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올리는 해랑 열차 여행기(5부)

해랑 열차 여행기(5부)

BY SS8000 ON 5. 18, 2009

여행기를 계속하기 전 꼭 소개할 얘기가 있다. 오늘 아침 일본으로부터 소포가 도착했다. 사실 까맣게 잊고 있었는데….이렇게 약속을 지켜주다니 역시 일본인들의 친절함은 우리 모두 익히고 배워 생활지표로 삼아도 좋을 것이다.

 

그러니까 열차여행기 상으론 어제의 일이다. 전라도 한정식을 먹으러 지정된 식당으로 모두 모였을 때 안내된 식탁 바로 내 옆에는 일본인 관광객이 앉아 있었다. 솔직히 일본말을 한마디도 못하니 그냥 미소로 그 양반과 수인사를 닦고, 식사에 몰두하고 있는데(먹는 음식 가지고 좀 치사하지만….)짝을 맞추어 나왔어야 할 음식(반찬)이 숫자가 모자라 더 먹기도 남기기도 한 그런 장면(이런 장면은 다른 곳에서 또 발생했다)이 연출되었던 것이다. 하여 반농반진으로 서빙 하는 아가씨를 불러‘이렇게 숫자가 모자라면 손님끼리 싸움 날 것이니 숫자를 채우라’는 나의 얘기에, 그 일본 손님이 반찬접시를 내게로 설쩍 밀어 놓는 것이다. 그러니까 결국 우리말을 다 알아 듣는 것이었다. 그때서야‘아~!선생께서는 한국말을 하십니까?’라고 묻자‘말은 잘 못하지만 웬만한 것은 다 알아 듣는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자신은 한국 山河(산하)에 반해 매년1~2회 한국을 드나든다는 것이었다.

 

그런데 마침 옆에 있던 젊은 청년(미스터 정)의 통역에 의하면, 일본 관광객의 이름은‘마치 다카하시(나중에 명함을 한 장 받았음)’로‘규슈여객철도주식회사 철도사업본부 영업부장 겸 대표이사’의 중책을 맡고 있는 양반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고, 난생 처음 달리는 호텔여행을 해 보는 내가 자랑스러운 나머지‘다카하시 사장’에게“우리의‘해랑rail cruise여행’을 벤치마킹 하러 오신 것이냐?”라고 묻자‘다카하시 사장과 미스터 정’이 껄껄 웃으며,“해랑열차여행이 일본의 그것을 벤치마킹해 온 것”이라고 친절히 설명을 한다. 순간 정말 시쳇말로 쪽팔렸다. 그리고 덧붙이기를‘다카하시 사장’의 이번 여정은 우리 것과 일본 것의 장단점을 비교검토 하기 위한“코레일투어서비스”측의 요청으로 이루어진, 암행감찰(?)격의 여행이라는 사실을 알려주었고, 그는 내일 우리보다 하루 일찍 달리는 호텔에서 하차하여 귀국 길에 오른다는 것이었다. 미리 결론을 얘기하자면, 그는 하차할 당시 여행객 모두에게 주소를 알려주면 자신이 만든 한글 판‘일본관광 가이드북’을 보내 주겠다고 했으며, 만약 일본에 여행 온다면 자신이 직접 안내해 주겠다는 약속을 하며 마산에서 하차를 했던 것인데, 이렇게 약속대로 책자와 편지를 보내 온 것이다.

 

<사진>

다까시 사장이 보내 준, 자신이 만든 한국어판 관광가이드 북과 편지. 다까시 사장이 일본을 꼭 방문해 달라는 요청(?)에 6 또는 7월에 방문약속을 했다.

 

아이고! 쓸데없는 얘기가 너무 장황했나보다. 진도도 너무 느리고 지루한 여행이 계속 되기에 보다 속도전으로 나가야겠다.

 

광주역사를 미끄러져 나온 달리는 호텔‘해랑열차’가 어디에선가 멈춘 듯 했지만, 약간의 포도주 기운으로 흔들리는 것조차도 요람처럼 느꼈나 싶었는데, 밤새 달려왔는지 경남 사천 완사역에 도착한다는 안내 멘트가 새벽잠을 깨운다. 6시경 완사역에 도착하고, 열차는 일행을 내려놓은 뒤 먼저 마산으로 향했으며, 다시 관광버스에 오른 우리는 멀지 않은‘캐러비안 온천’으로 이동하여 따끈한 온천 물에 간밤의 숙취를 제거하고 사천시내(삼천포항)에서 백합구이와 백합죽으로 조식을 마친 뒤, 선진리 산성을 탐방했다.

 

해설사의 설명에 의하면 왜군이 승전기념으로 축성을 한 것이라고 한다. 아마도 이순신 장군이 활약하시기 전의 얘기인 듯. 아무리 작지만 불과 두 달 만에 축성된 것이 경이롭기만 하다. 다시 남일 대해수욕장의 코끼리바위를 구경한 뒤, 또 다시 삼천포 수산시장으로 자리를 옮겨 싱싱한 자연산 회로 중식을 마친 다음 마산역으로 이동하여, 마산역에서 우리 일행을 기다리는 호텔로 돌아왔다. 마산역을 출발한 호텔은 약 세 시간을 달려 천년고도 경주에 도착한 것이다. 경주역에 도착하자 이전과는 달리 경주 역장님을 비롯한 직원들이‘해랑관광단’을 대대적으로 환영해 준다. 솔직히 좀 으쓱한 기분이 들었다.^^*

 

아! 경주다!!!!내가 이렇게 경주에 감격(?)하는 것은…..어제 신문인가? 이런 기사가 올라왔다. 그 기사의 전문을 올려야겠다.

 

충북 진천의 한 초등학교에서‘아름다운 소동’이 벌어졌던 사실이 뒤늦게 알려져 감동을 주고 있다. 삼수 초등학교 교장과 교사들은2박3일 일정의6학년 수학여행을 떠났던 지난14일 A군을 찾느라 진천 읍내를 이잡듯 뒤지며 9시간이나 진땀을 흘렸다.

 

당일 오전8시30분에 교정에서 수학여행지인 경주를 향해 출발하려던 관광버스는 출발 시각을 넘겼는데도 학교에 나타나지 않은 A군 때문에 발이 묶였다. A군의 담임 최일집 교사는 전화통화에서‘진천 읍내에 도착했다’고 말했던 A군이30분이 지나도록 나타나지 않자 조급해졌다. 연락 두절 상태로 교사들을 애타게 만들었던A군이 풀죽은 목소리로“죄송합니다.전 아무래도 못 갈 것 같아요. 친구들과 떠나시면 안 될까요”라고 말 한 때는 예정 출발시각을2시간이나 넘긴 뒤였다.

 

최영순 부장교사. 이부원 교사 등과 대화를 나누던 중 A군이 결손가정아동이란 것과(할인 된)여행비4만여 원 조차 제때 내지 못 할 정도로 가정형편이 좋지 않은 점을 알아 낸 이피찬 교장은‘평생 한 번 뿐인 초등학교 수학여행을 못 가게 된다면 얼마나 깊은 상처를 안게 될까’고 생각했고, A군을 어떻게든 수학여행길에 올려놓자는 결정을 내렸다.

 

우선 관광버스를 출발시킨 이 교장은 남은 교사들과 함께A군을 찾아나섰다. 하지만A군과 더 이상 전화연락이 되지 않는 데다 학교에 제출된 그의 집 주소와 실거주지가 달랐기 때문에 여간 힘든 일이 아니었다.

 

진천 읍내와 백곡면 일대를 수소문하던 이 교장 일행은 오후6시가 넘어서야 큰아버지 댁에서 여동생(4년)과 함께 있는A군을 찾아낼 수 있었다. 애간장을 녹이게 만든 장본인A군은“거짓말해서 죄송합니다”라면서 고개를 떨궜고, 뇌수술을 받고 입원치료 중인 아버지 대신에 A군이 동생을 뒷바라지 하는 광경을 본 교사들은 눈시울을 붉혔다. 교사들은2박3일간 동생 뒷바라지를 대신 책임져주기로 약속하고 A군에게 수학여행 길에 오를 것을 설득했다.

 

교사들의 이런 노력을 지켜보던 이 학교 운영위원 박경희씨(45.사업)는“이젠 내가A군을 도울차례”라면서A군에게 용돈과 음식을 안겨준 뒤 그를 택시에 태워 친구들이 먼저 도착해 있는 경주로‘공수’했다. 나중에 알려진 사실이지만 박씨는 삼수초에1000여만 원을 들여 방범용CCTV14대와 녹화장비 등을 설치해 준 독지가였다. 학교 구성원들의 이런 애틋한 정을 받으면서 여행일정을 마무리 하고 학교에 도착한A군은“1년 동안 해야 할 거짓말을 오늘 오전에 다했다. 미안하다”는 말을 교사들에게 했다.

 

이 교장은“한바탕 소동이 벌어진 뒤에야 담임교사가 여행비를 대납해 준 점과 이를 미안해 할 정도로A군은 자존심이 강하고 정직한 아이란 걸 알았다”며“A군이‘누군가 내게 관심과 애정을쏟아 주고 있구나’란 생각을 하고 힘을 내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내 얘기가 위의 기사처럼 감동적이지는 않다. 난 원래 태생은 종로 적선동이지만 1.4후퇴 때 경주에서 멀지 않은, 상주로 피난을 갔다. 그리고 상주 읍에 소재한‘상주초등학교’를 다녔다. 上머슴 둘을 두고 30여 마지기의 논과 기천평의 밭을 경작한 걸 보면 그리 가난하지만은 않은 집안의 형편인 것 같았는데,,,,늘 배가 고프고 무릎이 헤진 바지를 입고 다녀야 했던 기억밖에 없다. 지금 생각하면 조부모님 아버지(서울의 말단공무원)는 어떻게든 농토를 더 늘리기 위해 덜 먹고 덜 쓰는 생각을 가지신 것 같다.

 

6학년이 되니 모두3박4일 경주로 수학여행을 간다는데, 어쩐 일인지 부모님은 수학여행을 보내주지 않으셨다. 뭐 그렇다고 나 역시 기를 쓰거나 떼를 쓴 기억도 없다. 다만 졸업앨범에 사진 한 장 박히지 않은 아쉬움은 지금도 간직하고 있기는 하다. 그 후 무슨 비즈니스 관계로 번개불에 콩볶아 먹듯 하루저녁 유숙한 게30여 년 전, 그리 좋다는 보문관광단지며 천년고찰 불국사를 그림으로만 보았는데, 경주역에 도착하자마자 불국사로 향했으니 그 감격을 어찌 筆舌(필설)로 형언하겠는가. 거의 반세기만의 恨(한)을 오늘날에야 풀었다.

 

경주. 정말 잘 정비된 깨끗한 도시다. 도시 어디를 가더라도 숲이 우거져 있으며 그 수려함이 천년 왕국 신라의 수도로서 손색이 없고, 찬란히 꽃피운 문화유산을 우리 후손에게 고스란히 남겨 준 조상들의 지혜가 놀랍기만 하다.

 

 

경주하면 역시 불국사 아니던가. 꽤 많은 사진을 찍었으나 워낙 유명한 곳이라 나 같은 촌놈은 없을 것으로 알고 이하는 생략하겠다.

 

불국사 관람을 끝낸 우리는 감칠 맛 나는 경상도식 한정식으로 저녁을 때우고(여행 내내 느낀 것이지만, 잠자리 외에는 먹고마시고 기타 등등 정말 멋진 여행이라고 생각이 들었다.)경주의 달빛 기행으로 들어섰다. 皎皎(교교)히 흐르는 달빛 아래의 안압지와 첨성대를 기행하고 10시가 약간 넘은 시간에 경주역에 도착하니 언제나처럼 달리는 호텔은 우리를 반기는 것이었다. 오늘도 역시 강행군이었으나 간편한 차림으로 이벤트홀로 모이면, 열차내 라이브 공연이 있음을 알리는 안내방송이 있기에 간단히 씻은 다음 이벤트홀로 가보니 그곳에는 이미 가지런히 접객을 위한 다과와 와인, 맥주, 음료수 등이 준비되어있었다.

 

잘 생긴 초청가수(아직은 크게 이름나지 않은 젊은이 이지만 자신의 취입곡”내 사랑 꽃님이”등등 나는 이 가수가 꼭 대박나기를 기원해 주었다)는 자신의 기타반주와 함께 여러 장르의 노래를 불러주며 사회를 보는 가운데, 일행 몇몇 분에게 창가를 부르게 하는 것이었다. 그중 나도 한 곡조 불렀으니…..다른 이들과는 달리 내가 부른 노래는 현인 선생의”신라의 달밤”을 불러 많은 갈채와 함께 가장 쎈스 있었다는 호평을 받았다.^^* 이날 저녁도 역시 자정이 가깝게 얼근한 가운데 룸으로 돌아와 깊은 잠에 빠졌으니 아쉽게도 달리는 호텔의 마지막 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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