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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stead. in /webstore/pub/reportblog/htdocs/wp-includes/functions.php on line 3620 사회당 키워놓고 親北으로 黨 몰락 자초… 日 첫 여성黨首 사망 - 중동 천일야화
사회당 키워놓고 親北으로 黨 몰락 자초… 日 첫 여성黨首 사망

사회당 키워놓고 親北으로 黨 몰락 자초… 日 첫 여성黨首 사망

-前사회당 대표 도이 다카코
1989년 참의원 선거에서 압승… 집권 자민당 과반 아래로 추락
도이 열풍 계속되며 1993년엔 첫 여성 중의원 의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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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대표적인 여성 정치인 도이 다카코〈사진〉 전 사회당(현재 사회민주당) 대표가 지난 20일 효고(兵庫)현의 병원에서 폐렴으로 86세로 별세했다고 교도(共同)통신 등 일본 언론들이 28일 전했다.

그는 일본 헌정 사상 최초로 여성 당수, 여성 중의원 의장 자리에 오르며 일본 정치사에 획을 그은 인물이다. 당수 시절인 1989년 참의원 선거에서 대승을 거둬 거대 여당 자민당의 참의원 의석을 과반 아래로 떨어뜨린 초유의 사건도 만들어냈다. 이를 두고 “산이 움직였다”고 한 그의 발언은 20여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회자된다. 이 선거에서 사회당은 여성 의원을 11명이나 배출했다. 일본에선 이를 ‘마돈나 선풍(旋風)’이라고 한다.

하지만 한국이 성공적으로 산업화와 민주화를 달성하고 일본에서 북한에 의한 일본인 납치 문제가 부각된 1990년대 이후에도 한반도 정책을 친북(親北)으로 일관해 사회당을 고립시키고 결국 몰락으로 이끈 주역이 됐다. 반면 과거사 반성, 평화헌법 수호 등 노력으로 일본의 우경화를 견제한 것은 그의 업적으로 꼽힌다.

도이 전 대표는 1928년 효고현 고베에서 태어났다. 1945년 교토여자전문대학(현 교토여자대학) 외국어과에 입학했으나, 대학 3학년 때 교토의 도시샤(同志社) 대학에 편입했다. 도시샤대에서 헌법학자 다바타 시노부의 ‘평화주의 헌법 9조’라는 강연을 듣고 감명을 받은 것이 계기였다. 그는 헌법학자의 길을 걷다가 40세이던 1968년 사회당으로부터 공천 제의를 받고 이듬해 중의원 총선거에서 당선되며 정계에 입문했다. 그는 58세이던 1986년 사회당 위원장에 오르며 ‘일본 최초의 여성 당수’라는 타이틀을 달았고 1993년 일본 처음으로 여성 중의원 의장에 취임했다.

그는 2003년 말 선거에서 참패한 것에 책임을 지고 당 대표에서 물러났고 2005년 재기를 노렸으나 낙선하며 정계를 은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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