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적 공간

오근재지음

주말에신문에서소개한책이다.찾아보니올해2월중순이다.그동안잊고있다가메모해놓은것이눈에띠었다.노인에대한이야기라는것은알고있었지만내용과관계없이[퇴적공간]이란표현자체가착가라앉는느낌을준다.꼭한번읽어보아야할것같은느낌이다.

그리두껍지않은책이다.읽는데전문서적이아니라시간이많이걸리지않는다.저자는정년퇴직한교수다.책의앞부분에서언급했듯이대학에있을때는노인이라는생각이별로들지않다가정년을하고대학이아닌사회로들어서게되면노인이라는생각이불현듯느껴질것같다.

50중반이넘어선지금,노인이라는생각이들지는않지만젊음과는거리가먼것만은확실하다.그러다보니책의제목만으로도내용이궁금해진다.책의메시지는단순하다.노인들을각종복지제도의수혜자로보지말고가정을중심으로한구성원의한사람으로자리잡을수있도록해야한다는것이다.제도적으로간주할수록노인문제는해결하기가더어려운수렁으로빠질것이라는이야기다.맞는이야기이다.해결방안을구체적으로제시한것은아니지만가정으로돌아가한가정의온전한구성원으로대접받아야한다는이야기일것이다.

그러나모든면이과거와달라진가정과사회에서지금보다과거에는문제가적었으므로과거와같은방식으로해야한다는것은결코쉽지않은일이다.그러기에는너무도많은것이변하였다.아파트로의주거형태변화도큰역할을했을것이다.노인의역할이바뀐것이다.노인의경험은이제별로필요로하지않는다.노인이했던일을아들이하고,아들이했던일을그아들이하던시대와는너무많이변하였다.설령같은일을한다고해도,사회의변화는노인의역할을빼앗아간지오래되었다.

어린시절을생각하면지금의80대이상의노인들은자신을위한시간을가지지못하였다.여가시간이란개념이희박한시절,오직먹고사는것만이최선이었던시절을지낸분들에게는그에맞는제도,그리고무엇인가를준비할수있는예비노인들은그에맞는제도가필요하다.[퇴적공간]이아닌자신만의공간을가질수있는준비가지금필요하다.

책내용중에서

노인이된다는것,필연적인일지만젊은시절에는단한번도진지하게고민해보지않는일.나이가들고신체가노쇠해지면서자연스레따라오는변화를감지하게되는일.자신이더이상현역이아니라는사실과그럼에도지난하게이어지는인생을살아내야한다는사실을인정하게되는일.그리고고독과친해지는일.누구도피해갈수없는고독의시간이결국내몫이며내가겪는순간이라는사실을깨닫는일.그렇다면나이든이들이머무는공간은어떠할까.7쪽중에서

오늘날한국사회에서생물학적으로젊고늙음에상관없이사람들이얼마나극단적으로상품화되고물화되어있는가는박찬일의시에잘나타나있다.

승용차가강물에추락하면

상수원이오염됩니다.

그러니서행하시기바랍니다.

나는차를돌려그자리로가

난간을들이받고

강물에추락하였습니다.

기름을흘리고

상수원을만방더럽혔습니다.

밤이었습니다.

하늘에글자가새겨졌습니다.

별의문자말입니다.

승용차가강물에추락해서

상수원이오염되었습니다.

서행하시기바랍니다.

내가죽은것은사람들이모릅니다.

하느님도모릅니다.

박찬일,[나는푸른트럭을탔다]<팔당대교이야기>,민음사,2002

어떤관점이정답에가까울까?바이오테크놀로지종사자와의사들은자본주의사회에서상품가치를잃어버린잉여인간의노화현상에동참함으로써청년실업을유도하여이사회를무기력하게만드는데일조하는집단일까?그렇지않으면팔당대교에빠진사람을수질오염원으로규정하는냉혹한사회에반기를드는인본주의집단일까?어쩌면정답은없고이두가지관점사이에서길을찾아야할지도모른다.28쪽중에서

따라서거시복지정책은영유아든젊은이든노인이든그들이원자화되지않도록,즉성분을지닌분자로묶어내려는방향성을띠고수립되어야한다.그렇지않으면원자화된국가구성원들은언제어디로튈지모르는휘발성높은유증기와같은성질을띤개인으로남을가능성이매우크다.

노인복지도그러한큰그림속에서정책이수립되어야한다.지금처럼노인들을탑골공원이나종묘시민공원으로,각지자체에서운영하는복지센터로끌어내지말고가정과작은단위공동체의일원으로복귀시키는방향으로정책이전환될필요가있다.지금과같은복지제도를고집하면할수록자기조정시장자본주의는인간을더더욱물화시키고시장의효율성만을강화시켜나갈것이다.정부나지자체에서의복지는1차집단의관계에서이루어지는체온이있는복지가아니라결국돈이매개된복지이기때문이다.37쪽중에서

기초노령연금제,기초생활보장제,보건복지부의7개월짜리일자리개발지원,전철이용요금의무료화와노약자석지정,고궁입장료면제등노년층을위한각종복지제도는무지개빛처럼호화롭지만,이러한제도들은실효를상실하고오히려삶의현장에서노인들을몰아내는역기능을한다.매달92000원의노령연금,7개월을기한으로매달20만원씩지급하는일자리창출프로그램,노년층과젊은층으로분리된승차공간,학습당의(糖衣)를입고있지만,이러한사회제도는노인들이얼마나쓸모없는존재인지를여러측면에효과보다는시간죽이기를위해배려된고궁의무료개방등은겉보기에는노년층을우대하는듯한서확인하는제도에불과하다.실제로는그들을쓸모없는인간군으로분리함으로써노인들의자존심을더욱철저하게짓밟는것이다이렇게낱낱으로쪼개진배려는우리의전통적인가족제도안에는일찍이없었던체온없는방식이다.이러한사회제도는결국시장속에서소외된존재인노인들을소리없이버리는방식이기도하다.48쪽중에서

무섭습니다.여기에모인노인네들……아무일없는듯평화롭게보이지만작은일에도욕설을퍼붓고악다구니를써요.서로모르고지내니자연히그렇지않겠어요?심지어식사를나눠주는봉사자들한테도기분이나쁘다싶으면욕하고대들죠.아무도믿지않는다고나할까……-중략지금우리사회는정의가사라진지오래되었어요.대통령이나국무위원들을믿을수있습니까?국회청문회보셨죠?다운계약서작성,위장전입,논문표절,세금포탈,병역면제등은국무위원들의5대필수스펙이라고하지않습니까?국회위원들은믿으세요?지자체장들은요?그렇다고검찰이나사법부는살아있다고보십니까?심지어종교지도자들도마찬가지예요.지금믿을사람이아무도없는거죠.우리같은늙은이들은이제이사회에아무런기대도없어요.사회지도자들이정직합니까,또신뢰할만합니까?시간이흐르면나아질거라는어떤기대도없으니우리세대사람들이악만남은건어찌보면당연한일이죠.마음붙일어떤기관도,단체도,개인도없어요.기대하지도않지만그렇다고우리한테물질적인온당한예우를해주는것도아니잖습니까?노인네들한테주는한달9만원,이게뭡니까?누구놀립니까?95쪽중에서무료급식소에서만난공무원출신의86세노인이야기

죵묘시민공원을중심으로하는종로3가역,허리우드클래식등은가정으로부터의1차적추방과도시의속도가주는소멸이라는이름의제2의추방이교차하면서형성된도피성공간일지모른다.그곳은도시의인위성에밀리고속도에적응하지못한인간들이강하구의삼각주에쌓여가는모래섬처럼모여드는퇴적공간이다.그공간에서나날을보내는노인들은어쩌면이제는서울시민들이잃어버리고있는,인간이지닌자연의감각을원형처럼간직하고있는원질(原質)과같은대상이아닐까.우리가현대의갖가지정신질환으로부터벗어나기위해만일다시자연의감각을지니기를원하는시기가도래한다면,이퇴적공간은우리가영원히보존해야할자산적가치가있는귀중한공간이될것이다.247-248쪽중에서

요즘은나이를먹는다는것이실감난다.정년하려면아직적지않은시간이남아있지만같이근무하던분들이학기말마다한분,한분나가시는것을보면남의일같지않다.

주변에서많이보지만개인적으로는한번도경험해보지않은노인생활이기다리고있다.신체적으로그리고정신적으로수월하지않을것이눈에뻔히보이는그런노인생활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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