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otice: The called constructor method for WP_Widget is deprecated since version 4.3.0! Use
__construct()
instead. in /webstore/pub/reportblog/htdocs/wp-includes/functions.php on line 3620 美 이라크에 8년간 14조원 들이부었는데 왜 이라크 요모양 요꼴 - 중동 천일야화
美 이라크에 8년간 14조원 들이부었는데 왜 이라크 요모양 요꼴

美, 이라크에 8년간 14조원 쏟고도…


宗派의 벽 못 넘어 결국 민주화 물거품

총선으로 시아파 총리 되자 수니파·쿠르드가 크게 반발… 美軍 철수 이후 테러 등 악화

미국은 2003년 3월 ‘이라크 자유 작전’이란 이름으로 이라크를 침공했다. 20일 만에 수도 바그다드를 점령, 그해 12월 독재자 사담 후세인을 체포했다. 미국은 "이라크에 자유와 민주주의를 선물하겠다"면서 8년여간 ‘이라크 국가 개혁’을 추진했다. 병력 17만명을 주둔시켰고, 140억달러(약 14조원)를 쏟아부었다.

하지만 미국의 이라크 민주화 노력은 이슬람의 고질적인 수니·시아파(派) 분쟁의 벽을 넘지 못했다. 수니파였던 후세인에게 20여년간 차별받았던 시아파 세력이 미국과 유엔이 추진하는 국민 통합안(案)을 순순히 따르지 않았다. 실권을 잡은 시아파 인사들이 수니파와 소수민족인 쿠르드 등 야권을 정치에서 배제하자 갈등의 골이 깊어진 것이다.

2014061400210_0.jpg

미국과 유엔은 국민투표 실시와 의회 구성을 독려했다. 유엔 안전보장이사회는 위임 통치를 통해서 이라크 임시정부를 출범시키고 2005년 12월 총선을 실시했다. 이듬해 시아파인 누리 알말리키가 총리가 됐다.

하지만 수니파·쿠르드는 "서구식 선거 제도 자체가 이라크에는 적합하지 않다"며 반발했다. 시아파가 전체 인구 3100만명의 절반을 차지하기 때문에 다른 세력이 다수당이 되기는 현실적으로 불가능했던 것이다. 민주주의에 대한 교육이 부족한 이라크 국민은 거의 예외 없이 자기 종파와 같은 후보에게 투표했다.

알말리키 총리는 2010년 재선에 성공했고, 야권의 반발과 극단주의 세력의 테러는 더욱 악화했다. 미국과 국제사회가 이라크의 뿌리 깊은 종파 간 갈등을 감안하지 않은 채 민주 제도를 성급하게 도입했다가 더 큰 정국 불안을 낳은 것이다.

2014061400210_1.jpg

미국은 2011년 12월 미군을 전원 철수시켰다. 버락 오바마 대통령은 ‘직접적 군사 개입 자제’라는 원칙을 내놓았다. 하지만 조직력이 약한 이라크 정부군은 게릴라성 공격과 자폭 테러를 하는 극단주의 단체를 제압하지 못했다.

미 공화당에서는 "오바마 대통령이 이라크 정부군에 대한 군사 교육을 담당할 일부 병력을 남겨뒀어야 했다"는 비판을 쏟아 냈다. 제임스 제프리 전 이라크 주재 미 대사는 워싱턴포스트와의 인터뷰에서 "2500~2만5000여명의 미군 병력이 상주했다면, 반(反)테러리즘의 기지(基地) 역할을 할 수 있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라크 주요 도시를 점령한 수니파 반군 ‘이라크·시리아 이슬람국가(ISIS)가 3년간 시리아 내전을 거치면서 테러 단체에서 군사 조직으로 ‘진화’하는 동안, 거꾸로 이라크 정부군은 지역 민병대 수준으로 ‘전락’하고 말았다는 것이다.

[출처] 본 기사는 조선닷컴에서 작성된 기사 입니다

Leave a Repl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