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올리는 해랑 열차 여행기(4부)

 

BY SS8000 ON 5. 16, 2009

 

해랑열차 여행기를 계속 이어나가기 전’해랑‘이라는 의미를 알고 가야겠다. 괜히 찜찜하여 이곳저곳을 검색해 보니’해랑rail cruise‘를 먼저 다녀오신 분들의 얘기가 몇 군데 흩어져 있다. 원래‘해랑’이라는 단어는 순수한 우리말로서,‘해와 금수강산을 유람하다’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단다. 이렇게라도 알고 가니 이제 좀 마음이 놓이네……-.-;;;

 

관광버스가 이동하는 중에 해설사는 차창을 가리키며 계속 저기를 바라보라 아니면 우측을, 좌측을 보라며 열심히 고사를 섞어가며 설명을 하는데, 담양은 어찌 그리도 정자나 정원이 많은지….면앙정(면앙 송순이 면앙정가를 작업한 곳), 식영정(송강 정철이 성산별곡을 지었던 곳. 특히 이 근처에는 서하당. 부용당. 환벽당. 취가정 등이 있으며 누각과 정자 문화의 본거지이다),송강정(송강이 사마인곡과 속미인곡을 이곳에서 탄생시켰단다)등이 있다고 열심히 설명해 주었으나 아쉽게도 시간 관계상 직접 가볼 수는 없고 듣는 것으로 만족해야했다.

 

<사진>

직접 가보진 못 했지만, 마침’한국가사문학관’전시실에 초대형 걸게 그림이 걸려 있기에 찍어 보았다. 위로부터 면앙정, 식영정, 송강정, 환벽당이다.

 

어쨌든 소쇄원을 한 바퀴 둘러보고 나오니 버스는 우리 일행을 그곳에서5~6분 떨어진 인근의 ‘한국가사문학관’으로 안내를 한다. 위에서 잠깐 언급했지만, 수많은 정자나 정원을 그대로 보존해 왔고, 더구나 조선시대 한문이 주류를 이룰 때 諺文(언문)이라 하여 우리 국문자체를 비하 했음에도 그 국문으로 시와 가사를 제작하여 크게 발전시키고 꽃을 피운 조상님들의 유작이나 유품을 그대로 간직하여 전시해 두었으니 담양이라는 곳은 대나무와 죽세공으로만 유명한 곳이 아니라 우리의 문화유산을 보존 전승해 온 유서 깊은 고장임에 틀림없다.

 

전시실에 들어서니 사진촬영을 금한다. 면앙 송순 선생의 유품, 송강 정철의 유품, 홍길동의 저자 허균의 누이 허난설헌의 규원가, 임란 당시 의병장으로 이름을 떨친 충열공 고경명 장군의 기행문 등등 일일이 열거할 수 없을 만치 방대한 자료들이 빼곡하지만 잘도 정돈 되어 전시되어 있다. 소중한 우리의 문화유산들을 찬찬히 들여다보던 중 내 눈에 확 들어오는 액자가 있다. 정말 황공하옵게도 좌우 눈치를 살피며 얼른 카메라에 담았다.

 

급히 도둑 촬영을 하느라 초점이 맞질 않았다.

盤中(반중)早紅(조홍)감이고아도보이는다.

柚子(유자)가아니라도품엄즉도하다마

품어가반길이업슬니글로설워하내이다.

 

風樹之嘆(풍수지탄)이라는 성어가 있다. 樹欲靜而風不止(수욕정이풍부지), 子欲養而親不待(자욕양이친부대)라는 옛 글귀에서 유래한 얘기로, 어버이 돌아가시고 효도하고 싶어도 할 수 없는 슬픔을 이르는 말이다.‘조홍시가’는 우리 모두 한 번쯤은 읊조려 보았음직한 고시조가 아니던가. 작자 노계(蘆溪)박인로는 임란 때 혁혁한 무공을 세운 무관이었다. 한음 이덕형 대감으로부터 감을 대접 받고 느낀바가 있어 지었다는 이 작품을 오랜만에 음미하노라니 돌아가신’아빠엄마’가 그리워지며 울컥해 진다. 살아계셨더라면,,,,함께’해랑’열차여행을 하셨을 텐데….

 

 

울컥한 마음을 뒤로하고 밖으로 나오니 잘 꾸며진 현대식 정원이 눈에 뜨이기에 한 장 박았다.

 

가사 문학관을 나오니 사위가 落照(낙조)에 물들기 시작한다. 슬슬 배꼽시계가 작동을 한다. 물론 다음 스케쥴에 따르면 전라도식 한정식을 즐길 차례다. 먹는 즐거움보다 더 좋은 게 있을까? 전라도식 한정식에 대해선 언급을 않겠다. 정말 정갈하고 맛난, 상다리가 부러질 듯한 만찬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다. 한정식 만찬을 사진으로 찍으려했으나 좀 거시기해서 결국 사진으로 남기진 못했다. 여행 내내 지방 특산의 정갈하고 맛난 음식들이 등장했지만, 끝내 사진 한 장을 못 찍었다. 아무리 맛난 산해진미라 해도 증거 없음이 안타깝다.

 

사실2박3일의 열차여행은 노인네들에게는 좀‘빡신’느낌이 든다. 나 같은 중늙은이도 좀 거시기 하다는 생각이 드는데 노인네들이야 여북 하겠는가. 저녁 식사가 끝이 나자 이미 四圍(사위)는 진한 어둠으로 변해있었다. 일행을 태운 버스는 다음 행선지인‘부채 박물관’에 모두를 내려놓는다. 수 천 종의 부채들이 전시 되어 있는데, 2층은 미성년자관람불가이라 성형외과의사 선생의 두 아들은 아래층에서 부채 만들기 실습을 하고, 나머지19등급 이상 관람이 가능한 모두는 2층으로 오르니……요즘의’야동’은 쪽도 못쓸‘春畵(춘화)’로 이루어진 각국의 부채들이 수 백 개 걸려있는 것이다. 결국보다 못한70중반의 땅 끝 해남의 김 선생님 내외분이 관람을 포기하고 휴게실에 주저앉고 마신다. 우리 부부 역시 젊은 간호사아가씨들과 함께 하려니 도저히 다리가 풀려 볼 수가 없다. 그런데 그녀들은 의외로 용감하다.

 

결국 먼저 내려와 바깥에 서성이자, 승무원 아가씨들도 민망했던지’외설로 보지 마시고 예술로 보시면 괜찮을 겁니다’란다. 아~!누가 뭐랬어!?외설이면 처음부터 안 올라갔지….정말 예술은 예술이드만….예술 관람을 마친 일행이 모두 모이자 아래채에 날아갈 듯 한 우리의 한옥이 한 채 있고, 어디선가 은은히 밤하늘을 가르는 퉁소 소리가 여행객의 마음을 심란하게 하는 것이었다. 승무원의 안내를 받아 아래채로 내려가니 날아갈 듯 한 기와집 기둥에는 청사초롱이 매달려 있고, 안쪽에서 버선발로 우리를 맞는 아가씨가 있다. 그녀가 안배하는 좌석에 앉아 우리 전통음악을 감상하기로 한다.

 

<사진>

이른바’운림제’라는 곳이다. 해랑열차유람에 이곳도 포함이 되어 있다. 사진의 두 분이 대금도 부시고 서편제, 서도민요, 경기민요, 육자배기 등 다양한 전통음악을 공연한다.

 

운림제의 전통음악 공연을 마치고 광주역에 정차해 있는 달리는 호텔로 돌아온 시각이10시20분이다. 광주역을 출발하여 약8시간의 강행군을 했던 것이다. 몹시 피로가 몰려온다. 대충 씻는 동안 호텔은 조용히 광주 역사를 미끄러져 나간다. 그냥 잠이 올 것 같지 않아 간편한 차림으로’레스토랑 겸 카페’로 나가보니 몇몇 가족이 이미 그곳에 나와서 와인을 또는 음료를 먹고 마시며 흔들리는 호텔의 정취에 젖어있다. 우리 부부 역시 와인을 주문하고 그렇게 그분들과 함께 하며 시간을 보니 벌써 자정이 가까워온다. 와인의 기운으로 좀은 얼큰한 상태로 우리 방으로 돌아왔다.’해랑열차여행’첫 날이 그렇게 저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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