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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스크랩]    유복한 시절을 보낸 그가 왜 미국을 공격했나…
  • 최준석 국제전문기자 jschoi@chosun.com 기자의 다른 기사보기
  • 입력 : 2009.09.11 21:54

    문명전쟁:알 카에다에서 9·11까지
    로렌스 라이트 지음|하정임 옮김|다른|584쪽|2만9000원

    1988년에 생긴 국제 테러조직 ‘알 카에다’는 좋은 직장이었다. 매달 미혼자는 1000달러, 기혼자는 1500달러를 받았다. 아프가니스탄 산속에 있던 대원의 손에는 매년 한 달의 휴가와 고국에 다녀올 왕복 비행기 표가 쥐어졌다. 그들은 의료보험에도 가입되어 있었다.

    알 카에다의 젊은 수장 오사마 빈 라덴(bin Laden)은 재벌가의 아들이었다. 아버지 무함마드 빈 라덴은 사우디아라비아 건설업계의 대부였다. 20년이 걸린 메카 대사원 확장공사(180억달러 프로젝트)는 ‘사우디 빈 라덴 그룹’의 작품 중 하나다. 무함마드 빈 라덴이 비행기 사고로 죽었을 때 당시 파이잘 왕은 "오른팔을 잃었다"고 말했다.

    오사마 빈 라덴의 재산은 1989년 당시 2700만사우디리얄(약 720만달러)이었다. 오사마는 사업을 접고, 파키스탄의 아프가니스탄 접경도시 페샤와르에서 알 카에다를 결성했다. 서울올림픽이 개막되기 직전인 1988년 8월이었다. 네 명의 부인과 가족들을 페샤와르로 데려온 건 그보다 2년 전이었다.

    2001년 9월 11일 세계무역센터가 테러에 의해 폭발하는 모습과 그 배후로 지목된 빈 라덴(작은 사진)./AP·AFP 연합뉴스

    빈 라덴이 깃발을 들었을 때 모여든 아랍 민병대에는 돈을 보고 온 이가 많았다. 전투 경험이 많지 않은 오합지졸이었다. 이들은 아프가니스탄 내 산속 기지에 배치됐다. 그는 사우디아라비아의 빈 라덴 그룹에서 빌려온 불도저 등 장비로 동굴 진지 7개를 만들어 두고 있었다.

    빈 라덴을 아프가니스탄으로 부른 건 소련 점령군이었다. 무슬림의 땅이 공산주의자에 의해 유린되고 있는 데 분노한 빈 라덴은 소련 점령군과 싸우기 위해 아프가니스탄으로 갔다. 그런데 알 카에다를 만든 이듬해 소련은 돌연 철군했다. 총질을 할 대상이 갑자기 사라지자 그는 기독교인과 유대인의 동맹을 겨냥하는 새로운 ‘글로벌 지하드(성전·聖戰)’로 방향을 바꾼다. 빈 라덴의 지하드 종착역은 미국의 뉴욕과 워싱턴을 공격한 2001년의 9·11테러였다.

    이 책은 9·11테러에 관계된 네 사람을 중심으로 이야기를 전개한다. 알 카에다의 1·2인자와 그들을 막으려 했던 두 사람이 주역이다. 빈 라덴(1958년)과 이집트 의사 출신인 아이만 알 자와히리(al-Zawahiri·1951년생), 사우디아라비아 정보기관 책임자 투르키 왕자(1945년생), 미국 FBI의 대(對)테러 책임자 존 오닐이다.

    저자는 9·11테러 직후 이들의 행적을 파헤치기 시작, 5년간 세계를 돌아다녔다. 12개국을 여행하면서 알 카에다 요원과 미국 정보요원 등 600명을 만났다. 그는 9·11 그 자체가 아니라 알 카에다 조직의 등장 배경과 성장 과정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특히 빈 라덴의 집안과 그의 성장사에 대한 부분은 매우 상세하다. 빈 라덴은 아버지의 17번째 아들이었으며, 아버지의 네 번째 부인이었던 어머니는 그가 아주 어릴 때 이혼당했다. 아버지는 어머니를 자기 회사 직원과 재혼시켰다. 빈 라덴은 미국 서부극을 즐겨보던 ‘평범한 아이’였지만, 점차 유대인의 팔레스타인 점령과 이를 후원하는 미국에 분노하기 시작했다.

    사우디아라비아 정보기관 책임자 투르키는 처음에는 빈 라덴을 후원·격려했지만, 나중에는 그를 잡아들이려 했다. 소련이 걸프 지역까지 진출하는 걸 두려워한 사우디아라비아는 아프가니스탄을 ‘제2의 월남’으로 만들어 소련의 발목을 잡으려 했고, 빈 라덴을 그 도구로 사용했다. 하지만 알 카에다가 사우디 왕국 내에서 테러를 일으키는 등 위협세력이 되자, 아프가니스탄의 지배자 오마르로부터 빈 라덴을 넘겨받으려 했다. 성공할 뻔했던 이 시도는 막판 오마르의 변심으로 물거품이 되었다. 미국 FBI 대테러 책임자 존 오닐은 9·11테러를 막기 위해 안간힘을 썼다. 그러나 정보기관 간의 공조 부족 등으로 실패하고, 자신의 사무실이 있던 세계무역센터 빌딩의 붕괴로 사망했다.

    알 카에다는 지금도 미국은 물론, 한국인의 삶에도 직접적인 위협이 되고 있다. 지난 3월에도 예멘에서 폭탄 공격으로 한국인 세 명이 죽었다. 2006년에 나온 뒤 퓰리처상 등 많은 상을 받은 이 책은 알 카에다를 이해하는 데 매우 도움이 된다. 다만 우리말 번역본은 중동과 이슬람 관련 용어의 오류가 많아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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