때론 필요악(必要惡)이 필요할 때도 있다.

 

.

제목을 만들고 보니 좀 거시기 하지만…

.

좀 전 어떤 시사프로를 보는 데“윤 대통령이 이준석을 끌어안을까?”라는 질문에 여야를 대표하는 패널 모두가 중구난방 식으로 평을 한다. 내 듣기엔 쓸 만한 얘기 하나도 없다. 결론부터 내리면 “반드시 끌어안아야 한다”

.

위연(魏延)이라는 인물이 있다. 자는 문장(文長)이며 의양(義陽:지금의 하남성 동백)사람이다. 원래는 형주목사 유표(劉表)의 부장(副將)이었으나 유비에게 귀순하였다. 용맹하고 싸움을 잘하여 여러 차례 혁혁한 공을 세웠다. 유비가 한중왕이라고 칭할 때 그를 한중태수로 삼았고, 유비가 황제가 된 후에도 여전히 한중을 지켰다. 제갈량이 한중에 진주하여 북벌을 준비할 때 전 감독으로 삼고 승상사마에 양주자사를 겸임토록 할 정도로 중용을 하였다. 뿐만 아니라 제갈량이 북벌을 하는 동안 언제나 선봉장으로 있었다.

 

문제는 위연이 태생적으로 반골기질 이었다. 제갈량은 그가 언젠가는 모반할 것이라는 것을 이미 알고 있었으나, 그의 무용이 출중함을 알고 항상 그를 지근거리에 두고 중용했던 것이다. 이는 그렇게 함으로서 제갈량 자신이 살아있는 한 그의 역심(逆心)을 잠재우겠다는 용의주도함을 보였고, 과연 그의 죽음에 이르러서야 위연이 모반을 못하도록 마대에게 금낭(錦囊)의 비책(秘策)을 주며 용도폐기를 했던 것이다.

 

결국 위연은 제갈량이 죽자마자 곧바로 반란을 일으켰으나 제갈량이 죽기 전 만들어 준 금낭비계에 의해 마대(馬岱)에게 죽임을 당했다. 그 해가 서가234년(단기2567년, 중국 촉 후주 건흥12년, 신라 조분왕5년, 고구려 동천왕8년, 백제 고이왕 원년)이다.

,

개인적 감정으로 본다면 있을 수도, 있어서도 안 되는 일이지만 정치적으로나 국가를 위해서 어떤 것이 유리한 것인지 곰곰이 생각해 볼 대목이다.

.

인요한이 내민 손 뿌리치는 이준석

https://www.chosun.com/politics/assembly/2023/11/02/523XFX7ZFVGBJNTBAZGQ7GEODI/

 

고사를 통해 본 위연은 제갈량과 촉나라 입장에서는 필요악(必要惡)이었던 것이다. 언젠가는 반란을 일으킬 것을 알고도 중용한 것은 어느 것이 나라(蜀)나 제갈량 자신에게 더 유리한가를 저울질 한 결과이다.

 

대선 당시로 돌아가 보자. 이준석 저 놈이 대선 당시에도 두 번씩이나 윤 후보를 엿 먹이고 심지어 가지고 놀기까지 했다. 다급한 윤 후보가 거의 무릎 꿇다시피 놈을 회유 하지 않았던가? 그 점이 곧 당시로서는 놈이 필요악이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지금 또한 그런 모양세가 된 것이다. 그래서‘썰’의 제목을“때론 필요악(必要惡)이 필요할 때도 있다.”라고 한 것이다.

 

제갈량은 필요악 위연을 자신이 죽기 전 더더욱 높은 자리로 이동시키며 중용했다. 인 ㅇ위원장이 돌아 볼 대목이다. 저 놈이“왜? 내민 손을 뿌리치는가?” 빈손이기 때문이다. 손바닥에“전국구 1번”이라 쓰고 내밀어야 한다. 놈은 오로지 출세지상주의자일 뿐 국가관도 애국심도 전무한 필요악이다. 목적 달성 후 저런 놈 제거는 언제고 여반장(如反掌)이다. 손에 미끼를 넣고 내밀어야 할 것이다.

 

 

 

Leave a Reply

이메일은 공개되지 않습니다. 필수 입력창은 * 로 표시되어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