던 분노가 봄날의 아지랑이같이 흐물흐물 무너져 내리는 것이었다. 미움이고 분노고 내가 언제 이 부부에게 못할 짓을 했던가? 오히려 후회가 밀려왔다. 더구나 부부의 손에는 무언가 잔뜩 들려있다.
그래서 내용도 알아보기 전“나 이런 거 먹자고 한 짓 아니다. 이게 뭔지 모르나 이거는 받을 수 없다. 안 가져가면 우리 용서고 화해도 없다”짐짓 엄포 아닌 엄포를 놓았지만 두 부부는 막무가내로“형님과 화해 주 한 잔 하려고 고기 좀 사왔습니다.”란다. 정말 난처했지만 함께 먹자고 고깃근을 사왔으니 온전한 뇌물은 아니고 설령 뇌물 일지라고 공여자와 수뢰자가 함께 먹었으니 설마 고발까지야 않을 것이기에 마지못해 우리 거실에서 판을 벌이기 시작하고 보따리를 끌러보니“허걱~!”이라는 감탄사가 먼저 튀어나온다. 나로선 쉽게 접할 수 없는‘한우 꽃등심’이다. 아! 이놈을 먹어 본 지가 얼마이든가? 더하여 부부는 자신들이 마실 소주와 맥주까지…
아! 실수한 게 있었다. 오랜만에 보는 한우 꽃등심의 유혹에 두 분의 전임 노인회장님 생각을 못했던 것이다. 급히 물었다.“자네들이 행패 부린 노인회장님들은 어찌 되셨나? 사과는 드렸던가?”, “아이고~! 형님 걱정마십시오. 두 분에게도 똑같은 인사를드리고 사죄를 드렸습니다.”
그날 염소 부부와 우리 부부는 통음(痛飮)을 했고 그렇게 염소 사태를 일단락 짓는 것으로 쌍방 한우 꽃등심 앞에서 협약을 했던 것이다.
그날 내가 부부에게 다짐을 받았던 것은 첫째, 새로 지은 막사의 가운데를 투명창으로 바꿀 것. 둘째 적당한 날짜에 마을 주민들을 모시고 그날의 난동에 대한 사과를 할 것. 그렇게 약속을 다짐하며 그날 저녁 두 사람은 기분 좋게 물러 갔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