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내답지 않은 사내들

마누라와는 76년 눈발이 휘날리는 11월21일에 결혼을 했다. 참 썰렁한 결혼식이었는데 눈까지 내렸으니 얼마나 추웠겠는가. 신혼여행을 창경원으로 갔다. 11월의 눈발이 분분(紛紛)하는 창경원의 모습을 대충 머리에 그려 넣어도 얼마나 을씨년스럽고 휑했을까. 몸도 추웠지만, 속(마음)은 더 추웠다.

 

집이 어디 서울에서 먼 지방이라도 그러할 진데, 창경궁의 정원인 비원 담장 너머 원서동과 맞붙은 가회동이 집이었다. 집에서 도보로10여분이면 돈화문(비원)에 도착할 수 있다. 정말 앞마당 같은 그런 곳으로 신혼여행(?)을 갔었다. 당시 창경원이 특별했던 것은 그곳에 동물원이 있었다는 것을 다들 기억하실 게다. 지금도 또렷이 기억되는 것은 동물구경을 하다가 마누라의 손을 꼭 잡고 다짐을 해주었다. “영숙아! 미안하다. 언제가 될지는 모르지만 내가 비행기 질리도록 태워줄게….”라고. 약20년 후, 그때부터 그 약속을 나는 충실히 지켰고, 마누라에게 세계20여 개국을 여권이 너덜거릴 정도로 비행기를 태워 주었다.

 

돌이켜보면, 어쨌든 한 여인을 사랑했다. 그녀를 놓치고 싶지 않았다. 그런 속에서 서둔 결혼이었기에 무엇 하나 제대로 바라고 원 할 수 있는 처지가 아니었다. 애? 딴 놈에게 뺐길 것 같았다. 보통의 결혼식은 혼수도 오가고 예식비용을 신랑신부 서로가 안분(安分)해서 치루지만, 우리 결혼식은 그런 게 생략되었다. 처가로부터 제가 받은 것은 양말 한 짝은커녕…보다 못한 처고모님께서 뚜껑 달린 스텐 요강 하나였고,(이놈이 항상 보물처럼 이삿짐에 끌려 다녔는데 요즘은 안 보임)모든 비용은 많거나 적거나 우리 집에서 부담한, 정말 마누라가 너무 좋아 부모님을 졸라서 치루는 그런 결혼식을 올렸다.

 

사실 결혼을 승낙하는 조건으로 연애를 하도록 허락한 처가의 입장이지만, 내가 결혼을 서둘자 형편이 좀 나아지면 할 것을 종용했지마는 나는 그리할 수가 없었던 것이다. 당연히 많지는 않더라도 시집보내는 딸에게 얼마간의 혼수라도 해 주고픈 부모님의 마음 아니었을까? 그러나 보아하니 형편은 쉽게 풀릴 것 같지 않았고, 그 따위 혼수에 혹할 정도로 마음이 여유롭지 못했던 나는 비참(?)할 정도의 썰렁한 결혼식을 쫓기듯 그렇게 서둘러 했던 것이다. 왜냐? 마누라를 너무 사랑했거든.

 

“이혼 전 ‘이것’만 하면 다퉜다”…돌싱 말한 결혼생활 악몽 1위

https://www.joongang.co.kr/article/25212389

 

<<<배우자와 결혼생활 중 언제 말다툼이 가장 빈번하게 발생했을까. 남성은 ‘부부의 생활비를 조율할 때’, 여성은 ‘쇼핑을 같이할 때’였던 것으로 나타났다.>>>

 

 

결혼만 하면 마누라 매일 껴안아 주고 뽀뽀도 해 주고 그럴 것 같았다. 맞다 맞아. 마누라와 결혼 후 몇 달 지나지 않아 삐걱거리기 시작했다. 문제는 위 신문기가 내용처럼 생활비 때문에 다투기 시작했다. 더구나 마누라는 나의 급료를 땡전 한 푼까지 읽고 있었다. 마누라는 사내 결혼을 했고 경리로 근무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소위 월급쟁이 사나이들의 사회생활이 빤한 것 아니겠는가. 퇴근 후의 동료들, 자연 월급봉투는 처참하리만치 얇아지며 월급날부터 며칠간은 거의 전투에 가깝게 싸움을 했었다. 그런데 정말 더 못난 짓은 쥐꼬리를 가져다주며 마누라를 의심하기까지 한 것이다. 혹시 나 보다 못한 처가에 빼돌리는 것은 아닌지..벼락 맞을 생각까지 하고 마누라로부터 회계권을 박탈하고 나 스스로 가계부 정리를 하기 까지 했었다.

 

그러나 뭐… 마누라가 빼돌릴 돈이라도 가져다 주고 그랬다면 벼락이나 안 맞을 걸. 그렇게 직장생활을 하다가 도저히 월급쟁이로는 살 수 없어 있는 것 없는 것 팔고. 꾸고. 대출 받고 내 (오퍼)사업이라는 걸 시작하다가 제조업까지 했으나 결국 마누라를 의심한 죄과를 받아 부도를 내고…(이하 생략)

 

옛 선인들은‘곳간 열쇄는 마누라에 맡겨라’라는 말씀이 진즉부터 있어왔다. 그런 말씀 가슴에 새기고 살아가면 자다가도 떡이 생기는 것을 뭇 사내들이 알고도 행하지 않는다. 나는 벼락을 맞고 난 다음 그 점을 체득한 것이다.

 

엊그제 어떤 썰에서 말했지만 중국으로 진출을 하며 모든 명의를 아내로 해 주었다. 집도 조그만 건물도 현재 내 이름으로 된 집이라곤 이곳 제천 산골 오막살이 뿐이다. 그러나 모든 명의를 아내에게 해 준 이후에 이런 것들이 불어난 것이다.

 

사내답지 않은 사내들이여~!!

집안의 회계와 경리는 아내에게 맡겨라.

그리하면 자다가도 떡이 생길지니….

특히 결혼 생활 5년 이상이 되었고 아이가 있으면

자신의 마누라가 호화판으로 노는지 품행이방정치

못하고 낭비가 심한지 알 수 있다.

 

그 여부에 따라 행동하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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