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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철민] 이라크, 100년에 걸친 실험


▲ 이철민 차장대우

마케도니아의 알렉산더대왕(BC 356~323)이 페르시아 원정에 나섰을 무렵 지금의 이라크인 바빌론은 이미 세계의 중심이었다.

그 앞에서 인도의 현인(賢人) 칼라누스는 땅바닥에 마른 소가죽을 펼쳤다. 칼라누스가 가죽의 테두리를 밟고 돌 때마다 다른 쪽이 들고 일어났지만 한가운데를 밟자 가죽 전체가 바닥에 붙었다.

칼라누스의 조언은 “제왕은 제국의 중앙인 바빌론에서 지배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플루타르크 영웅전에 나오는 얘기다.

수천년 전 제국의 중심이었던 이라크에선 지금 세계 다른 곳에선 이미 지난 세기에 시대 조류(Zeitgeist)가 된 거대한 실험이 뒤늦게 진행 중이다.

지난달 30일의 총선 실시에 따른 과도정부 구성과 헌법 마련 등 ‘자유민주주의’ 실험이 그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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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실험은 그러나 이라크만의 것도, 이 지역 내 최초의 시도도 아니다. 이슬람권을 지배하던 오스만 투르크제국이 마지막 숨을 몰아쉬던 1909년 12월 이래 계속된 실험이었다. 그때 메흐메드 5세 술탄은 ‘입헌(立憲)·협의적인 정부체제’를 약속했다.

‘헌법’이란 말은 아랍어에 없었고, 약속의 ‘형식’도 영국식(式)을 본뜬 의회 연설이었다. 국내외서 몰아친 민주화 개혁 요구와 반동(反動)세력 간 충돌 속에서 이뤄진 약속이었다.

그러나 1920년 당시 1억명의 무슬림을 지배했던 영국의 외교관 앨버트 킨로스는 미국 월간지 ‘어틀랜틱 몬슬리’ 11호에 게재한 기고문에서 ‘과연 이슬람과 서구민주주의가 양립할 수 있을까’ 회의(懷疑)했다.

중동 각 지역의 무슬림을 겪어 본 그는 “현대 세계에서 자치(self-government)하기에 적합한 사람들이라면 더 이상 이슬람 신자들일 수는 없을 것”이라고 했다. 그래서 ‘이런 미개 민족’을 지배하는 역할이 “백인종의 ‘달갑지 않은’ 운명일지 모른다”고 ‘고민’했다.

킨로스의 말대로 이슬람에는 자유민주주의를 막는 요소라도 있는 것일까. 메흐메드 5세의 약속이 있은 지 100년이 지났다. 미 인권 단체인 프리덤 하우스의 ‘2005년 세계 자유 보고서’는 이슬람국가기구(OIC) 57개국 중 겨우 5개국만을 ‘자유국가’로 분류했다.

특히 이슬람권의 주축인 아랍 22개국은 요르단과 쿠웨이트(부분적 자유)를 빼고는 모두 ‘자유롭지 못한’ 국가들이다. 전 세계 의회민주주의 국가 117개국에 아랍 국가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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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언자 무하마드가 주창한 이슬람은 정치와 종교가 분리되지 않은 공동체다. 미국 내 이슬람·중동 권위자인 버나드 루이스 프린스턴대 교수의 표현대로 “국가는 신의 국가이며, 법은 신의 법이다. 당연히 입법기관은 필요없고, 대표자를 뽑을 이유도 없다.”

그러나 이슬람의 전통에는 민주적 요소도 있다. 신을 대신한 후계자(칼리프)는 피지배 계층과의 ‘계약’을 맺은 선출직이며, 민중은 신의 법을 어겨 행동하는 후계자에게 불복종할 ‘의무’가 있다.

작년 3월 말 기자는 마지막으로 이라크에 있었다. 바그다드 대학생들은 “우리는 언제쯤 한국처럼 민주주의를 이루고, 잘 살 수 있느냐”고 물었다. 그들은 “지금 이라크의 정치·경제 현실은 1945년 광복을 맞은 한국과 비슷하다”는 대답에 크게 낙담했었다.

그들이 얼마나 더 기다려야 할지는 알 수 없다. 그러나 이제는 100년에 걸친 실험이 결실을 맺었으면 한다. 그들은 이미 너무 오랫동안 기다려 왔다.

이철민· 국제부 차장대우 chulmin@chosun.com
입력 : 2005.02.16 17:59 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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